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간격

인간은 거리가 필요하다

by 청하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이건 학창 시절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개념이다.

하지만 이런 걸 잘 알려주던 그때 학창 시절 사회시간에 왜 인간은 간격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나?

도덕 시간에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예의를 지키는 그런 행동지침만 알려주었지 어디에서도 인간에게 간격이 필요하고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걸 잘 모르는 성격이 적극적인 사람들은 때론 그 거리가 너무 좁아져 상대방의 선을 넘기도 한다.

진작에 이런 걸 알려주었다면 어렸을 때부터 교육되어 있어 훗날 커서, 어른이 되어 이런 일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을 겪는 일의 횟수가 적어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난 배운 적도 없고 이런 부분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점점 가까워져 가는 게 느껴지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어 버린다.

직장에서 만난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이나 아니면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같은 동내 친구 등 우리는 이렇게 선을 얼마든지 넘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꼭 친구나 또래뿐만이 아니라 부부,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거리는 꼭 필요하다.


부부 나 연인 같은 경우 서로에게 비밀 없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가장 가까운 사이로 우린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세심히 들여다보면 그 세상 가까운 부부도 선이라는 경계에서 서로 가깝게 존재할 뿐이지 그 선 없이 또는 그 선을 훌쩍훌쩍 넘나드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부부간에 존재하는 선, 지켜야 하는 거리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자기가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여러 번 싸우고 서로 성격을 경험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상대방이 어떤 점에서 반응을 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고 말하기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모호한 선의 경계가 점점 뚜렷해져 간다.


자식 같은 경우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선과 그 간격이 넓다는 걸 알 수 있다.

잘하면 정말 가까운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남보다 더 먼 간격을 유지하는 사이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부모가 얼마나 잘 교육시키느냐에 따른 것이 아닌 부모가 자식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에 따른 것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먼저 선을 넘을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자식이 부모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부모는 자식과 사이에 선을 넘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꽤 높다.

부모는 무의식적으로 자식은 나와 같다고 단정하고 내가 해봤을 때 안 좋았던 경험들을 못하도록 사전에 주의시키고 행동에 지시를 내리고 가이드를 한다. 하지만 자식도 독립적 개체인 남이라고 한번 생각해 봤을 때 남은 그런 주의와 지시와 가이드를 좋아할까? 남에게 이런 일행동을 한다면 그게 가스라이팅 아닐까?

자식은 분명 생물학 적으로 내가 낳은 새끼이지만 최소한의 보호만 필요할 뿐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은 이미 어린이집을 들어가며 사회적 생활을 할 때부터 스스로 배우기 시작한다. 굳이 우리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디선가 부딪히고 깨지며 우리가 우려하던 상황들을 겪고 본인 스스로만의 인생길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보호기능을 'on' 시켜 그들을 가스라이팅하는데 이게 만약 좋은 방향으로 간다면 '부모덕'이 되겠지만 이게 나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부모 때문'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부모 자식 간 거리는 자식이 결혼 전에는 딱 부부보단 조금 멀리 그리고 남들보단 가깝게 가 적당하다.

자식이 결혼한 후에는 딱 남들만큼의 거리가 적당하다.


6,70년대 부모님들은 정말 대가족생활을 해왔으며 친척들끼리 모이는 것이 당연했고 이웃집 사람들과 서로 넘나들며 정을 나누고 낮에는 대문도 활짝 열어 놓을 만큼의 사람 간 정으로 생활을 해왔다면 현재 2023년이 지나가고 2024년을 한 달 앞둔 지금은 그전에 생활들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을 그런 환경이다.

6,70년대 부모님들의 사람을 대하는 기준으로 2020년대의 젊은 친구들 대한다면 어떨까?

젊은 사람들은 경악을 할 것이다. 상상도 못 한 거리에 상대가 와있고 선을 넘나들며 자신을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어른들이 본인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정으로 왔다갔다한 선인데 그것을 상대가 원치 않는다면 정이 아니라 무례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선들을 넘나드는 나를 발견했다.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던 인간의 거리를 혼자 기준하고 혼자 고민하고 찾아보았다.

내가 겪어온 부분에 대해 다시 정립하고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부부, 친구, 부모, 자식, 직장동료

크게 이런 부류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부부 같은 경우,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가까운 존재인건 확실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친구와 부모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연락도 뜸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그 시간을 본인과 상대방에게 집중을 하게 되고 그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연애 몇 년으로 상대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고 하는 순간 그 선을 넘을 필요충분조건에 도달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도 아내와 몇 번을 다투고 말씨름하고 갈등을 빚어 간신히 그 선에 대한 경계를 찾게 되었다.

