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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Jun 09. 2022

사랑은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로 만든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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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어떡해. 나 이제 진짜 어떡해. 2022년 6월 8일. 정말 좋아했던 S와의 연애가 끝났다. 예상치 못했던 이별이었다. 얼마 전, 100일을 맞아 나무로 된 커플링을 만든 우리였다. 내게 고맙다는 편지까지 준 그였다. 짧은 소란 정도라 생각했던 일이 연락두절로 이어졌고 걱정이 되어 남긴 톡엔 한참이나 지나서야 생각을 하느라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루 동안 나를 멀리하고 그가 했을 생각이 무엇일지 예상이 갔으니까. 헤어짐, 이별, 끝이란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묻기도 전에 그는 '끝나고 연락할게'로 대화를 종결시켰다. 형벌을 기다리는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이 되어버렸다. 무한한 상상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쓰러졌고 울었고 내가 그에게 잘못했을 일을 나열했다. 그리고 일을 끝낸 그가 대화 전 나를 바라볼 눈빛을 떠올렸다. 애정이 사라진 눈빛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나는 그가 날 바라보는 눈빛에서 사랑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연락을 마친 그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처럼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어쩌면'이란 희망을 품었다. 어쩌면 헤어짐이 아닌 관계가 더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너무나 지쳐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고, 어쩌면 생각 끝에 우리의 관계, 나에게 바라는 것을 얘기할지도 모른다고. 우리 집 앞이라던 그에게 지금 있는 위치를 말했다. 늦게까지 하는 카페가 있으니 거기서 대화하자고. 




목소리에서 희망을 느낀 나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나를 혼자 두기 걱정되어 함께 있던 친구에게 잘 얘기하고 오겠다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카페에 도착할 무렵 오토바이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고민이 많은 뒷모습이었다. 망설였다. 아는 척을 해도 될까, 먼저 들어가 있는 게 나을까. 그 사이 그가 뒤를 돌았다. 차갑지 않다. 다행이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카페에 들어갔지만, 곧 영업이 끝난다하여 자리를 옮겼다. 시끄러운 맥주집이었으나 늦게까지 하는 곳은 그곳이 유일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그는 내게 누구를 만나고 왔는지, 금요일에도 만나지 않냐며 물었다. 그 말은 그가 형식적으로 물은 질문이었을지 몰라도 당시에 내겐 후일을 묻는 질문이라 느꼈다. 금요일은 그의 일터에서 내 친구를 소개해주려고 했던 날이었다. 정말 괜찮을지 몰라. 대화로 잘 풀 수 있을지 몰라. 몇 번을 되뇌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처음 대화는 오해를 푸는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가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평소와 다른 말투의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아 화가 너무 많이 났었다고. 머리론 이해했지만 마음으론 이해가 안 가는 듯했다. 나는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을 소개하길, 납득이 되지 않으면 용납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아도 상대방의 상황을 생각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납득이 되지 않은 것을 내게 말했다.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보였다.



결국에 그는 자신의 영역에 나를 더 이상 들이지 않음을, 관계를 더 밀접하게 만들 수 없음을 말했다. 머리가 굳어졌다. 이 대답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면 앞선 얘기들은 무엇이었을까. 오해를 풀고 대화로 서로 풀어가자 말했던 나는, 그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그는 굴곡 없는 관계를 원했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건 어떤 사람이든 마찬가지일 테다. 나는 말했다. 그런 굴곡 없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 이런 일을 겪는 거지 않을까, 서로 맞춰가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는 대가가 크다는 답을 했다. 대가. 우리의 관계를 지속하고자 그가 지불하는 무언가.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 감정의 기복. 종종 자신은 감정이 없음을 말했던 그에게 크나큰 스트레스였을지 모른다. 뒤끝 없고 신경 쓰이지 않은 존재가 되길 바라던 그니까. 




네가 생각하는 연인 관계란 무엇이야?



