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자아 찾기 (3)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매일 일기를 쓰는 게 숙제였다. 나는 일기 쓰기를 정말 싫어했다. 그래서 보통은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나열한 다음, ‘참 재미있었다’로 마무리했다. 30대가 된 후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처음으로 일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기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일기를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었고 감정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주로 힘들 때나 생각이 많아질 때 띄엄띄엄 일기를 쓰다가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부터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쓰게 되었다.
일기 쓰기가 습관이 되었지만,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글을 쓸 자신은 없었다. 나의 민낯이 드러나는 글이 부끄러웠고 내 글이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우고 싶었고, 또 나의 글을 공개할 용기를 내고 싶어 글쓰기 강의를 신청했다.
내가 5주 동안 수강한 온라인 글쓰기 수업에는 30대부터 60대로 보이는 다양한 수강생들이 있었다. 보름동안 매일 주어진 주제로 10분간 짧은 글쓰기를 해서 카페에 업로드했다. 일기만 쓰던 습관 때문인지 나의 글은 너무 진지하고 매번 자아 성찰 위주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솔직한 글을 업로드하는 동기 수강생들에게 용기를 얻어 나도 부족한 글을 업로드했다. 동기들이 내 글에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었다. 공감과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치유받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평소에 인터넷, 유튜브나 지인들의 SNS에도 거의 댓글을 달지 않는다. 동기들의 글에 나도 따뜻한 댓글을 달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 고민할 때가 많았다. 내가 어떤 내용의 글을 써도 항상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카페에 계속해서 글을 업로드할 수 있었고,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다. 내가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글쓰기 동기들 덕분이다.
세 번째 수업에서 글쓰기 주제 정하기를 했다. 하나의 주제로 세 편의 긴 글을 써야 했다. 다른 수강생들은 글쓰기 주제를 쉽게 정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직업 또는 과거 경험, 새로 시작한 운동, 취미 생활 등등. 나는 주제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선생님이 주제는 쓸 이야기가 많은 것, 즉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으로 정하는 게 좋다고 했다. 나는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직업에 대해서도 많이 쓴다고 했는데 나는 직업에 대해서도 딱히 쓸 말이 없었다. 결국 수업시간 내에 주제를 못 정했다. 헛살았나 싶었다. 나름 10년 넘게 누구보다도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는데 남은 게 없는 느낌이었다. 속상했다. 그날 잠을 못 잤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글쓰기가 내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었는데 글쓰기 때문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나에게 쓸 이야기가 많은 주제는 뭘까. 나는 퇴사 후 독서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책 이야기를 쓰기에는 나의 필력이나 사유가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문득 사람들이 생각났다. ‘나의 장점’을 주제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겨우 생각해 낸 장점 중에 ‘나는 친구가 많다’가 있었다. 실제로 친구가 많다기보다는 친구에 대한 나의 정의가 굉장히 러프하다. 나는 자주 만나지 않아도 같이 있을 때 즐거우면 친구이고,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대화가 잘 통하면 친구이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복이 많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인간관계에서 지칠 때도 많지만 좋은 인간관계를 통해 치유받는다.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글쓰기 주제로 정했다.
주제를 정하고 나니 세 편의 글이 술술 잘 써졌다. 선생님에게 받은 피드백이 안 좋아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글을 쓰는 즐거움과 긴 글을 완성한 후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모두 들은 후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는 주로 내 안에서 생겨나는 질문들에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글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글쓰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