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자아 찾기 (12)
올해 초 직장생활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줄 전혀 모른 채로 새해를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이미 전조증상이 있었다. 업무가 너무 버거웠고 즐겁지 않았다. 하루 24시간 중 나를 위해 사용한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한 해가 끝나갈 때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답답하다’였다. 이직을 한 직후였던 재작년 연말에는 답답한 감정보다는 기대되는 감정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그전에도 그 후에도 이런저런 이벤트들로 들뜬 분위기가 형성되는 연말에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답답함이었고 새해가 딱히 기대되지 않았다. ‘새해도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이렇게 또 한 해가 가고 한 살을 더 먹는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올해는 처음으로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기를 멈추고 나의 길을 가기 시작한 해다. 어렸을 때부터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나에게 누구도 자신만의 길이 있고 그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게 맞는 건 줄 알았고 남들이 가는 길이 내 길인 줄 알았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었고 잘 살고 있는 줄 착각했다.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억지로 잠에서 깨고, 회사에서 정해 놓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출퇴근 지하철 인파에 시달리고, 아파도 웬만하면 출근하고, 악천후에도 출근하고, 하루 쉬려면 남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이 모든 게 부당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도 다 지키고 있는 이것들만 지키면 회사는 매달 나에게 월급을 지급해 주었고, 각종 복지혜택도 제공했다. 그리고 직장인이어서 가질 수 있는 소속감과 자기 효능감은 마약과도 같았다.
주위에서 또는 매스컴에서 ‘갈 곳이 있는 게 축복’이고, ‘회사 안이 아무리 거지 같아도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을 들으면 맞는 말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결국 회사 밖으로 나와보니 이곳은 천국이었다. 물론 지금의 감정이 그저 새내기 때 잠깐 느끼는 설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조금 쉬어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로 수익이 없는 것조차 큰 부담으로 느끼지 않기로 스스로를 설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진짜 나’를 깨우고 있고 ‘진짜 나’로 살아갈 앞으로의 특별한 여정이 기대된다. 자아를 찾는 건 퇴사 후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였다.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에서 일반인 출연자가 안정적인 것을 선호한다면서 ‘미래가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 있었으면 한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미래가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위대함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위대함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도전하고 주어진 삶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예요. 인생은 연극 리허설이 아니니까요.”
- 『그레이트 마인드셋』, 루이스 하우즈 지음
올해는 새해가 너무 기대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보다 더 예상이 안되었던 적이 없지만 멋진 한 해가 될 것 같다. 1년 후 나는 지금보다 어떤 경험과 생각이 더해진 채로 새해를 맞이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