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열아홉살, 뇌경색 진단을 받다

뇌경색 진단을 받은 서른 여덟살 직장인의 끄적임

by 밥상쌤의 진수성찬

일단 무엇보다도 감사한 마음부터 든다.

지금 이렇게 살아서 숨 쉴 수 있음에,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음에, 그리고 말짱한 정신으로 글을 쓸 수 있음에...

두 번째 열아홉살이 된 병오년 2월. 뇌경색 의심 증상이 일어났던 그 날. 이틀 뒤 병원으로 찾아가 뇌경색 진단을 받았던 그 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렀던 그 날.

지금 글을 쓰면서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은 이상,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날들이다. 그럼에도 그것 마저 내 인생이기에 부정할 수는 없다. 내 무의식 어디 한가운데에 또 자리잡고 내가 약해질 때마다 그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렁거리는 불안증세가 있었다. 심지어 지난주 금요일에는 가족들과 저녁 외식을 하다 과호흡 증세가 와서 응급실에 한 번 더 다녀왔다. 응급실에 가서 누워 있으니 호흡, 맥박 등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불안증세라고 했다. 많은 환자분들이 나처럼 이렇게 응급실을 다녀간다고 했다. 절대적인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다. 마인드컨트롤도 해본 사람만이 잘 할 수 있고, 나처럼 유리멘탈인 사람은 한 번 두 번 하다가도 불안증세가 계속 찾아왔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다녀왔다. 불안증세를 없애기 보다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날들 속에서, 내가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있다. 건강하게 퇴원하게 되면 꼭 찾아뵙겠다고. 찬송을 부르고 목사님께 좋은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모름지기 이런 브런치 글은 정치, 종교에 치우치면 안된다고 배우고 철칙을 지키면서 썼는데 이번 글은 어쩔 수 없다. 이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인생이라 교회를 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마음도, 몸도 나약하던 나의 유년시절 나의 부모님, 그리고 하늘이자 우주였다. 그런 나를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힘껏 돌보아주셨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함께 갔다.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으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좋았고, 조금 지겨운 것만 버티면 맛있는 밥을 먹고 집에 가는 것도 좋았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까지 할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갔던 기억이 있었다. 10년 전 이야기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교회에 이번처럼 스스로 교회에 찾아간 적이 없었다. 거의 10년 만이다.

내 인생이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돌이켜보았다. 인프제인 나로서는 모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으며 점점 길어진다. 이 모든 생각을 이번 편에는 다 담을 수 없기에 다음글 기약해본다. 다음 번에도 꼭 말짱한 정신으로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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