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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Jul 17. 2020

도다이지(동대사) 대불은 어떻게 탄생했나?

-쇼무(聖武) 천황의 정신세계-

              

<속일본기>天平15(743)년 10월 15일, 쇼무(성무 聖武;재위 724-749) 천황 다음과 같은 조(詔)를 내렸다.     


“짐은 덕이 적으나 감히 대위(大位)를 이어받아, 모두를 구하려는 뜻을 가지고 사람에게도 사물에게도 힘써 자비를 보여 왔다. 나라의 모든 곳이 이미 자비와 용서로 젖었으나, 하늘 아래 불법의 은혜는 널리 퍼지지 못하였다. 실로 삼보(三寶;불(佛), 법(法), 승(僧))의 위령(威靈)에 의지해 하늘땅을 풍요롭게 하고, 만대의 복업(福業)을 쌓아 모든 사물이 번성토록 하고자 한다. 


이에……보살의 대원(大願)의 발하여, 루사나불(盧舍那佛)의 금동상 1구를 만들어 바치려 한다. 나라의 동(銅)을 다 써서 불상을 만들고, 큰 산을 깎아 불당을 갖추어 널리 불법이 미치는 세계의 사람들을 짐의 지식(知識;신자)으로 하고자 한다. 결국 같이 이익을 얻어 보제(菩提)의 경지에 이르고자 함이다. 


무릇 천하의 부(富) 가진 자, 짐이다. 천하의 권세 가진 자, 짐이다. 이 부와 권세를 가지고 이 존상(尊像)을 만들고자 한다. 일은 이루기 쉬우나 마음은 이루기 어렵다. 공연히 수고만 하고 사람이 능히 감(感) 하지 못할까, 혹은 비방을 낳아 오히려 죄에 떨어뜨리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므로 제 지식은, 지극한 성심으로 각기 큰 복을 불러, 매일 세 번 루사나불에 예불 할 것. 스스로 마음을 다해 각기 루사나불상을 만들도록 할 것. 


만일 한 포기의 풀, 한 줌의 흙이라도 불상을 만드는데 돕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이와 같은 조(詔;천황의 명령서)에 따라, 나라(奈良) 헤이죠 궁(平城宮) 동쪽에 , 화엄종의 총본산. 소구쿠분지(総國分寺 총국분사), 곤코묘 시텐노 고코쿠지(金光明四天王護国寺 금광명 사천왕 호국사), 다이게곤지(大華厳寺 대화엄사) 도다이지(東大寺 동대사)가 탄생하였다.


일본의 역사서는 보통 이를 ‘진호(鎭護) 국가’의 사업으로 기술한다. 

동남아에 전파된 상좌부 불교와 달리, 중국이나 한반도처럼 일본에도 ‘호국불교 사상’이 발달하였다고 평가한다. 이른바 불력(佛力)에 의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이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 포기의 풀, 한 줌의 흙을 가지고’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쇼무의 이 조영 사업에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독려되었다.


그리하여 한때는

 “요즘 소승 행기(小僧行基) 및 그 제자들이 길가에 마구 군집하여 망령되이 죄복(罪福)을 설파하고, 붕당을 만들어……집집마다 다니며 잘못된 설교를 하고 강제로 남은 물건을 구걸하고, 성도(聖道)를 사칭하여 백성을 꾀인다. 도속(道俗)이 문란하고 백성들이 업을 버린다”(<속일본기>養老元(717)년 4월壬辰 詔)라고 하며 마구 탄압하였던 행기(行基) 승려에게도, 

승강제(僧綱制)의 제1위인 대승도(大僧都)의 지위를 수여한다(<동>天平17(745)년 정월己卯). 그의 무리들을 대불 조영 사업에 참여시키고자 하기 위해서였다.

      

도금용 사금(砂金)도 백제왕 경복(百済王慶福)이 무츠 국(陸奥国) 오다 군(小田郡)에서 발견하여 헌상하는 등, 대대적인 지원이 동반되었다.     


그리하여 8번에 걸친 주물(鑄物) 과정을 거쳐 마침내 749년 10월, 좌상(坐像) 5장3척5촌(약 15미터)의 대불(大仏)이 완성되었다. 오늘날의 일본 '국보'의 탄생이다.

751년(天平勝宝3) 대불전(大佛殿)이 완성되고, 다음 해 4월 9일 성대한 대불개안 공양식(大佛開眼供養式)이 치러졌다.     

                                                

   * 1980년 동대사 대불전 소화(昭和) 대수리(大修理) 낙경 법요(落慶法要) (朝日百科<日本の歴史2>)



그러나 이 쇼무조(聖武朝)의 대불전(大仏殿)과 대불(大仏)은 1180년 겐페이(源平) 전쟁통에 소실되고 만다. 승려 주겐(重源)이 권진(勧進;개건 비용을 모음) 작업을 벌여 1185년에 다시 만들어졌다. 

