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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Sep 12. 2022

감정 전당포(3)

멜로가 써지지 않는다.

과제를 해야 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가는 수업에 내야 할 기획안이 필요했다. 번번이 작가님께 까이고 나서 남은 건 에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각색하라는 권유였다. 소설은 재밌었다. 파도처럼 밀려온 첫사랑에 그대로 자신을 내던지고야만 소년의 얘기였다. 정신없이 몰아붙임은 첫사랑의 속성 같다. 





책도 재밌겠다, 이제 각색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써지지 않았다. 주인공이 상대방에게 첫눈에 반할 때의 감정을 떠올리려니 눈물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불가능한 사랑을 무모하게 도전하는 이야기를 써야 하니 몰입이 되지 않았다. 안 되는 걸 아니까, 첫사랑의 무모함이 무력함으로 변하는 걸 보고 말았던 나는 도저히 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건 큰 개념에서 대리만족의 영역에 있다. 이 전제를 알면서도 내 마음에 굳은 심지가 된 하나의 명제는 무너트릴 수 없었다.





불가능. 





사랑만으론 되지 않음. 




쓸 수가 없다. 아물었던 상처를 현미경으로 확대하며 봐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어렵다. 나는 못 했으니까 내 주인공은 해낼 수 있어, 란 긍정적 회로로 얘기를 다뤄보려고도 했다. 안 됐다. 백지 앞에서 조금이나마 구상했던 얘기가 하얗게 질려갔다.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시간이 답이라 믿고 있으면 되려나. 지금은 내게 사랑 이야기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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