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내 꿈이다

by 청하

"책 좀 읽어라"


엄마의 잔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는 햇볕 좋은 날

선풍기를 틀어두고 침대에 대자로 잠시 누워 있었다.

12살의 그때 나는 학교를 다녀오고 학원 가기 전 30분만 잠깐 누워 있고 싶었다.

열린 방문 사이로 엄마가 지나가며 말씀하셨다.


"학교 갔다 와서 맨날 빤빤히 놀고 팔자 좋아! 시간 날 때 책 좀 읽어라"


잠깐의 휴식도 허용하지 않는 강압적 독서를 요구하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몸을 재빨리 일으켜

아무 책이나 얼른 하나 잡고 책상에 앉아 읽는 척한다.

글은 읽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고 덩달아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는 잘 몰랐다. 나의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을....


14살이 되었고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초등학교 때의 개그감으로 얻은 나의 인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여기저기 초등학교에서 온 낯선 아이들과 한 반에 앉아 있었다.

그 느낌이 매우 낯설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갖아주길 원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개그가 담긴 따듯한 말 한마디 선뜻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덩달아 초등학교 때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친한 친구들 모두 나와 다른 반이 되어서 낯선 감은 여느 때보다 더 심하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 혼자 심심해서 연습장을 펴고 펜을 들었다.

아직 새 학기 초반이라 연습장은 어떤 글씨도 그림도 써져 있지 않았다.

난 내가 상상하는 글을 써 나갔다.

수정이나 고민 없이 그냥 내가 상상하는 재미난 이야기를 글로 거침없이 풀어 나갔다.

그때만큼 펜은 연습장 위의 메시처럼 또는 연습장 위의 김연아처럼 자유자재로 마치 생각할 겨를 없이 글씨가 먼저 써지는 것처럼 글이 막 써졌다.

연습장 2장, 총 4쪽의 글을 읽기 힘든 글씨체로 10분 내에 완성하였다.

나의 첫 글은 반 친구들의 외형이나 행동을 보고 나름대로 쓴 무협소설이었다.

옆 짝꿍이 나의 글에 관심을 보였다.

짝꿍이 먼저 읽고 나서 그다음 내 뒤 책상 아이들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금세 나와 친구가 되었고 수업시간에도 우리 반 아이들은 돌아가며 분단별로 체계적으로 읽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간혹 '큭큭'하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면 내 초단편 소설을 보고 웃는 소리라 확신하게 될 정도로 나의 초단편 소설은 인기 만점이 되게 되었다.

꼭 2장에 맞춰서 작성하였고 꼭 한 페이지 건너뛰고 새 글을 썼다. 한 페이지 건너뛴 이유는 아이들이 거기에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다. 난 그 댓글을 보며 너무 즐거웠고 뿌듯했다.

다른 반에서도 찾아와서 나에게 물어봤다.


"다음 편은 언제나와?"


모두들 나 글을 기다리는 게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복잡한 상황, 환경 다 제쳐두고 순수하게 날 정화하고 기분 좋게 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난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여러 글을 썼고 간혹 전학 가는 친구가 나에게 전학 선물로 소설책을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한 권씩 주거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한 권씩 준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정말 작가가 된 거처럼 나 스스로가 멋지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글쓰기는 마음에 여유가 있었을 때 써지는 걸까?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께서 원하는 인생의 최소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이리저리 치이고 다니다가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하다못해 군입대도 부모님이 가라는 데로 가게 되었다.

원하지 않던 곳에서 버티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일들이 많았다.

그러든 말든 시간은 흘러 병장이 되었고 그제야 난 여유가 생겼다.

무료할 때 다시 노트와 펜을 꺼냈다.

학창 시절 느낌 살려서 일상 소재와 인물들로 재미있는 소설을 썼고 많은 병사들이 내 글을 사랑해 줬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내가 병장이라서 다들 좋아한 척했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이리저리 치이다가 취업이 급한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시험 기간 때 어디선가 소설가 이외수 작가님의 문하생 모집을 위한 글쓰기 공모전을 보게 되었다.

한 달간 열심히 썼다. 단순히 한 두장이 아니라 수정도 해가면서 같은 글을 여러 번 곱씹으며 표현을 다양하게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제대로 된 첫 소설 '바다의 별을 쏘다'가 탄생했다.

하지만 문하생은 되지 못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과정에서 얻은 행복이 너무 컸다.


순전히 글을 쓰며 느끼는 행복과 벅참

스토리에 혼자 빠져서 다음은 어떻게 될까 고민하던 그 밤들

그렇게 고생 끝에 완결지은 나의 글


모든 게 너무 뿌듯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탈락이라는 결과를 보면서도, 덩달아 망해버린 시험 결과를 보면서도 그 한 달이 나에게 초등학교 때 평화로운 매미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 맞던 따듯한 햇빛의 느낌이었다. 찰나였지만 행복했다.

그렇게 난 26살 이후 글을 쓰지 않았다.


멋진 외국계기업에 취업을 했고 승진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고 다른 행복을 추구하며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행복만을 추구하던 나에게 심한 공황장애가 오게 되었다.


여유 없는 삶을 10년을 살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하다못해 일도 하기 싫었다.

그러다 브런치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글을 하나하나 쓰게 되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작가 신청을 누르게 되었다.

8번의 탈락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글을 쓰는 동안 현실에서 탈피하여 나만의 세상에서 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도전한 9번째 시도


그리고 받은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 당당히 말해 왔던 내가 브런치 세상에서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는 나에게 단순히 작가의 타이틀을 준 플랫폼이 아니라 나의 공황을 치료해 주는 치료제이며 힘들고 여기저기 치이는 치열한 삶 속의 유일한 여유이다.

브런치를 통해 여유롭게 햇빛을 쬐는 행복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게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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