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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Jul 07. 2020

모르니까 무섭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곤쟈크모노가타리슈4)



 일본에 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의 하나는 수목들, 나뭇잎들이 참으로 건강하고 윤기 있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그 사이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 내 자취방의 바퀴벌레도 포함하여―그 크기가 한국에서 보았던 벌레들의 두 배 가깝게 느껴졌다. 교정과 동네를 날아다니는 까마귀의 크기는 좀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동경에서는 산을 보기가 힘들지만, 학과 답사를 통해 돌아다녀 보니, 일본은 산세가 깊고 그 땅이 참으로 비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유〜장년기 지형의 땅에서 삶을 일구어 온 일본인들의 정서는, 노년기 지형을 터전 삼은 한국인들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았을 고대인의 세계를 들어다 보면, 그러한 자연환경에 영향받아 형성되었을 감성들이 엿보아진다.      


 <곤쟈크모노가타리슈>31-13 ‘오미네(大峰)를 통과하던 승려가 사케이즈미 향(酒泉郷)에 간 이야기’가 그 하나이다.


 지금은 옛날에 불도를 행하는 승려가 있었다. 오미네(大峰)라는 곳을 통과할 때 길을 잘못 들어서 생각지도 않던 계곡 쪽으로 가다 보니 사람 사는 큰 고을이 나타났다. ……

승려를 산의 한쪽 편으로 데리고 가서 남자가 말하길 "사실은 너를 죽이려고 이곳에 데려왔다. 예전에도 이처럼 이곳에 온 자는 돌아가서 이곳에 대해 말할 것이 두려워 반드시 죽였다. 그러면 여기에 이런 고을(鄕)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승려는 말하지 않을 것을 열심히 맹세하고……

그런데 본향(本鄕)에 돌아오자마자 그런 맹세를 하고도 (말해 버렸다) ……젊은이들 중 담력이 크고, 칼을 잘 쓰는 자 5,6명이 각각 활과 병장(兵杖)을 들고 이 승려와 함께……떠났다……돌아오지 않았다. 

생각하자니, 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

          

 

<곤쟈크>에는 그 밖에도 승려 3명이 시코쿠(四国)의 깊은 산에서 헤매다가 깊은 계곡의 모르는 곳에 들어가, 채찍에 맞아 말이 되어버린 이야기(31-14), 기타야마(北山)의 개(狗)가 사람을 아내로 두고 살았는데, 그 아내로부터 절대 발설하지 말아 달라 부탁받았던 이야기(31-15) 등, 미지의 깊은 산, 깊은 계곡 속에서 일어난 불가사의한 사연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들이 살았던 자연환경의 깊고, 험준했던 배경 속에서 이러한 이야기들도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산이나 계곡뿐만이 아니고, 바다 건너의 세계 역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곤쟈크>31-12 진제이 사람(鎮西人)이 도라시마(度羅島)에 간 일

옛날 진제이 국(鎮西国)**군(郡)의 사람들이 장사를 하기 위해 한 척의 배를 타고, 모르는 세계에 갔다 돌아오다가 ……모두 그 섬에 내렸다……그런데 산 쪽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서

 ‘이상하다, 이런 미지의 장소에는 오니(鬼)도 있을 것이다. 할 수 없다’ 생각하며 모두 배로 급하게 돌아가서 숨어서, 산 쪽에서 움직여 오는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지 보았다. 에보시(烏帽子)의 앞을 접어서 묶고, 하얀 스이칸 하카마(水干袴)를 입은 자들이 백여 명 정도 나타났다……(이들은) 조금 뒤에 모두 산으로 돌아갔다. 

이때에 배의 탄 자들은 모두 ‘이자들이 쫒아올’ 지도 모르니까……모두 두려워져서 진제이(鎮西)에 돌아온 후 이 일을 널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 가운데 노인이 이것을 듣고 "이는 도라시마(度羅島)라는 곳일 것이다. 사람의 형상은 하고 있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곳이다. 그렇다면 사정도 모르고 사람들이 그 섬에 가면 그처럼 모여들어 사람을 잡아 그냥 잡아먹는다고 들었다. 그대들은 마음이 현명하여 가까이 가지 않고 도망 온 것이다. 가까이 갔다면 백 천의 활, 화살이 있어도 저항할 수 없이 모두 죽었을 것이다"하였다. 배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것을 듣고 기이하게 생각하고 더더욱 두려워했다.……

이후 사람 가운데에도 비천한 자로, 사람이 입에 대지 않을 비천한 것을 먹는 자를 도라 비토(度羅人)라 불렀다.      


  바다 건너편의 섬에는 오니(鬼)가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점은,  이밖에도 다른 사료를 통해 많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半井本等의 <保元物語>下, 狂言 <節分>, 室町物語 <一寸法師> 등), 당시의 보편적 인식이었던 듯하다.  


<곤쟈크>31-16에도 사도국(佐渡国) 사람이 바람 때문에 모르는 섬에 표착했는데, 그 섬에서 나온 사람의 모습이 “남자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고, 머리를 흰 옷으로 묶고 그 사람의 키가 몹시 컸다. 모습이 이 세상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배의 사람들은 이를 보니 두렵기 한이 없었다.…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에 대해, 다가가는 호기심을 보이기보다는, 한량없이 두려워하며 달아나는 이들의 모습 속에는,  미지의 세계, 미지의 존재에 대한 깊은 경계감과 두려움의 의식이 엿보인다. 이들이 살았던 자연환경, 깊은 산중, 깊은 물결의 저 건너 세계는, ‘오니’의 영역이며, 두려움의 세상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모르는 세계, 영역은 ‘미지’인 채로, ‘말해지지 않고’ 지켜져야만 하는 세계로 남는다. 즉 정체불명의 세계나 존재에 대한 도전은 무모한 것으로, 미해결인 채로 남겨진다는 특징이 공통적으로 보인다. 환경조건에 대한 도전이 불가항력적이었던 사람들의 심성이 반영된 것이리라.     



이에 관련해, 일찍이 일본에서 발달한 무라(村, 조직, 집단)의 세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지적이 있어 흥미롭다.


 “일본의 무라는 고대 이래 망막한 타계(他界) 가운데 떠있는 하나의 시마(섬)로 의식되고 있었다. 이 무라 사람들에게 있어 시마(섬) 이외는 죽은 자가 가는 곳이며, 신신(神神)이나 사악한 것이 존재하는 세계로, 오로지 두려움(畏怖)의 대상이었다.……외부의 인간이나 존재에 대해 때로는 지나친 환대가 있기도 하지만, 반면 기대가 어긋나면 잔학할 정도의 배제가 발생한다. 여기에는 「두려움(畏怖)」「기대」「배제」라는 정동(情動)적인 반응이 우선시되어 외부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인식은 약하다.”(나카무라 하지메 <일본인이 사유 방법>)

     

깊은 계곡, 막막한 바다, 그러한 자연환경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형성하고, 그와 더불어 외부의 세계에 대해 강건한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인간은 자기가 살아온 산 삶의 환경조건에 의해 그 마음을 형성하게 된다.

고대의 일본인들이 가졌던 그 불안함과 두려움의 정서는, 비단 고대인들만의 것이 아닌듯하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한 치 앞을 모르는 미지의 상황 속에서 여전히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두려움과 불안은 인간의 머릿속 상상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에 대해, 세상의 이치에 대해, 자신과 상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불필요한 걱정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살 수 있을 것이다. 헤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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