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초반에 알게 된 동아리 선배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지레짐작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쉽게 완성하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한 후배가 여성과 같이 걸어가면 곧바로 둘이 연애를 한다고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확실한 표정으로 '걔네 둘 사귀잖아'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는데, 이때 그 표정 때문에 한동안 나 역시도 거짓 정보를 믿고 다녔다. 또한 그 선배는 인도 여행을 갔던 후배와 교환학생으로 캐나다에 간 후배의 이야기를 대충 듣고는 그 이야기를 자기 마음대로 섞어서 이해했다. 그래서 인도 여행을 갔던 후배는 졸지에 '이상하게도' 교환학생을 인도로 간 특이한 애가 되었고 뒷담의 대상이 되었다. 법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친구가 변호사 삼촌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그 친구는 자기 삼촌을 굳이 변호사라고 소개하지 않고 그냥 '가족 중에 변호사가 있어'라고만 설명했는데 그 선배는 그 친구의 아버지가 변호사라고 주변에 말을 하고 다녔다.
그의 상태를 모르고 한 학기 학교를 함께 다닌 결과, 온통 거짓 정보들이 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잘 모르던 스무 살 초반 그 선배는 정보통인 사람으로 보였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너무나 쉽게 정보들을 가공해서 재구성하는 (심지어 떠벌리고 다니는) 무례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아마도 정말로 그런 단편적인 사실을 조합해서 가공한 정보들을 '진실'로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정신적인 질환이 있었는지 아니면 습관적인 거짓말로 시작된 단순한 허어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선배를 겪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특히 믿고 싶었던 진실은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역시 포스트-트루스 시대인만큼 무엇이 진실인지보다는 무엇이 진실이었으면 하는지가 중요한가 보다.
여전히 주위에서 그 선배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진다. 안희정이나 박원순부터 시작해서, 총선 부정선거나 게이 코로나 이태원 혐오까지. 한 번은 어떤 사이트에서 차이나 게이트라는 단어를 본 적이 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려고 선거조작을 하고 모든 공공시설을 장악했다는 해괴한 음모론이었다. 그곳 댓글에는 (물론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수많은 좋아요와 우리나라가 걱정된다는 덧글이 달려있었다. 물론 결론은 문재인 타도로 이어졌고 말이다.
그 선배가 이상하게 느껴지면서도 요 근래에 다시 떠오르는 것은, 그 선배가 여기저기서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중요하지 않게 된 시대에 더 나은 진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