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
“무슨 생각을 하고 걸어요.”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데 뒤를 따라오던 분이 물었다. “무념무상이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했다.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는 지극히 고요한 상태, 문득 생명은 거기서부터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마음이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가 떠나온 곳, 그곳과 가장 가까운 상태를 우리들은 “행복”이라 부른다.
신생아를 생각해 보자. 그는 모든 사고와 감정이 무의식화 되어 있다. 그러니 의식의 주체인 자아의 생각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 사람은 본래 생각이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로 태어난다. 명상이나 요가는 그 상태로 돌아가는 것, 어떤 명상가는 태내로까지 돌아간 무념무상의 상태를 맛보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유아는 엄마의 젖을 빨면서 생존을 위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때부터 유아는 엄마와 관계를 욕망함으로 무념무상의 지극한 고요는 깨진다. 사람은 생각을 해야 살 수 있는 존재로 전환된다.
그리고 무념무상의 그 지극한 마음의 평화는 향수로만 남아있다. 이동원과 박인환이 듀엣으로 부르는 노래 《향수》를 들어 봐라. 그리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향수》는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을 목가적 풍경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대중가수와 성악가의 조합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생각이 없어지면 그곳이 마음의 고향이다. 편안해 잠을 많이 잔다. 숙면도 한다. 유아가 그렇다. 불면증은 생각이 너무 많아 생긴 일종의 불안 병이다. 고향을 잃은 병인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살면 생각이 많아지고, 현재를 살면 생각이 없어진다
올레길을 걷는 내 발 바로 앞에서 애벌레가 기어가고 있었다. 애벌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심한 사람의 발에 밟혀 죽을 수도 있는데, 애벌레는 그 사실을 모르고 앞만 보고 몸을 비틀며 기어가고 있었다. 애벌레는 가야 할 길이 있고 그 길은 본능적으로 가진다. 애벌레는 두려움이란 감정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애벌레는 새의 고단백질 간식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이란 생각 자체가 없는 존재에게 죽음은 조금도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온 곳으로 돌아가 그곳의 일부가 되는 최고의 행복한 날일 것이다. 애벌레는 고등생각을 못하는 미물이라기 보다는, 무념무상을 사는 생명체이다. 어쩌면 인간보다 훨씬 진화된 생명체일 수도 있지 않는가?
오랜 명상으로 쉽게 무념무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나왔다. 불경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있다. 일체는 본래 없는 것, 마음이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사념체 즉,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다. 보이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인데, 사람은 없는 것에 속고 속아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행복의 질과 양은 무념무상의 질과 양에 비례한다. 할 수 있는 한,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는 사람이 행복하다. 시대에 맞추어 미니멀라이프(minimal life,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는 것)가 유행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생각이 많아지면 그때부터 생각이 나를 산다. 생각은 단숨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는다. 따라잡을 수 없는 생각에 이끌려 다니는 삶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사유하는 이성의 능력을 말한다. 그의 명제는 근대과학 발달의 동기가 됐을 것이다. 나는 말한다. “생각만 하는 사람은 생각에 노예가 된다. 생각을 떼어놓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남편은 고급 공무원으로 관계자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자신은 매우 성실한 교사인 분이 강박증을 호소해 왔다. 공무원 신분으로 저렇게 대접받고 살다가 언젠가는 들통나는 것 아닌가. 나도 공무원인데 나에게도 피해가 오는 것은 아닌가. 이런 불안 때문에 강박증이 왔다. 너무 많은 생각이 교사의 강박 불안을 만들었다. 교사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과거와 미래를 살면 생각이 많아지고, 현재를 살면 생각이 적어지게 구조화됐다. 교사는 내일 일은 내일로 맡기는 것과, 남편의 일은 남편에게 맡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현재가 남는다.
철학적 인간은 생각하고, 종교적 인간은 걷는다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자 내 생각과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것들은 둘로 분리됐다. 내가 걱정하던 것들과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어 구름 위로 오르자 내가 걱정하던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허공에 떠 있었고, 그곳은 무념무상의 상태였다. 그러자 낯익은 손님이 노크를 한다. “만일 비행기가 추락하면? 나는 수영을 못하는데!” 자동차 사고보다 확률이 적은 생각이 불안을 만든다. 만일 추락한다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추락하는 그 짧은 시간만 불안해하면 된다. 실은 불안해 할 사이도 없다. 불과 5분 안에 일들이 일어나고 만다. 계속 가정법을 만들어 바로 앞을 불안해 하는 것이 고소 공포증이다. 고소 공포증도 일종의 범 불안장애에 속하는데, 그들은 생각이 너무 많다.
철학적 인간은 생각한다. 그들은 생각 끝에 더는 생각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 생각이 잠깐 없어진 상태, 나 스스로 나를 알 수 없는 상태, 이때가 무념무상이다. 생각은 허공으로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지고 나는 더 큰 존재와 함께 스스로 존재하게 된다. 이때가 종교적 인간이다. 생각만 하는 인간은 갈대와 같이 약하지만, 존재하는 인간은 마치 신처럼 된다.
중장거리 산행을 해본 사람은 잘 안다. 산행 초기에는 무의식에 있던 온갖 잡념들이 올라와 산만한 생각을 만든다. 체력의 절반이 소진될 무렵에는 이상하게 생각이 정리되어 단순해진다. 체력의 바닥이 보일 무렵에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 등산중독은 여기에 도취하는 것이다. 마라톤도 어느 시점에는 무념무상의 경지가 되고, 그것도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생각을 단순화하여 존재가 되는 연습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걷기이다. 직립보행 하는 인간은 걸어야 산다.
나의 어린 시절에 놀이는 거의 걷는 놀이였다. 술래잡기, 다방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전쟁놀이, 말타기, 자치기,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다 걷는 놀이다. 그때는 병원 갈 일이 없었다. 약국도 잘 안 갔다. 사람이 걷지 않아서 가장 큰 덕을 본 분들은 의료업에 종사하는 분들이다. 걷기는 떠나온 고향과 파동을 일치시키기에 가장 좋은 운동이다. 비문명인은 항상 걷는다. 그들은 과학을 발달시키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신비와 하나가 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가나심리치료연구소 마음순례 박성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