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위대한 자
부정적인 생각은 이상하게도 생각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최악의 상태를 상정한다. 삶이 괴로워진다. 그것을 집착이라 한다. 긍정적인 생각도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면 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은 나쁜 일이 돼 버린다. 그것 역시 집착이다. 나쁜 일에 집착하든 좋은 일에 집착하든, 불필요한 정신 에너지를 허비시킨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잘 안다. 집착은 정신 에너지가 한 곳에만 모이는 것으로 그 밖에 다른 것의 가치를 못 본다.
“어떻게 생각의 꼬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당신의 의지로 시도해 봐라. 이 일이 쉬우면 모든 집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로워질 것이다. 행복은 내적 자유와 비례해서 얻어진다. 그러나 집착은 끊어내려 하면 꼬리가 더 달라붙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지난 좌절과 실패담에 생각의 꼬리가 나를 괴롭히던 어느 날, 나는 생각을 돌려보겠다는 심산으로 이전에 보던 책의 중간을 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좋지 않은 생각은 멈춰라.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선가 자주 읽어 내 머리에 이미 기억돼 있던 이 글귀에 나의 시선이 멈췄다. 내 생각은 오직 그 문장에만 머물렀다. 나는 마음에서 올라오는 강한 힘을 느꼈다.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그 좌절과 실패담이 꼬리를 물지 않았다. 나는 다시 맑은 정신을 되찾았고, 투명해진 마음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가늠해 봤다.
“내면의 강한 힘을 느껴라.” 평소와는 다르게 내면에서 올라오는 황홀하거나 강한 힘은 가장 깊은 무의식에 존재하는 원형의 힘이다. 사람이 일생에 걸어야 할 삶의 로드맵은 원형에 보관돼 있다. 자칭 무신론자이고 유물론자들이라는 사람들과도 나는 깊은 대화를 나눠봤다. 그들은 영적인 것을 소위 영적인 개념이 아닌 그들만의 언어나 방식으로 표현할 뿐, 인간성을 초월한 영적 존재임을 스스로 드러낸다. “나의 이상적 삶은 나 자신의 행복입니다.” 그는 이 일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일을 바라는 한 그는 영적이다. “나의 이상적 삶은 가족의 행복입니다.” 삶의 근거가 나 아닌 타인에게도 향할 때 그는 영적이다.
과도기에 생각은 많아진다
생각에 꼬리를 무는 일이 일어날 때 매우 고통스럽다. 심하면 그 생각을 자르려고 생명을 끊기도 한다. 그것은 고통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이유와 목적이 있다. 그저 불필요한 잡념 따위는 없다. 생각의 꼬리는 사람이 한 단계 더 성장할 때 꼭 일어난다. 많이 생각하게 한다.
어떤 좌석에서든 자기가 한 말을 돌아서서는 꼭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아예 말을 안 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했던 말을 후회하는 그 생각의 꼬리 끝에, 그는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 순간 타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으니,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그는 좀 더 영적 존재가 된다.
중년에는 멀리 보라고 노안이 오고, 노년에는 잊을 것은 잊으라고 건망증이 온다. 이후 지혜 노인이 되어 삶의 희비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가 온 곳, 즉 영적인 세계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노인은 존중이나 받아야 할 세대가 아니다. 뒤따라오는 세대에게 삶의 본보기가 되는 세대이다. 사람은 일생에 걸쳐서 외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육체적 지향에서, 삶의 태도를 중요시하는 심리적 지향으로 서서히 바뀐다. 그리고 육체와 정신을 초월한 세계를 탐닉하는 영적 존재로 변한다. 이 존재의 변형에 예외는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생각의 바닥까지 내려가라
사실 생각의 꼬리를 무는 일, 즉 집착은 고등동물에게만 있다. 그 집착이 오늘날 위대한 문명을 창조한 것도 맞다. 그러나 명심하라. 프로이트가 그의 저서 “문명과 종교”에서 지적했듯이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신경증에 더 잘 걸려 불행해진다. 지금도 문명보다는 자연을 경외하는 국가의 행복 지수가 더 높다. 자연은 사람이 마음의 바닥에 내려가게 하여 정화 시킨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퍼져나가 지구를 자체 정화하고 조절하는 현상이듯이, 사람의 마음도 자체 정화하고 조절하려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것 중 하나가 생각이 꼬리는 무는 현상이다. 이는 가벼운 가십거리에서부터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하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 일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바닥까지 한 번 내려가 보는 거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일, 그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생각하고 난 후에는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게 된다.
거의 항상 외부의 힘에 의존하고 싶은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해도 쇠귀에 경 읽기이다. 어떻게 할 준비가 안돼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라고 입에 밥을 넣어 드리듯 넣어 드릴 수는 없고 이런 말은 해드릴 수 있다. “걱정하지 말라. 당신 안에는 이미 초월적 조절 능력이 있다.”
삶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 안에는 이미 위대한 자(the great man)가 존재한다. 위대한 자는 당신을 조정하거나 헌신을 강요하는 따위의 일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다. 당신을 당신 되게 한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 집착, 그것도 내 안의 위대한 자가 나를 부르는 방법이니 그 분과 함께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것이다. 실은, 그 바닥은 맑고 투명한 유리와 같다.
마음순례 박성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