이것도 1567년 10월, 전국(戦国) 시대의 동란 중에 다시 불타버렸다. 

이후 1692년 고케이(公慶)가 권진 작업을 벌여 다시 만들었다.  

아랫쪽 연화좌(蓮華座) 정도가 조립 당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쇼무는 이밖에도 "모든 구니(國)에 고쿠분지(國分寺), 고쿠분니지(國分尼寺), 칠중 탑(七重塔)을 건립"하게 하고 소지(僧寺)에는 20명의 승려를, 니지(尼寺)에는 10명의 여승을 두게 하였다. 이 조칙으로 인해 고쿠분지(國分寺)의 상징인 소코쿠분지(總國分寺) 소지(僧寺) 도다이지(東大寺)와, 니지(尼寺) 훗케지(法華寺)가 야마토 국(大和國)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일본을 이른바 ‘불교국가’로서의 반석에 올렸다는 쇼무 시절의 이러한 사업들은,

한편으로는 그가 민생 고에도 안중 없이,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사찰 공사를 벌이고, 대규모급 불상 건립을 하였던 것으로, 국가의 재정이 기울어지게 하였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10세기 미요시 기요유키의 의견 12개 조).     


쇼무는 왜 이러한 거대 불상을 만들고자 하였나? 

‘호국불교’? 나라를 위해서?였나.    


쇼무는 조모인 겐메이(元明) 천황, 백모인 겐쇼(元正) 천황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쇼무의 모친은 후지와라 후히토(藤原不比等)의 딸, 미야코(宮子)였으며, 후히토의 또 다른 딸 아스카베 히메(安宿媛=고묘시(光明子))는 쇼무의 부인이 되었다.       


쇼무의 치세 동안, 쇼무의 외척 후지와라 가문과 이에 대립하는 세력 간의 이른바 ‘나라(奈良) 시대(710-784)의 정변(政變)’들이 이어졌다. 


그 첫 단추는 나가야 왕의 변(長屋王の変) 사건이다.

쇼무는 자신과 후지와라 씨에 대항했던 나가야 왕(長屋王; 텐무 천황의 장자였던 다케치 왕(高市王)의 아들)이 “좌도(左道;요술)를 배워 국가를 전복시켜려 한다”는 밀고가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의 집을 포위하여 추문하였고, 결국 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729(天平元)년).     


735(天平7)년 경, 빈번한 재해와 변이, 역병이 유행하는 가운데, 쇼무는 당으로부터 귀국한 겐보(玄昉)를 통해 점차 불교로 귀의해 간 것으로 보인다. 


737년에는 대역병이 돌아 후지와라 4경(四卿)을 비롯한 조정의 관리들이 차례로 죽어 나갔다. 

불온한 정세 속에 740년 9월에는 대재부(大宰府) 쇼니(少弐) 후지와라 히로쓰구(藤原広嗣)가 반란을 일으켜 서해도(西海道) 지역이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동요하던 쇼무는 “짐이 생각하는 바 있어, 이번 달 잠시 관동에 가려한다”하더니, 

헤이죠 경(平城京; 야마토 국)을 떠나 구니 경(恭仁京;야먀시로 국, 740년)으로, 나니와 궁(難波宮; 세츠 국, 744)으로, 시가라키 궁(紫香楽宮; 오우미 국;744년)으로, 다시 헤이죠 경(745년)으로, 이리저리 몇 번이고 천도를 감행하였다.

쇼무의 불안정하고 어지러웠던 정신세계의 발현이었다. 


그 사이에 제 국 고쿠분지, 니지의 건립과 루사나불(盧遮那仏;우주를 널리 비추는 진리의 가르침을 표현한 법신불(法身仏)) 조립의 조를 발표하며, 진호국가를 내세우게 된다.     


쇼무는 749(천평21)년 4월, 도다이지(東大寺동대사)에 행행(行幸)하여, 자신을 “삼보(三寶)의 노예(奴)”라 칭하고 천평감보(天平感宝)로 개원하였다. 동 7월, 딸 고켄(孝謙) 천황에게 양위하였고, 756(天平勝宝8)년 태상 천황으로 사망한다.

                                                 



 “천하의 부 있는 자, 짐이다. 천하의 권세 있는 자, 짐이다.”라 말하며 호방스럽게  ‘대불 조립’의 조를 발표하던 쇼무.      


사실상 이는, 그 자신의 힘으로는 제어하기 힘들었던 혼란한 정국과 고달픈 재해적 상황 속에서, 

불안정하고 어지러웠던 쇼무의 정신세계의 의지처로서 행해진 노력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도다이지의 거대 불상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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