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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Aug 09. 2020

정원을 가꾸는 중입니다.


나는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했을까?’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목소리. 안방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 나는 여직 그때 엄마의 목소리와 표정을 잊지 못한다. 엄마와 같이 살면서 생전 처음 본 표정이었으므로. 엄마는 울지 않았다. 다만 오랫동안 자신의 신세에 대해 한탄을 했다. 자책을 했다. 나는 안방에 서서 오랜 시간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 또한 하나를 진득이 하지 못하는 부류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얘기가 끝날 무렵 입안에 말들이 맴돌았다.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안방 문을 손가락으로 갈작대며 타이밍을 고민하다 결국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말을 내뱉을 확신이 없었다. 나보다 수십 년을 더 살아온 엄마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것이 내가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일까 싶어서. 돈을 벌기 위해선 새로운 걸 탐닉하기보단 기존의 걸 운용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걸 멈췄느냐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 확신을 만들기 위해 도리어 영역을 확장했다. 경매를 배우고, 에세이를 써보고, 글 모임을 해보고, 주짓수를 배우고, 드라마를 써보고, 주식을 해보고, 승마를 배우고, 작사를 해봤다. 이것들이 하나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면, 지금 씨앗들이 내 정원에서 조금씩 싹이 트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낙찰을 하러 가보고, 글 모임을 통해 에세이를 다 같이 발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주짓수로 운동을 하며 14kg 감량을 하고, 3편 정도의 단막 글을 남기고, 파랗게 뜬 글씨를 보며 빨간색에 감사해하고, 비싼 레슨을 위해 저축을 시작하고, 실제로 곡이 탄생하고. 작사한 곡이 노래로 처음 나왔을 땐, 기쁜 마음에 하루 종일 방방 뛰어다녔던 것이 생생하다. 덕분에 내 정원엔 찬란한 꽃들이 피어날 준비 중이다. 어떤 일이든 해보고 도전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값진 경험들이었다. 해보고 후회하자, 라는 신조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하나만 진득이 팠더라면 해보지 못할 것들이었음을 깨달았다. 비로소 엄마에게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라고 말할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나’다. 내가 가꾸고 살아갈 나의 ‘인생’이다. 나를 묻어두고 살아가는 인생에서 과연 꽃 하나 피울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새로운 일에 도전 중이다. 곧 드론을 배우기로 했고, 내일은 엄마와 유튜브 콘텐츠를 구상하기로 했다. 정원에 심을 새로운 씨앗이 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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