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막 시작할 때는 열심히 해서 좋은 논문을 생산하면 인정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연구의 결과가 학계의 주류 견해와 어긋나면 잡지 게재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요새는 웹소설 창작에 더욱 관심이 간다. 웹소설 창작은 재미만 있으면 성공하는,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붙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에이,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집 자식이 괜히 중국사 공부한다고 나댔다.
《중국고중세사연구》에 투고한 《秦末漢初 병역제도의 재인식–軍功爵制와 正卒, 傅籍의 재검토》라는 논문이 이번에도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번처럼 게재 불가를 때린 이유를 전혀 납득할 수 없다. 뭐, 학계 주류와는 완전히 척을 진 것 같으니, 걍 페북에 게재불가판정을 내린 재심사 요지가 얼마나 황당한 건지 싸지르련다.
예컨대 게재불가를 때린 재심사 요지 서두에.. "이번 심사에서는 이 논문의 수많은 문제점을 열거하는 대신 ‘상식의 차원’에서 이 논문의 문제점에 대해 묻고자 한다."라고 썼다. 난 제발 구체적으로 내 논문의 어떤 구절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다. 이렇게 구렁이 담넘어가듯이 대충 쓰지 말자.
예를 들면, 재심사 요지가 언급한 상식의 차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진한시기 군대의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의무 징발된 일반 백성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수많은 역사 기록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물론 진말한초의 사료에서 병졸의 징집 자체는 확인된다. 그런데 징집의 "강제성"여부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징집=강제적 징집이라는 도식으로 이해한다. 왜냐? 그래야 진한시대 황제의 권력은 졸라 쎘어요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가지게 되니까.
그런데 진말한초에 널리 시행된 군공작제는 군공을 세우면 작위를 준다. 만약에 진한시대 황제 권력이 졸라 쎘다면, 왜 군공을 세우는 이들에게 작위와 이에 상응하는 집과 밭까지 제공해야 하는가? 강제적으로 징집이 가능하다면서?
이에 대해 반박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의무 병역제도 하에서도 전투에서의 사기 진작과 성공적인 전투 수행을 위해 군공작은 필수적이었다..... 군공작은 제민지배체제의 핵심 요소로서 국가가 백성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하기 위한 기제였지,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물론 사기 진작의 목적이 백성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함이라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과 백성의 환심을 사는 것이 모순관계인가? 백성에게 댓가를 지불해서 환심을 사는 것을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길 수 없는가? 게다가 한문제 때 이르러서는 한 중앙정부에서 흉노 방어를 위해 미리 사졸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기도 한다.
이게 바로 진한황제체제이론에서 군공작제가 지닌 문제이다. 군공작제가 널리 시행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진한시대 황제가 절대권력을 휘둘렀다는 것을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저 유명한 일본학자 니시지마 사다오는 진말한초 시기 군공작제의 시행 범위가 극히 제한되었다고 주장하였다.하지만 근래 출토문헌 덕분에 군공작제는 진말한초의 사회 근간이 되는 제도라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진말한초의 병역제도가 모병제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진말한초에 시행되었다고 알려진 正卒과 傅籍이라는 제도의 존재는 진말한초 병역제도의 모병제적 경향을 반박하는 사례로 제시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두 제도는 당시 병역제도를 의무병역제도로 이해하게 해주는 사례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내 논문에서 正卒과 傅籍라는 제도 역시 당시 병역제도가 의무병역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반박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러나 (1)기존 학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무시하고, (2)사료 한 두개를 비틀어 해석하거나 기존 연구의 일부만을 선택적으로 인용함으로써 ‘그럴지도 모른다’는 식의 가정을 끌어내는 것은 매우 큰 문제이다. 이 논문 중에는 논지에 상응하는 사료를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사료는 애써 무시하거나, 선행연구와 사료를 오독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正卒과 傅籍이 의무병역제도의 실재를 증명하는 기존의 논문을 소개받고 싶다. 하지만 내 공부가 비록 일천하지만, 지금까지 正卒과 傅籍이 의무병역제도의 실재를 증명하는 논문을 본 적이 없다. 왜? 正卒과 傅籍은 의무병역제도의 일부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치 1+1=2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사료 한두개를 비틀어 해석했는지 그 사례를 하나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뭐, 이해는 한다. 공사가 너무 다망하실 뿐 아니라 반박요지문의 여백이 너무 좁아, 내 논문이 사료를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쓸 겨를이 없으셨을 테니까. 기실, 이에 대한 가장 날선 비판은 수정후 게재를 때린 분의 심사요지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반박문에 있는 어이없는 한 대목을 소개하려고 한다.
“한초의 황제지배체제에 시대적 ‘한계’가 존 재하였다고 해서 그 한 단면만으로 당시 실재한 제도와 통치이념을 모두 부인할 수 없다. 숱한 선행연구가 진, 한 시기에 황제지배체제와 제민지배의 이념, 제도가 줄곧 존재하였다고 한다면, 그 논리를 살펴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논문의 필자는 진한 시기 통치 방식에 대한 선행 연구 전체를 살펴보기보다 자신의 선입견에 맞는 부분만을 선택 취사하는 문제점을 보인다.”
어라? 학술 잡지 원고에 두꺼운 연구서 한 권 분량을 요구하고 있다……?!!
“논문의 필자는 진한 시기 통치 방식에 대한 선행 연구 전체를 살펴보는 것”은 지금부터 평생해도 부족한 공부이다. 내가 투고했던 논문은 그 통치 방식의 아주 일부분에 대한 기존의 이해가 이상하다는 것을 지적할 뿐이다. 그런데 반박문은 “진한 시기 통치 방식에 대한 선행 연구 전체를 살펴보는” 작업의 첫 발을 뗀 초학자에게 기존의 모든 연구를 뒤집을 정도로 완정된 이론을 내놓으라고 질타한다.
제발 그럴 기회나 주고 질타를 했으면 좋겠다. 나도 내 논문이 기존 학계의 상식과 완전히 배치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그게 게재불가 이유의 전부이다.
참 인생 좆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