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의 역사 2 <곤쟈크모노가타리슈10>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곤쟈크 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권 29에는 '본조(本朝) 악행'편을 설정하여, 많은 '도적'담을 싣고 있다. 그 예가 아래와 같다.
헤이안 시대 이후 각종의 문서・일기・법령 등에 "도적으로 처할 것(盗人に処すべし)", "도적의 죄과로 취급할 것(盗人の罪科を被るべし)", 혹은"도적에 의거(盗人の准拠)" 등의 용어가 관용구 또는 주술어처럼 사용되었던 것은, '도범(盗犯)'= 기피해야 할 중대 범죄라는 인식이 강하게 형성되었던 결과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많은 경우 실제 도적 행위가 발각되거나 붙잡히게 되면, 재지에서 또는 피해 당사자에 의해 자치적으로 ‘살해’당했고, 그것이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도적질 하러 들어간 자는 상대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 경우가 많다.
"세츠 국(摂津国)에 영지에 숙직하러 올라온 게스 오토코(신분이 낮은 자;下衆男)가 있었는데……(도적 모의를 주인에게 밀고했다). 주인은 ……게스(下衆)는 물욕에 눈이 멀어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는 법인데, 대단한 일이다’ 하고……(강도하러 들어온) 호우멘(放免) 10명을 병사 4,50명을 동원하여 붙잡았다……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남에게 알리지 않고 밤에 몰래 밖으로 데려나가 모두 사살(射殺)해 버렸다"(29-6)
"물건을 함께 펼쳐 분명하지 않은 사람 등에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런 마음을 일으키는 자가 있는 것이다. 종자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하물며 친하지 않은 자로서 그런 마음 있다면 이는 반드시 의심해야 할 일이라고 전해온다"(29-7)
"산중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에게 활, 화살을 건넨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이다."(29-23)
"굉장히 좋다고 이야기해도, 게스(신분 낮은 자)가 말하는 일은 믿고 따르면 안 된다.……"(29-24)
<곤쟈크> 속에는 도적질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주장하거나, 이를 응징할 것을 외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조심하지 않았던 것을 비난하거나, 있다고 자랑하지 말 것, 가까운 자라도 믿지 말고 의심할 것, 당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 등을 주의시키고, 위(29-20)와 같이 '야마토 타마시', 즉 임기응변의 대응력, 처세술을 강조하는데 주력한다.
피해당한 측의 잘못을 도적질보다 더 큰 '악'적 요소로 지적하려는 태도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도적에 맞서 이를 강력히 근절시키려는 의지보다는, 오히려 이와 타협하고, 조심하고, 의심하고, 주의해야 한다는 등이, 그들이 피해 갈 수 없었던 '악-도(盜)'의 세계에 대응하면서 키워 온 현실 인식이자, 생존을 위한 마음가짐이었다.
항시적인 사회 '악'으로서 '도적'의 문제는 이후 중세 사무라이 시대를 통해서도 근절되지 못하였다.
일본 중세에 있어서 도적은, 병이나 기근과 같이, 악신(悪神)의 저주-재앙의 하나로 인식되기도 하였다(笠松宏至<中世の罪と罰>).
또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측의 문제로서 보는 의식이 발달하여, 이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 주의시키는 강한 경계 의식이 지금까지도 일본 사회에 진하게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