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자아 찾기 (4)
많은 사람들이 ‘인생책’으로 꼽는 『스토너』(존 윌리엄스 지음)는 읽고 난 후 여운이 남는다는 리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스토너』를 다 읽은 직후에 별다른 감흥도, 여운도 없었다. 그래서 왜 사람들이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이 소설에 열광하는 건지 궁금했다. 이대로 독서를 마무리하기에는 뭔가를 놓친 것 같아 찝찝하고 답답했다. 나는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뭔지 곱씹어 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스토너의 삶이 자신의 삶과 겹쳐져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받는 걸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스토너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 같아 안쓰럽고 먹먹하게 느껴지는 걸까.
스토너는 아내, 딸,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사회의 압력으로 관계를 이어가지 못했다. 스토너가 죽은 후에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스토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토너의 삶이 쓸쓸하고 허망해 보였다.
하지만 스토너는 스스로를 그렇게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고, 죽을 때까지 그 일에 헌신했다. 그래서 자신의 저서를 보며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도 자신의 삶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고, 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것들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니었다.
나는 스토너가 더 좋은 아내를 만나지 못한 것, 딸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것,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더 인정받지 못한 것 등이 아쉽다고 느끼지만 스토너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본인이 사랑하는 학문을 탐구하고 교육자로서 헌신하며 자신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이상을 추구하며 살았기 때문에 작가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생각하면, 그가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어떻게 그의 삶을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 『스토너』 작가 존 윌리엄스 인터뷰 中
최근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었다. 스토너와 달리 특별한 직업도 거처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크눌프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주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고 알려준다.
스토너의 사명은 학문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비록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았고 삶의 많은 부분이 아쉬웠지만,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기에 그의 삶은 훌륭했다. 각자의 사명을 깨닫고 이를 충실히 수행한 삶은 모두 가치 있다.
나는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삶은 스토너의 삶과는 다르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나의 기준으로 스토너의 삶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로 나 또한 나의 사명을 깨닫고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에게 『스토너』는 대단한 일을 하거나 특별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건네주는 책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삶의 가치를 알려주는 책이다. 흔히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비범함이나 영웅적인 서사가 없는 잔잔한 소설 『스토너』를 이제 후련한 마음으로 내려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