함께 여행하기로 마음을 모았던 모란시장 탐방 이후 오 개월이 지난 십일월 중순이었다. 가볍게 홍천 오일장에 가자고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서로 일정이 맞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코로나 19 확산세가 누그러지지 않은 것이 여행을 주저하게 만든 더 큰 이유였다. 단풍철도 지나고 마지막 남은 나뭇잎마저 떨어뜨리려는 듯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이럴 때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어디를 가도 애초 생각한 대로 여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라리 경치 좋은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게 나은 경우도 많았다. 가볍게 가자고 한 친구의 말에는 홍천 오일장에 꼭 가야겠다는 의지보다 발길 닿는 대로 다녀오자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약속장소는 지난번과 같은 이매역 앞이었다. 친구 승용차로 나를 픽업하여 홍천으로 간다고 했다. 출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광역버스는 출발지임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수도권 외곽순환고속도로도 섰다 갔다를 반복하는 구역이 중간중간 있어 버스는 예정시각보다 십여 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버스 하차 단말기에 휴대폰을 대자마자 흘러나온 잔액 부족이라는 소리는 무심하게 있던 나를 한순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엎친 데 겹친다는 게 이런 경우였다. 약속 시각에 늦어 조바심이 나 있던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잔돈을 꺼내지도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출입구 통로에 난감하게 서 있었다. 운전기사는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그냥 내리라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교통카드를 신용카드에 탑재해서 주로 이용했는데, 버스 탈 때 급한 마음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승차 단말기에 찍으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얼마 전 휴대폰을 교체했기 때문에 자동충전 기능이 정지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버스에서 내려 마음을 추스르고 난 후, 지체한 시간 만큼 늦는다고 문자를 보내고 전철로 갈아탔다. 약속장소에는 눈에 익은 친구 승용차가 서 있었다. 운전석에는 차를 대기로 한 친구, 조수석에는 여행을 주관한 친구가 앉아 있었다. 난 당당하게 뒷자리 상석에 앉았다. 버스에서 잔액 부족이란 소리에 쩔쩔매던 초로의 사내가 아니라 운전기사와 가이드를 고용해 호화롭게 여행하는 사내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강남이나 분당 같은 지역에 살지 않는 이상 여행을 할 때마다 이런 수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가 사는 곳을 물어볼 때마다, 난 보통시에 산다고 대답하곤 했다. 도시 이름을 이야기해도 어디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특별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그저 그런 도시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다. 여기에 서울도 아닌 수도권 변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도시명칭에서조차 차별받고 있다는 반감도 한몫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지역이 쌀동네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쌀이 나는 동네,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오해하긴 하지만, 사실은 ‘못 쌀 동네’를 줄여 자조적으로 부른 말이었다. 이렇게 불리는 곳은 교통이 불편해 교통비가 많이 들고, 대형 상점이 없어 생필품 구하기가 어려워 가격이 비싼 것은 물론 문화시설도 거의 없었다. 집값이 다른 지역보다 싼 것 외에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었다. 지금은 지하철이 지나가고, 아파트 가격 상승률도 상위를 기록하여 웬만한 수도권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다. 특별시나 광역시와 비교하면 아직도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닌 곳에 사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쌀동네 사람일 때나 보통시민이 된 지금이나 문화생활을 즐기는데 많은 수고와 비용이 드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 차는 고속도로와 고속화 국도를 놔두고 팔당대교를 건너 옛 국도로 접어들었다. 길이 예쁘고 맛있는 집이 많다며 친구는 자기가 선택한 길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차창으로 지나치는 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예전에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은 맛이 변했다는 식당부터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다는 카페, 예전 대통령이 자주 갔다는 빵집까지 양수리 다리를 건널 때까지 이야기는 이어졌다, 특히 자신이 들렀다는 집은 맛, 분위기, 가격 등을 맛 칼럼니스트인 양 점수를 매겨 소개했다.
