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恕而已矣(충서이이의)《논어(論語)》「里仁(이인)」편
독자님들은 누구를 제일 사랑하시나요? 지금 머릿 속에 떠오르는 바로 그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가요? 왠지 모르게 정답이 '나'일 것 같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제가 원하는 답은 '나'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어쩌면 종종 우리 자신을 깜빡 잊은 채 지낼 때가 많습니다. 저 또한 그렇거든요.
3월에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제 직업의 특성상 2월은 준비 기간이라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분주합니다.(OECD 국가 중 북반구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3월에 학기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 나라에서도 3월에 학기가 시작한다고 합니다.) 직업을 떠나서 학창 시절 때 '3월에는 누구랑 같은 반이 될까', '어떤 선생님이 우리 담임 선생님이 되실까'하고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기다렸던 적도 있었지요.
독자님들도 저랑 시기는 다르겠지만 특정 월 또는 특정 해가 되면 다른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으로 분주해지는 시기가 있겠지요. 독자님들은 이때 무엇을 가장 많이 신경 쓰시나요? 인간관계를 다룬 어떤 책을 보면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이 말에 꽂혀서 첫인상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 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처음 보는 분들께서는 감사하게도! 저에게 인상 좋다, 착해 보인다라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첫인상을 잘 보이고 싶은 제 소기의 목표가 이루어진 셈이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돌이켜보니 첫인상을 좋게 하는 게 능사는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간혹 제가 너무 바쁘거나, 또는 너무 아프거나 할 때 제가 첫인상 때 보여주었던 그 모습을 못 보여주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그러면 괜스레 민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철이 지난 단어이긴 하지만 '갈비'(갈수록 비호감)와 '볼매'(볼수록 매력적)가 있는데, 저는 고민 끝에 첫인상을 좋게 하기 보다는 볼매가 되기로 노력하였습니다. 남이 저를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우선 에너지가 많이 들기도 했고, 세월이 흘러보니 제가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그 사람과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고 있더군요. 지금 돌이켜보니 이 역시 정답은 아니겠다 싶습니다.
제가 노력했던 '멋진 첫인상', '볼매' 모두에서 놓치고 있던 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나'는 신경을 못 썼던 것이지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나'가 꼭 필요한가요?'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저는 '나'라는 존재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접한 심리학 관련 저서에서 말하기를, '나 스스로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해놓지 않으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이 좋아해주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지만, 요즘 유행하는 각종 SNS들의 좋아요 등이 자기 삶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한 때 그랬어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한 경우도 많이 있었지요.
나 스스로의 긍정적인 자아상이란 내가 엄청 잘 났다는 나르시시즘적인 것과도 또 다릅니다. 중용의 자세가 조금 필요한 셈이지요. 일단 긍정적 자아상은 현재 내가 가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또 내 삶을 위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봅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작은 과업, 작은 목표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작은 목표지만 이를 성공해내는 것이 내 스스로의 긍정적 자아상 확립에 기여합니다. 그리고 이런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는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저의 예민한 성격, 점점 커져가는 몸 등을 처음에 받아들이긴 어려웠습니다. 싫어했었지요.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나서 조금씩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무엇보다도 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타인과의 비교는 절대 금물입니다. 더 잘난 사람과 비교를 하는 순간 제 인생은 처참히 무너지거든요. 항상 과거의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면 좋습니다. 에밀쿠에님의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도 하루에 3번씩 외쳐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보통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길러주신 양육자에게 많은 말들을 듣고 자랍니다. 당연히 독자님들 모두가 양육자의 사랑을 바탕으로 길러졌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잔소리를 안 듣고 자랄 수가 없었지요. 그 아주 사소한 과정에서 부정적인 자아상이 형성되기 쉽습니다. '왜 그렇게 장난을 많이 치니?', '왜 그렇게 많이 먹니?', '왜 그렇게 예민하니?' 등 그 당시 상황에서는 흘러가는 말,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는 말이었다고 해도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비수처럼 가슴에 꽂힐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잔소리를 많이 들었었지요. 부모 등 양육자의 말이 자아상 확립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고려하였을 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자그마한 부정적 자아상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사랑을 바탕으로 키워주신 양육자를 원망하자는 뜻은 전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또한 사람이라면 성인(聖人), 현자(賢者)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독자님들도 잘 알고 계실테니까요.
대신 우리 모두는 우리 스스로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바로 서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다른 사람도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 아니고서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해야 내가 나에게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모든 인간관계가 시작됩니다.
논어에서는 이러한 마음을 충(忠)과 서(恕)로 얘기합니다 충(忠)이란 '가운데(中)에 마음(心)을 다하다('자기 마음에 진실하고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기에 나를 사랑하고 내 마음에 신경을 쓴다는 내용과 이어집니다. 그리고 서(恕)는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뜻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내 마음을 잘 돌보아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과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목차로 삼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인간관계 방정식: 나를 사랑하고 내 스스로 긍정적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