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밤, 들 가운데서_설유진
*이 글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극 <이런 밤, 들 가운데서>는 제12회 두산연강예술상 공연부분에서 수상한 ‘설유진’의 신작이다. 지난 11월 21일부터 다가오는 12월 9일까지 종로5가역 인근에 위치한 ‘두산아트센터’의 ‘Space111’에서 진행된다. 그녀는 글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자유’와 ‘사랑’을 고민한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이런 밤, 들 가운데서> 또한 자유와 사랑을 다루는데, 자유와 사랑이 도망간다면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5명의 배우들이 한 명씩 무대 가운데로 나와 이야기를 꺼내며 관객들에게 천천히 스며든다.
원형으로 구성된 무대가 흥미로웠다. 의자들이 틈을 두고 원을 그리고 있는데 점점 더 크게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좌석과 관객들의 좌석이 교차된 점 또한 시선을 주변으로 더 넓게 볼 수 있었고 덕분에 ‘함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것 같았다. 무대 가운데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도는 배우들은 모든 관객들에게 얘기를 하고 모든 관객들의 눈을 바라본다.
소외되지 않았다. 관객의 어는 그 누구도 연극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흔히 많은 연극에서 ‘배리어 프리’를 지향하지만 <이런 밤, 들 가운데서>는 ‘free’를 넘어 ‘liberation’을 보여준다. 원형의 이미지인 무대 공간과 배우의 동작, 그리고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가 해방을 선사한다.
배우들은 그들의 동작과 감정 설명 또한 대사로 풀어낸다. 이 연극의 특징은 ‘절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대사가 책을 읽듯이, 상황을 설명하듯이 감정이 절제돼 있다. 하지만 지문을 말할 때 감정이 한곳으로 모여 폭발한다. ‘승자’가 사랑의 시를 읊을 때 모든 감정은 둥근 무대의 구심력으로 한가운데에 몰렸고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다.
그러곤 관객에게 전달되면서 흐르더니 이내 굳는다. 관객은 배우가 터뜨린 감정을 굳은 채로 고스란히 안게 된다. 모든 관객은 전형적인 굴레에서 해방하고 배우들과 자유와 사랑을 찾을 준비를 한다. 배려로 시작된 지문 읽기는 이제 모두를 해방시킬 선언문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배우들이 책을 읽는 듯하지만 그 속도에서 질감이 느껴져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다. 한 줄기 조명을 통해 보이는 먼지들도 빛을 반사하며 눈을 부시게 한다. 그들이 뱉고 마시는 공기도 느껴졌다. 숨을 들이마시는구나, 이번에는 크게 들이마시는구나, 숨을 뱉는구나, 뱉지 못해 토하는구나. ‘소란’ 혹은 ‘승자’가 그랬던가. 뱉는 숨에서도, 마시는 숨에서도 사랑이 느껴진다고. 그게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연극이 지루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중간중간 노래와 춤이 나오며 무대의 둥근 세상에 재미를 더한다. 마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베이글처럼 무대 가운데에 연극의 요소들이 점점 더 모여 그 크기를 키워나가는 듯하다.
가수 ‘정태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승자’, 뻐꾸기 ‘자유’와 앵무새 ‘사랑’이 데려가는 환상 속 세계, 그 세계에서 춤을 추는 배우들. 이들의 세계와 움직임은 무대 가운데에서 무대 외곽까지 퍼져 나가며 또 한 번의 해방을 선언한다.
뻐꾸기 ‘자유’와 앵무새 ‘사랑’. 연극은 동물원에서 탈출한 두 마리의 새를 찾는 걸 중심으로 한다. 새를 찾으며 배우들이 나누는 이야기나 뉴스의 속보, 앵무새 ‘사랑’을 찾듯이 자신의 사랑도 회상해 보는 여정이 그 주변을 둥글게 감싼다. 연극은 자유와 사랑을 찾는다.
하지만 자유와 사랑에게 날개가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자유롭고 사랑스럽게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히려 동물원에 가둔다면 그것이 억압과 탄압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그런지 남산 부근에서 발견된 자유와 사랑을 찾았을 때, 숲이 우거진 남산 어느 곳에서 자유와 사랑을 발견했을 때 나는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자유(뻐꾸기)는 자유롭게 날다가 죽었고, 사랑(앵무새)은 자유(뻐꾸기)를 사랑하다가 죽었구나. 동물원 안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다.
<이런 밤, 들 가운데서>는 ‘도망간 자유와 사랑을 찾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자유와 사랑은 억압되지 않고 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소란’과 ‘승자’의 사랑도 그렇다. ‘소란’이 책임이 없는 건지, ‘승자’가 억압적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들을 가둔 철장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랑사이 그랬고 너에게 애정이 그랬다.
‘랑사이’가 ‘사랑이’를 뒤집은 오타인지, 혹은 지혜를 어원으로 둔 언어의 한 조각일지 의문을 제기하는 ‘소란’의 대사에서 나는 이 연극을 본듯하다. 연극의 전형적인 틀을 뒤집은 연극, 뒤집을 줄 아는 연극. ‘사랑이’가 맞을지 ‘랑사이’가 맞을지는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자유와 ‘랑사이’ 나에게 날아온다.
글_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박성준
[리뷰] 이런 밤에 들 가운데서 찾는 자유와 사랑 –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