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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Aug 14. 2019

보리암에 두고온 바람(Wish)

나의 동아시아 최고의 친구들과 함께...

  지상과 금산 중턱을 잇는 셔틀에서 내리니 숨이 턱하고 막힌다. 아직 아침 시간이건만 7월 말 삼복더위는 주변의 삼라를 모두 쪄버리려는 듯 맹렬한 기세로 화독을 쏘아대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니 차 두 대가 간신히 비껴갈 수 있을 것 같은 흙길이 나타난다. 길옆으로 무성한 잡목과 편백들이 팔 가지를 휘어 아치형의 그늘을 등산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맑은 산소와 피톤치드는 덤이다. 이 길을 20분 정도 걸어가면 보리암에 당도할 수 있다. 때아닌 짙은 해무까지 서려 1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계가 엉망이다. 제멋대로 자라난 잡목들이 길섶에서 비릿한 풀내음을 뿜어내고 있다.    

  “3번 연속으로 갔는데도 로또복권 당첨이 안 되더라. 재미 삼아 기도해봐.”

  일생에 딱 한번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보리암에 대해 영호는 손사래를 치고 코지는 제법 흥미를 보인다. 그러고 보면 우리 셋은 대학시절부터 참 바라는 것도, 꿈꾸는 것도 많았던 열혈청년이었다. 영호는 ‘야심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한·중·일을 잇는 무역업 CEO를 꿈꾸곤 했다. 이메일, 미니홈피 주소에는 항상 CEO라는 단어가 들어갔고 실제로 경영학 석사를 수학하며 꿈을 단계적으로 완성해가던 청년이었다. 한편 동아시아 신흥 조각가로 예술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코지는 본디 회화를 전공했던 미술학도였다. 회화학도에게서 조소의 잠재력을 확인한 지도교수가 다른 길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이후 코지는 동아시아 최고의 조각가가 되어보겠노라며 희망을 내비치곤 했다. 호주머니는 빈곤했지만 눈빛은 언제나 초롱초롱했고 우리들의 꿈만은 늘 배불렀던 시기였다.    


  흙길 굽이굽이 사이로 해안의 절경과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짙은 해무로 시계가 좋지 않지만 해안 절벽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본다는 것 자체가 도심의 직장인에게는 이채로운 경험이다. 뒤이어 대웅전과 좁다란 돌계단을 지나자 해수관세음보살상의 뒷모습이 비로소 자태를 드러낸다.   

  연꽃 모양의 밑단을 합쳐 스무 자는 족히 넘어 보이는 높이에서 해수관세음보살이 자비로운 미소로 중생을 반기고 있다. 현대의 기술이 가미되었겠지만 경질의 화강암을 저토록 섬세하고 과감하게 주물러 내다니, 분명 석공은 불심 가득한 구슬땀으로 보살상을 완성해내었을 것이다. 인자한 눈웃음 밑으로 선 콧날이 오뚝하다. 살진 젖가슴 양 옆으로 불교 특유의 손동작을 취하고 있는데 이 동작은 기도하는 자의 액운을 멀리 쫓아 중생에게 복을 쥐어준다는 의미라고 언뜻 들은 기억이 난다. 옷 주름 하나하나도 대충 마감하는 법이 없다. 보살상이 입은 옷은 아마도 승복인 듯한데 발목까지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옷의 질감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일순 짙은 해무가 조각상의 온몸을 휘감아 돌더니 전신을 가볍게 애무하고는 이내 공기 중으로 흩뿌려진다. 일생에 단 한 번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보살상의 미신이 떠올라서일까, 제법 몽환적이다.

  지갑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한 장을 코지에게 건넨다. 미신을 믿지 않는다는 영호는 이내 보살상에 흥미를 잃은 듯 절벽 아래만 바라보고 있다. 해무가 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보며 오히려 흥미를 보인다. 코지와 나는 복전함에 다가가 정성스레 천 원을 공양하고 삼배를 올린다. 

  두 손 가지런히 모아 불상에 절을 올리는 코지의 몸동작엔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절 한 번에 드는 시간이 제법 길다. 코지는 속으로 어떤 것을 염원하고 기도를 올리고 있을까. 한국 유학시절 기숙사 옥상에서 담배연기를 흩날리며 귀에 인이 박이도록 이야기하곤 했던 ‘동아시아 최고의 조각가’의 꿈일까, 아니면 여러 차례의 시술 끝에 힘겹게 잉태한, 지금 너 돌을 맞이한 자신의 2세 ‘미사짱’의 미래에 대한 바람이었을까. 양손 가지런히 모아 보살상에 절을 올리는 코지의 모습은 공손하다기보다 차라리 간절해 보인다. 나 역시 무언가 간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서둘러 부와 건강, 행복에 대한 염을 외었다.

  제례를 마친 코지의 눈빛이 경건하다. 셋이 모였다하면 짓궂은 장난에 농담으로 시간을 보냈던 우리에게 이런 진중한 공기는 익숙하지 않다. 해안 절벽 바람이 거세다. 해무도 서서히 옅어진다. 어색한 공기를 깨듯 영호가 ‘코지, 새 장가 들게 해달라고 빈 거 아니야?’ 떤 너스레에 ‘박군 이야기가 맞다’라며 능숙하게 응수한다. 어느덧 해무가 거의 다 걷혔다. 반대편 산등성이의 기암괴석이 눈에 들어오는데 호선의 구도로 시선을 주욱 이어가자 해안가의 은모래가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 코지가 말했던 것처럼 예술로서의 자연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가보다. 

  오후의 햇살이 제법 강렬하다. 셋은 미리 목에 걸치고 온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산 정상 봉화대로 향한다. 땀 줄기는 온몸을 흘러 시원하게 우릴 적시고 바닷바람은 이에 질세라 땀줄기를 부지런히 식혀내고 있다. 해발 773m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마치 레고로 만든 장난감 마을 같다. 군데군데 놓인 펜션과 건물들, 얼룩덜룩한 간판과 깨알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한없이 유치하게만 보인다. 채 수평선까지 못 간 곳에 고깃배들이 놓여 생업에 열중하고 있다. 고깃배 선장은 오늘 새벽 만선의 꿈을 꾸며 해무를 뚫고 닻을 올렸으리라.


  등산은 항시 내리막이 오르막보다 더 힘든 느낌이다. 주변의 잡목을 잡으며 아직은 비탈진 흙길을 내려온다. 산그늘의 피톤치드와 맑은 산소를 쐬어서 그런지 머리가 개운하다. 태양이 제법 커다래졌다. 산기슭을 휘감던 해무도 거의 다 걷혔고 다시금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영호가 밀짚모자를 들추어내 땀을 닦으며 묻는다.

“코지상, 아까 기도 뭐라고 올렸어?”

“박군, 묻지마라.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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