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1이 사라졌다. 어 근데? 답장이 오지 않는다. 5분 뒤에 다시 들어가본다. 역시 답장이 없다. '바빠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나도 잠시 내 할 일을 하고 한 시간 뒤에 다시 본다. 여전히 답이 없다.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내가 한 말을 위에서부터 다시 곱씹으며 읽어본다. 내가 봤을 땐 잘못한게 없는데, 어디서 심기를 건드렸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 어디에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나요? 일단은 저의 모습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혹여 독자님들께서도 이런 적이 있으시다면 저와 함께 마음을 다잡으러 출발해보시기를 추천드려봅니다. 일단 2月 편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내자신부터 사랑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이번 3月 편도 비슷한 맥락이기는 합니다만 2月 편은 심리상태, 행동의 초점이 내 스스로에게 맞추어져 있었다면 3月 편은 심리상태와 행동의 초점이 다른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2月 편에 따라 내 스스로 사랑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을 한 뒤 인간관계 실전에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위처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저렇게 행동한다면? 말그대로 멘붕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애시당초에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괜히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상대의 행동 하나가 내 마음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주로 3월부터는 첫 만남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계를 형성하는 달입니다. 아이들, 그리고 주변 어른들까지 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아이, 어른을 떠나서 괜히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짓는 표정, 나에게 하는 말투, 행동을 보면 상당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제가 예민한 성격인 탓도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아 그래, 그네들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어서 그랬겠지.'라고 생각을 하고 지나가더라도 이것이 반복되면 괜히 의기소침해지기 쉽습니다. 그들의 그 작은 돌이 제 마음 속에 쿵하고 들어와 그동안 단단히 다졌던 제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때 가장 도움되었던 말씀이 바로 공자님의 논어!가 아니라 제 아내의 말씀이었습니다.
"여보, 이 세상 사람들 3분의 1은 이유 없이 당신을 싫어하고, 또다른 3분의 1은 당신이 뭘하든 아무런 관심이 없어. 나머지 3분의 1 정도만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주더라."
아내는 분명 인생 2회차임에 틀림없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어려도 이 세상의 이치에 밝습니다. 아내의 말씀을 새겨들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이때 이와 관련된 논어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돌이켜보면 제가 남이 저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인정욕구가 강한 편이라 다른 사람이 저를 인정해주는 것에 많이 목이 말라 있었던겁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도 하였었지요. 아무리 제 자신을 채워놓아도, 금세 타인의 인정 욕구에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처럼 제 자신이 텅텅 비어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긍정적 자기 확언을 할 때는 꼭 이 구절을 되뇌여봅니다. 남이 저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니 조금은 인정 욕구가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도리어 제가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한 번 더 성찰해보는 기회도 되니 1석 2조의 구절입니다. 더불어 이후 접하게 된 알프레드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독자님들, 독자님들께서는 어떠신가요? 오늘부터 '남이 독자님들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독자님들이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보기'를 최소 1주일, 아니 하루라도 실천해보시는 것은 어떠실지요?
※오늘의 인간관계 방정식: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개의치 마라. 도리어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지 돌이켜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