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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Dec 23. 2021

개인의 삶, 한 사람의 몫

부모님의 삶을 되돌아보며

아빠가 뇌경색이다. 턱관절 치료를 받고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저녁 약속을 미루자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아빠가 뇌경색 진단을 받으신 것이다. 바로 오늘. 2021년 12월 23일. 아득했다. 진짜인가 싶었다. 거짓일리가 없는데도.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코트를 제자리에 두고 신세계백화점에서 산 무스탕을 든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고 배달온 샐러드를 꺼내면서도. 




진짜인가. 

진짜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




분명 배가 고팠는데. 샐러드를 뒤적거리기만 했다. 소스를 붓고 오리고기를 섞는데도 입맛이 돌지 않았다. 먹먹함이 밀려왔다. 엄마는 아빠의 입원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게 강아지를 데리고 병원에 가달란 부탁을 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다문 입술을 열었다.




- 아빠 심각한 거야?

- 입원해서 치료 받으면 된대. 

- 언제부터 그런 거야?

- 어제 집 오는 길에 아빠가 운전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더라. 앞이 안 보인다고. 그래서 빨리 브레이크 밟으라 그랬지. 




엄마의 얘기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정말 그때 다른 차가 부모님의 차를 박았더라면. 큰 사고가 났더라면. 그랬더라면.... 불행은 예측할 수 없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처럼 정신을 빼놓고 사라진다. 나도 지금 그렇다. 엄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최근 유튜브에서 마음이 맞는 선생님을 만나 마음공부를 한 덕이라 그랬다. 문제에 집중하지 말란 말도 덧붙였다.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엄마가 터득한 방법일 것이다. 다행이도 아빠는 뇌경색 초기에 발견한 거여서 약물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치료가 끝날 때까진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고, 모레가 크리스마스인 게 믿기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엄마의 부탁에 강아지들을 챙겨 병원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집엔 아무도 없을 거다. 어쩌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집에 혼자 있을 수도 있다. 혼자라는 단어에 생각이 멈췄다. 만약 아빠가 없고 엄마랑 나만 둘이 산다면. 먼 훗날 아빠도, 엄마도 없다면. 나는 지금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지금 엄마, 아빠를 잘 챙기고 있는 것인가.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한 무스탕을 샀다. 우리집 옷방은 내 옷밖에 없다. 아빠의 옷은 안방에 있다. 엄마의 옷과 가방은 거실 한켠에 있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다. 나는 나만을 보며 살았다. 돈이 없다 말하며 내 것만 챙겼다. 엄마에게 예쁜 옷도, 아빠에게 멋있는 옷 한벌 사드리지 못했다. 나는 참 이기적이다. 나는 나만 챙긴다. 적어도 엄마는 그렇지 않았는데. 엄마에게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빠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나는, 나는 지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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