그가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네게 위안과 안정을 느끼는 것처럼, 네가 나에게 위로를 받는 것처럼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관계가 아닐까,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옆에 존재하는 사람. 그러니 개입과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음을 느꼈다. 내게 그 말은, 무색무취로 어떠한 감정적 자극 없이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란 결론이 나왔으니까. 그는 자신의 생각이 이기적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연인 관계가 맞다는 것도 알았다. 알면서도 자신은 꼿꼿한, 굽혀지지 않는 사람이란 말을 덧붙였다. 수용하지 않겠단 뜻이었다. 벽이 세워졌음이 느껴졌다. 더 이상 대화가 안 되겠다는 것도. 나는 그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그의 바람은 내가 이뤄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기에 그가 말한 개입과 간섭을 할 사람이었다. 내겐 걱정의 말과 서운함의 표현이었음에도.



여기까지 하자. 내가 말을 꺼냈다. 그의 벽은 단단했고 나는 그 벽을 뚫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자리를 뜨고 그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려는 게 보였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 행동에 뒤로 물러섰다. 그가 버스정류장까지 따라오면, 나는 그를 붙잡을 것 같았다. 아니면 그를 원망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다. 마지막 모습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에게 등을 돌렸다. 항상 그와 멀어지는 길이면 뒤를 돌던 내가 꿋꿋하게 앞만 보고 걸어갔다. 배려였던 것인지 내 앞을 지나치는 그의 오토바이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끝이구나. 진짜 우리 끝이 났구나. 108일에서 마침표가 찍혔구나.








후폭풍은 다음 날 찾아왔다. 운동 시작 전에 맺힌 눈물을 겨우 닦아냈다. 그리고 운동이 끝이 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음에도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꾹꾹 참아가던 눈물은, 대교의 중간지점에서 다시금 폭발했다. 멈춘 것을 쏟아내려는 듯 끊임없이 흘렀다. 나는 대교를 붙잡고 울다가 계속 울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을 집으로 돌렸다. 도착한 집은 깜깜했고 아무도 없었다. 생애 처음으로 큰소리를 내며 울었다. 울다 실신한다는 얘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자동으로, 내 마음속에 '나 이제 어떡해'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너를 아직 좋아하는 내 마음은 어떡해. 나는 이제 어떡하면 좋아. 



이번 연애에서 나는 그에게 최선을 다했다. 사랑을 표현하고, 애정을 행동으로써 증명하며, 사랑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최선을 다해 후회는 없었다. 다만, 함께 걷던 길이 갑작스레 절벽으로 변해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감정을 추스리기가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미안했고 고마웠다. 마지막 날, 난 그에게 말했다. 나는 관계에 있어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고, 너 역시도 네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안다고. 그래서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일이 끝나 힘들어도 내 얼굴을 보러 오는 그였다. 얼굴을 보면 힘을 얻어간다 말했다. 그래서 그는 나를 햇빛으로 위안으로 안식처로 삼았다. 그에게 난 그런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변해간다는 게 그는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환경으로부터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안다. 내가 그를 정말로, 정말로 좋아했음을. 어떤 존재보다 좋아했기에 내 사랑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내 사랑'을 표현하기에 급급했다. '우리'를 '그'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나는 배려한다 생각했으나 그렇지 못한 거였다. 내게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지만, 이별 앞에 한쪽만의 잘못이 있지 않다 생각하므로. 나는 내 감정에 휩쓸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서운함이란 안개에 가려 지친 그를 토닥이지 못했다. 그는 몇 번 내가 서운함을 얘기했을 때 맞추려 노력했다.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기다림과 서운함을 한번 더 누르기가 나의 노력이었으나 그에겐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노력하던 그가 나는 바뀌지 않음을 강조했으니까. 너 역시 부단히도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구나. 이제야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어 미안하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할 수 있고, 애정표현에 숨김이 없을 수 있고, 사랑에 불안정한 어린아이가 사랑 앞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될 수 있게 너는 만들어주었다. 그렇기에 너의 힘든 상황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언젠가 너의 상황이 좋아지고 나에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생기는 날이 왔으면 한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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