홍천 오일장에 시간을 맞춰 갈 필요도 바쁘게 다녀올 이유도 없었다. 가볍게 길을 떠났기 때문에 차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을 것이었다. 두물머리에 있는 다산 기념관 주변을 잠깐 들러서 간 것도 북한강을 따라서 난 이 차선 도로와 경춘 국도를 타고 가을과 겨울의 모습이 섞여 있는 한강을 마음껏 눈요기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잠시 이야기를 멈췄던 친구는 춘천 막국수로 점심을 때우자고 하면서 자신이 안내하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식당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한 시간 이상 막힘 없이 순조롭게 달려온 차는 그 친구가 안내하는 대로 움직였다. 경춘 국도에서 의암댐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옆으로 펼쳐질 의암호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했다. 운전하는 친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의암댐으로 들어섰다. 댐 끝에서 의암호 오른쪽 길을 따라간다는 친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길을 가로막은 것은 공사 안6내 표지판과 쇠로 만든 바리케이드였다. 교통량이 적은 이때가 공사하기 좋은 시기였던가 보다. 차를 되돌려 이십여 분을 달려 식당에 도착했다.
춘천에 가면 늘 먹는 것이 막국수 아니면 닭갈비였다. 맛있다고 이름난 식당이나
골목길 허름한 식당이나 맛에 큰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우리 동네에서 먹은 막국수가 춘천에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을 때도 있었다. 이번엔 달랐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막국수 중에 가장 맛있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다른 사람의 평가는 어떤지 모르겠다. 식당을 추천했던 친구는 조심스럽게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처음 소개해서 온 식당이라 평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매우 맛있다고 한 내 말에 친구의 얼굴이 활짝 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를 읊조릴 때마다 언제부터인지 홍천강 풍경이 떠올랐다. 속초 가는 길에 늘 들렀던 국도변 휴게소, 홍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눈 앞에 펼쳐진 굽이쳐 흐르는 강과 넓게 자리 잡은 강변은 언제봐도 아름다웠다. 아마도 이런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것은 두어 시간 운전하면서 피곤해진 몸과 마음을 풀어준 휴게소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먹으면서 바라보는 홍천강 풍경은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이란 구절을 저절로 떠 오르게 했다. 지금까지 ‘홍천강휴게소’라고 알고 있던 그곳이 사실은 ‘화양강휴게소’였다. 홍천주민들 사이에는 홍천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 이름을 두고 ‘홍천강(洪川江)이냐' 화양강(華陽江)이냐’라는 논쟁이 있다고 한다. 넓은 강이란 홍천강보다 아름다운 남쪽 양지에 자리 잡은 강이란 화양강이 더 정감이 간다.
나에게 홍천은 잠깐 들렀다가 지나치는 지역이었다. 특별한 인연도 없고, 마음먹고 찾아갈 만한 유적지도 눈에 띄지 않은 탓이었다. 몇 년 전 취나물 농장에 한번 가보자는 선배의 꼬드김에 다녀온 것이 홍천과 맺은 인연 전부였다. 홍천은 산과 강이 아름다운 고장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다.
홍천 중심가에 있는 장터에 도착했다. 옅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해가 나지 않은 쌀쌀한 날씨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사람이라도 북적거렸다면 이 정도 날씨는 문제가 되지 않고 견딜만했을 것이었다. 상설 상점과 길 위에 임시로 좌판을 펴고 있는 상인들이 섞여 있어 장날보다는 노점상이 몰려 있는 도로인 듯했다. 볼 것도 살 것도 없어 삼십 분도 안 돼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 가는 길에 꽈배기 광고판이 보였다. 금방 튀긴 꽈배기와 고로께를 샀다. 차에 타자마자 각자의 봉투에서 꽈배기를 꺼내 베어 물었다. 차 안엔 기름 냄새와 고로께 냄새가 섞여 진동하기 시작했다. 용문 근처에 이르렀다.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눈발이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했다. 눈인지 진눈깨비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금세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이맘때나 볼 수 있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겨울을 재촉하고 있었다.
분당까지 가는 길은 퇴근 시간과 맞물려 지체와 정체를 반복할 것이 확실했다. 거기서 다시 광역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는 나는 굳이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낼 필요가 없었다. 예전 중앙선 역에서 서울 쪽으로 옮겨 지은 팔당 전철역 앞에서 내렸다.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한 손에 들려있는 까만 비닐봉지에서 고로께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전철 안에서는 더 심하게 냄새가 날 게 분명했다. 비닐봉지를 단단하게 여미었다. 힘들게 무엇인가를 들고 다니는 노인들을 보며 혀를 찼던 내가 지금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냄새가 나든 말든 시치미 뚝 떼고 눈을 감았다. 장에서 손주에게 줄 주전부리를 사서 갖고 가는 영락없는 할아버지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