그 선을 찾은 이후 난 적절한 거리를 두게 되었으며 상대가 그 선을 넘지 않는 이상 난 그 안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 같은 경우, 특히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온 친구는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매일 같이 학교에서 보고 하루 중 부모님들보다 더 오랫동안 같이 보는 그런 사이, 친구.

학창 시절에는 당연히 서로 말없이 눈빛만 봐도 어떤 의미인지 알정도로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각자의 인생길에서 뚜벅뚜벅 걷다 보면 못 보는 날이 꽤 많을 것이고 친구가 서로 어떤 일들을 겪는지 무심한 순간들이 오고 말 것이다.

그때도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잘 아는 그 친구는 학창 시절 그때 그 친구이지 지금 사회물을 가득 먹은 나이 먹은 친구는 아닐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친구에게도 적당한 거리유지가 필요하다.

스스럼없이 그 선을 넘나드는 친구였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났을 때 그 선을 넘는 경우 그것 또한 그 친구에게 무례로 느껴지기 충분하다. 그럼 이전의 관계들이 무너질 수도 있을 정도의 상황이 오게 될 수 도 있다.

친구는 친구대로의 인생을 살고 있고 정말 힘들 때나 옛 추억이 그리워 추억을 되새기고 싶을 때 그리고 새로운 내가 생각지 못한 추억을 듣고 싶을 때 잠깐 보면서 즐거워하는 할 수 있는 존재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와의 거리 같은 경우, 보통의 자식들은 부모님과 큰소리치며 싸울 일이 많지 않다.

사춘기 때 그랬을 수도 있지만 크면서 부모님들의 대부분의 선 넘는 행동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나도 세월이 지나며 철이 들고 부모가 되고 그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큰소리를 치며 싸우게 되었을 경우 이건 좀 부모 스스로 그리고 자식 스스로가 생각을 해볼 문제다.

자식에 대한 입장에서 먼저 부모에 대해 확실히 몰랐을 것이다. 알고 그 선을 넘었다면 싸울 준비를 하고 넘은 거라 상관은 없지만 자식 입장에서 나는 그냥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인데 부모님이 욱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 잘 몰라 그런 일이 일어난 경우가 많다.

부모님들도 위에 친구들처럼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 생활을 하고 독립생활을 하게 되며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가치관도 변하시고 본인들의 성격에 변화도 있게 된다. 같은 '나'라도 20살 때의 나와 40살 때의 나 그리고 60살 때의 나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에 따라 선의 기준도 달라지고 상대가 지켜야 하는 선에 대한 거리도 달라질 것이다.

그 부분만 좀 이해하고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부모님과의 갈등은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과의 거리 같은 경우, 유아기, 청소년기에는 분명 어른들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시기이다.

세상의 더럽고 치사한 부분에서 조금 지켜줘야 할 필요가 있고 가끔 그런 부분을 모르게 넘어가야 하는 순간도 있다.

이럴 경우 자식과의 거리는 매우 가깝고 그 선은 거의 없다시피 지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의 품 안의 자식이 가깝게는 20살 멀게는 몇 살이지 모르는 결혼하는 순간, 거의 남으로 봐야 한다.

도와줄 것도 도움받을 것도 생각할 필요 없이 남으로 보는 게 가장 깔끔한 선으로 생각된다.

물론 자식이 너무 애교도 많고 부모밖에 모르는 바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혼자 알아서 잘 살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간혹 자식이 결혼하고 나서 나에게 효도를 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있다.

내 자식이 남자건 여자건 상대 부모보다 나에게 더 잘하길 바라고 부부인 당사자들 서로보다 부모에게 더 신경을 쓰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있다.

남에게도 그럴 것인가? 그런 바람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자식과의 관계를 망칠 수도 있는 바람이 되기 충분하다.

그냥 남 대하듯이 남에게도 충분히 정을 담아 인사할 수 있고 정을 담아 같이 밥도 먹을 수 있다.


사람마다 그리고 관계에 따라 선에 대한 거리가 다르고 그 측정이 필요한 시점이 온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부터 이런 선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거리를 측정해 보자

선을 따라 거리를 지키며 그 사람과 쭉 걷다 보면 서로 기분 좋게 각자 인생의 길을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범한 아저씨의 현실 다이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