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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Mar 26. 2018

할 말 없어서 가만 있는 거 아니야. 생각 중이야

[솔로몬의 위증] 영업글

수오가 크리스마스 밤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학교와 경찰은 하루만에 자살로 사건 종결시키지만, 서연은 뭔가 이상하다. 수오의 죽음에 대해 밝히겠다고 나선다. 학생주임은 서연의 뺨을 때린다. 여기까지는 학생/학교, 청소년/어른 간의 단순한(사실 단순한 건 아니고 교권몰락과, 영악한 10대들과, 그들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대한 최근 이슈들도 불러일으키지만 여튼) 선악구도.

내가 엄청 울컥한 건 이렇게 서연이 뺨맞고 집에 돌어온 이후의 장면에서. 서연이 이불 덮어쓰고 누워 있는데, 우연히 딸이 학교에서 맞은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서연에게 달려온다. 왜 엄마한테 말 안했니, 경찰서에 신고해야하나, 교육부에 신고해야하나, 안절부절 노발대발하는데, 이때 서연이 엄마를 진정시키고 하는 말. "할 말 없어서 가만 있는 거 아니야. 생각 중이야."


맞아, 나도, 10대의 나도 생각중이었는데. 우리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하는 생각이란 너무 어리거나 너무 어리석거나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가볍거나, 여튼 멋모르고 하는 무언가로 무시받기 일쑤라서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생각하는 능력과 시간을 좀 낯설게 느끼지 않았나. 멋모르는 순진함이라는 것도 어른들의 입을 통해서 미리 경계되기 이전에 직접 부닥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더 단단한 어른이 될텐데. 해 바뀌고 20대가 되어 갑자기 창의니 비판이니 책임감이니 하는 말들로 '생각'이란걸 하기를 요구 받았을 때 느끼게 되는 그 방황감은 10대에 충분히 생각하는 내공을 쌓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일 거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2014년 4월, 내가 막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렴풋이 형성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이후에 내 머리가 굵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동안 그 일과 연루된 비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밝혀졌다. 어린 생명들이 죽은 것과는 별개의 아픔으로,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믿음이 부서지는 경험이란 그 역시 아픈 것이었다. 그래도 그것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처럼 느껴졌다. 내가 읽고 보며 공부하는 많은 것들이 결국은 그 날로 수렴되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날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인하고 있을텐데, 나는 어쩌면 그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른의 명령에 순응했던 아이들의 목숨을 디딤돌로 삼아 나는 어른이 되고 있다.


내가 미처 스스로 생각하기 이전에, 명령, 강요, 통보받던 수많은 10대의 순간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가만히 있었던 세월호 속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피자 먹으면서 드라마 보다가 울었다. 덕분에 내 강아지는 피자냄새에 짠내에 내 얼굴 근처에서 후각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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