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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마늘 Mar 20. 2023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는 필요하다


초인종이 울렸다. 누군가하고 문을 여니 웬 잘생긴 청년이 큰 배낭을 메고 서 있었다. 




청년은 "이쪽 도로에 있는 집들 초인종을 다 눌렀는데 처음으로 문을 열어준 집이에요. 고마워요."로 말을 시작했다. 아차 싶었다. 방문 판매원이 틀림없었다. 이 청년 분명히 이 대사를 무수히 사용했으리라. 




내가 이렇다 대꾸할 겨를도 없이 청년은 속사포처럼 멘트를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 새, 브러시, 행주, 각종 청소 도구 등 생활용품을 죽 꺼내 놓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든 개인적 상황을 중간중간 어필하면서. 




2/3쯤 귀에 들어왔을까. 혼이 쏙 빠지는 것 같았다. 거절해야 할 거 같은데 난감했다. 어느 새 청년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위층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남편이 소리를 들었는지 내려왔다. 성큼성큼 내려 온 남편이 내 앞을 막아서더니 청년과 대화를 이어갔다. 나도 대화에 끼고 싶은데 왜 이렇게 막아 버리지? 




청년은 남편에게도 내게 했던 말들을 반복했다. 이곳이 여러 집 중에서 처음 문을 열어 준 곳이라며 고맙다고. 어떤 집은 문도 열지 않은 채로 다짜고짜 뭘 원하냐고 묻고는 소리 지르며 자기를 쫒아버렸다고. 그러면서 어느 새, 다시 물건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설명했다. 청년은 자신이 파는 물건의 50 퍼센트를 수익으로 가져간다고 했다. 




영업맨은 영업맨이구나. 저렇게 쉬지 않고 얘기하는 것도 힘든데. 청년은 자신이 자라난 지역을 얘기하며 환경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자신에게 어린 자식이 있으며(어려 보였기에 깜짝 놀랐다) 곧 여자 친구가 또 출산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런 상황이라 이렇게 방문 판매에 나섰다며 다시 한번 문을 열어 줘 고맙다고 했다. 동정심에 호소하기. 이게 방문 판매의 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나이도 이제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데.   




어쩌다 방문 판매 일을 하게 되었을까. 영국은 본인이 일하고자 하면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 나라인데. 내가 지금 회계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그런 혜택을 받아서가 아닌가.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남편이 물건을 몇 개 골랐다. 아무래도 물건을 사줄 모양이다. 청년에게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는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 녀석,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게 아닌가! 너덜너덜해진 포장지는 그렇다 치자. 언뜻 봐도 2~3 파운드면 사게 생긴 물건들을 10~15파운드라고 했다. 결국 처음에 5~6개의 물건을 골랐던 남편은 3가지로 줄여 가격을 물어봤다. 청년은 42파운드라고 했다.  


청년에게서 산 물건들 중 하나


남편이 바로 알겠다고 하자, 청년은 스스로도 미안했는지 40파운드만 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청년이 주는 계좌로 송금이 이루어졌다. 




청년은 여러 번 고맙다고 얘기한 후, 자리를 떴다. 청년이 간 뒤 남편이 하는 말. "뭔가 범죄를 저질렀을 거야. 그래서 일반 회사에서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지. 여긴 어디든 범죄 경력 조회가 필수로 들어가니까."




그제야 의문이 해소되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저렇게 젊고 멀쩡한데 방문 판매일을 하는구나. 




남편이 청년과 내 사이를 가로 막았던 것도 이해가 됐다. 어떤 사람일지 모르니 혹시 해꼬지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리라. 




영국은 많은 복지 혜택을 주는 만큼 범죄나 부도덕적인 행위에 대해서 아주 엄격한 듯하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해당 지원서에는 꼭 범죄 경력이 있는지 물어보는 사항이 있었다. 한국도 물론 그렇지만 영국이 그런 부분을 좀 더 꼼꼼하게 체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청년의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도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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