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열아홉살, 뇌경색 진단을 받다2

뇌경색 진단을 받은 서른 여덟살 직장인의 끄적임

by 밥상쌤의 진수성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꼬리는 나의 학창시절까지 되돌아갔다.

첫 번째 열아홉살, 그리고 두 번째 열아홉살이 되기까지...


내 인생을 온통 지배한 것은 열정 또는 정열이었다. 좋은 대학을 위해, 좋은 직장을 위해, 좋은 가정을 위해 나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인내했던 나날들. 뇌경색 진단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그 모든 나날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병상에 누워 우울감이 극도로 심해질 때에는 내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내가 쏟은 열정과 정열. 그 결과 내가 얻은 대학과 직장,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그 나날들과 현재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여 남들이 보기에는 그리 대단하게 생각을 안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던 나날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곁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물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까지)에 다시 한 번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모든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있다고 한다. 병상에 누워있을 때 후회스러운 많은 일들을 떠올렸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후회스러웠던 것은 우리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내 나름 최선을 다해서 놀아주었지만 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많은 후회스러운 것들 가운데에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가장 컸던 이유는 아이들-아빠라는 관계가 대체불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나에게도, 아이들 모두에게 적용이 되었다.


가령 내가 어떤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은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일을 찾아서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완전 다른 문제다. 아빠가 안계시고, 아빠가 안계셔서 소중한 추억들을 쌓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이 세상에 자녀들을 나오게한 아빠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어 지난 토요일에는 불안증세를 안고서도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주변의 목재체험장 놀이터에서, 평소 같으면 조금만 놀아주고 알아서 잘 놀고 있으면 잠시 켰었던 스마트폰도 주머니 속에 꼭꼭 숨겨둔 채,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있으니 불안증세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 머릿 속으로만 외치던 건강과 가족의 소중함을, 직접 경험을 통해서(굳이 안해도 되는 경험이었지만) 마음으로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어 더욱 감사하다. 또 이번 경험이 내가 그래도 감내할 수 있는 경험이기에 더욱 감사하다.


참! 병세는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호전되어 비교적 건강하게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일상 생활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다음주, 다다음주 지난 번 해두었던 검사 결과와 추적 검사 등을 앞두고 있다. 향후 결과가 잘 되기를 다시 한 번 기도드리며,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지금 처한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함을 느끼고 잘 헤쳐나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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