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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Nov 27. 2020

‘자유’도 진보한다

-행동의 자유에서, 마음의 참자유로

   

     “빨간 신호도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赤い信号もみんなで渡ると怖くない)”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해외여행을 가든, 일본 국내여행을 가든 일본인들의 단체여행단이 하나의 깃발 아래 줄맞추어 다니는 것을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함께 하면 무섭지 않아하는’모습의 정서가 일본인들에게는 있는 듯하다. 혼자서 행동하는 ‘자유’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함께’하는 것에 안심하는 정서가 일본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일본을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에 관련해서는 일본인들이 ‘자유’에 대해 전면적인 긍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본사회에서 ‘자유’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충분히 그 의미를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의 유명한 역사학자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씨도 이야기했듯이, 일본은 역사적으로 ‘자유’라는 말이 서양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網野善彦<歴史を考えるヒント>).


 일본의 고어(古語)에 대해 권위 있는 해설서인, 사토 신이치(佐藤進一)의 <新版古文書入門>(法政大学出版局, 1997)를 보면 ‘자유’에 대해, ‘제멋대로라는 뜻. 관습, 선례, 법령 등의 질서를 형성하는 것에 역행하고, 어지럽히려고 하는 행위. 이를 비난하는 말’이라고 설명되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애초 ‘자유’라는 한자를 들어와 사용하면서 일본에서는 주로 제멋대로의 횡포나 행동거지 등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중세의 장원서류에 잘 등장하는 ‘지유로제키(自由狼籍;제멋대로의 못된 행동)’‘지유노토모가라(自由之輩;방탕한 무리들)’, ‘지유노쿠와다테(自由之企;제멋대로의 획책)’등과 같은 표현이 모두 그러한 예에 해당할 것이다.     


가마쿠라시대에는 선종의 영향에 의해 ‘생각한대로 되는 것’‘제약을 받지 않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자유’라는 표현이 조금씩 쓰이기 시작했다가, 에도시대가 되면 ‘자유’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혼재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막부 말기부터 서구의 헌법, 법률을 번역, 소개하는 과정에서 ‘자유’의 개념이 다시금 정리된 듯싶다. 1870년 간행된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서양사정(西洋事情)> 속에는 freedom,liberty를 ‘자유(自由)’라고 번역하면서도, “원어의 의미는, 일본어의 ‘제멋대로의 방탕함’으로, 국법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기술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일본의 역사상에는 서구와 완전히 동일한 의미의 ‘자유’란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일본에서는 예컨대 ‘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쓰여도 이것이 좋은 의미보다는, 자유방임과 같은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문맥 속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자유’란 ‘제멋대로의 행동’이라는 관념이 작용하여, 이에 “그리 해서는 좋지 않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듯하다.  

빨강 신호 함께 건너듯, 차라리 함께 잘못하는 것은 괜찮다고 하니 말이다.  


한국어 사전에도 자유란, ‘자기마음대로 하는 행위’라 적혀있다. ‘언론의 자유’ ‘신체의 자유’등, 말, 글이나 행동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과 희생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자유’라 하면 보통, 이렇듯 행동거지의 자유,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 등이 그 주된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미래에도 무척이나 중요한 이 ‘자유’의 의미에 대해 한번 짚어볼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본디 진정한 자유란, ‘행동의 자유’가 아니고, ‘마음의 자유’가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자유로우면, 어떤 규율 안에 놓여 있더라도, 행동에 어떠한 제약을 받더라도 마음이 구속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자유’는, 외부적인 타인의 제재에 의해 손상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 아무리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살아도 기쁘고 신나지 않았던 것은, 내 마음에 진정한 참자유가 없어서였다는 것을.     


자유란 ‘자기’ 속에 매몰되지 않는 것. 자기중심의 집착의 마음이 없는 것. 집착이 없으니 어떤 마음의 구속도 구애도 받지 않는 것. 걱정, 근심이 없는 것. 

그런 것이 진정한 참자유가 아닐까.     


자신의 행동조차도 자신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던 시대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자신이 가지고 내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까지 인류는 열심히 노력하여 내 행동의 자유는 비교적 내 스스로 결정하여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다.


앞으로 추구해 갈 자유는, 내 마음에 일체의 집착과 걸림이 없는, 구속이 없는 참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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