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파른 길을 오를 때는
돈이 중요한가, 자기가 중요한가?
강남에 아파트 한 채가 거의 유일한 재산인 부부가 있었다. 이제는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 하여, 부부는 그 아파트를 팔았다. 그러자 그 단지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지난 2년 사이에 아파트값이 거의 두 배로 뛰었다. 한국에서만 있는 희귀 현상이다. 아내는 지난 2년 동안 수시로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른 값을 점검하며 제 속을 긁었다. 우리 살림에, 다시는 강남으로 진입할 수 없다. 일생일대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여 매일매일 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괴로운 생각은 심각한 우울증이 되었다. 아내는 하던 일을 휴직해야 했다.
돈이 중요한가, 자기가 중요한가?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녀가 커플로 모여 흥겨운 술판을 벌였다. 모두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그중 한 여인이 남성들이 소지한 보석을 모두 훔쳐 달아났다. 이를 뒤늦게 안 남자들은 그 여성을 추격하다 부처를 만났다. 부처가 물었다. “보석이 중요한가, 자기가 중요한가?” 잠시 생각에 잠긴 그들은 자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자기는 나의 본체이다. 돈은 한낮 소지품에 불과하다. 자기는 소멸하지 않지만 보석은 소멸한다. 술에 취하고 아름다운 여인에 빠진 남성들은 자기를 잊고 있었다. 분노에 차서 보석을 훔쳐 간 여성을 쫓는 남성들도 자기를 잊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없어지지 않을 것을 포기하고 없어질 것을 쫓고 있었다. 그들이 큰 깨달음을 얻어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주문해라. 눈에 보이는 그것, 소멸해 버리는 그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으나 소멸하지 않는 자기가 중요한가. 한 사람의 인생이 천하보다 귀하다. 개인에게 힘든 일이 장난삼아 혹은 실수로 일어나는 법은 없다. 모든 힘든 일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아 나서라는 자체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 수 있다
그녀는 이 시련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 알았다. 종교인으로 돈을 최우선시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다른 태도로 살라는 신의 섭리라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내가?” 주위를 돌아보면 신의 이름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에게 신은 거액의 복권 당첨금을 손에 쥐여 주시는 분이다. 그래도 자신은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만 이 불합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생각의 끝은 없다.
아파트값이 두 배로 오른 것은 불합리한 국가 정책이 문제이다. 그녀는 자신을 불합리한 정책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다시는 복귀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을 당했다. 삶의 참된 본질을 찾아 떠나라는 그 분이 믿는 신의 은총으로 믿으면 안 될까? 그러면 너무 가혹한가? 수도승도 아닌데….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란 거의 비교에서 나온다. 그녀에게 자신은 손해를 본 사람, 그녀의 집을 매수한 사람은 횡재한 사람이다. 선동질한 부동산 중개인은 파렴치한 장사치이다. 정보를 알고 오래된 아파트를 팔지 않은 사람은 두 배의 이익을 챙긴 사람, 정보를 모른 그들 부부를 비롯한 소수는 희생자였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는 데에 익숙한 그녀에게 강남에 사는 사람은 우월한 자, 비강남권에 사는 사람은 열등한 자였다. 그녀는 앞으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할 많은 자원이 있었으면서도, 절망이란 생각에 빠졌다. 생명이 있는 한 절망은 없다. 절망이란 생각만 있을 뿐.
정호승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왔다고? 당신은 당신의 처지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고 있다. 당신에게는 여전히 삶을 지속할 충분한 자원이 있다. 산산조각이 난 것으로 다시 시작하는 인생, 짜릿하지 않은가. 인생은 경험인데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특혜이다. 왜 종교인들은 내게 좋은 것만 신의 응답이라 하고, 좋지 않은 것은 아직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체크해 놓는지! 사람의 생각이 신을 창조하고 있다.
가파른 길로 가라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은 가파른 고갯길로 오르라는 것이다. "왜"라는 생각을 멈춰라. 어떤 산이든 정상 직전에는 가파른 길이다. 더 오르기를 포기하고 그 아래서 희희낙락할 수는 있어도, 우회하는 평평한 길은 없다. 우연은 없다. 우리는 무의식 깊은 층에서 원형의 삶이 안내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삶에서 지금은 그 한점에 불과하다. 가파른 길일수록 위대한 선물임은 그때 가서 거울을 보듯이 분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