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중국 영화의 인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올해 설날 연휴 대륙에서 개봉한 <유랑지구2>는 한국뿐만 아닐 세계에서 통하는 중국식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본 SF 장르 가운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중국 중심 세계관이 익숙하지 않지만, 이는 할리우드 영화에 투영된 미국 중심 세계관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랑지구2>의 초반은 중국의 막대한 자본이 <와호장룡>등에서 보여준 중국 영화 특유의 영상미와 적절히 결합되면 얼마나 압도적인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해킹당한 수 백 대의 미국제 드론들이 우주 궤도 엘리베이터를 공격하고, 이를 막기 위해 미래형 전투기들이 출동하는 장면은 눈을 너무나도 즐겁게 해준다. 또한 대기권 밖에 떠 있었던 우주정거장이 추락하는 장면은 <ZZ건담>의 콜로니 떨어뜨리기 실사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박진감을 선사해준다.
하지만 <유랑지구2>의 진정한 의의는 <삼체>의 작가 류츠신이 직접 쓴 각본에 있다. 습근평 영도 하의 중국 공산당이 이 각본을 허가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이지 불가해하다. 왜냐하면 <유랑지구2>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서사는 중공의 중앙집권을 비판하는 측면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이 점점 거대해져서 지구를 삼키려 하고, 산산조각 난 달이 추락해서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유랑지구2>의 빌런이자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구원자가 된 유덕화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전체를 위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되는가?”
아마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라고 하더라도 사소한 희생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물며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중국 대륙에서야. 물론 유덕화가 던진 질문에 중공은 이미 21년 전 장예모의 <영웅>을 통해 답변을 내놓은 적이 있다.
“천하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사적인 은원은 접어두어야 한다.”
이후 중국 영화에서 개인은 늘 국가에 복종해야 했다. 왜냐하면 국가는 무오하고 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웅>과 같은 해에 개봉된 <무간도>의 대륙판 결말은 원작과는 달리 죄를 지은 유덕화가 결국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유랑지구2>에서 중국은 무오하고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물론 미국과 UN이 훨씬 무능하고 염치도 없는 무리로 묘사되지만 말이다. 중국이 야심차게 진행시킨 유랑지구 프로젝트로 인해 인류의 절반 이상이 추위와 굶주림에 고생하다가 죽어야 했다. 만약에 중국 정부가 유덕화에게 약속을 지켰다면, 유랑지구 프로젝트가 실패할 위기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유덕화가 인류를 구하기로 결정한 것도,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의 발로였을 뿐이다.
<유랑지구2>의 매력은 개인의 존엄성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주제에만 있지 않다. <공각기동대>에서 제기된 인간과 AI와의 갈등이나 <매트릭스>에서 묘사된 현실과 가상세계의 대립이라는 설정을 통해 저 주제를 풀어내었다. 이 영화의 설정과 주제, 그리고 서사에 집중하다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도 꿀리지 않는 화려한 특수효과는 어느새 망각된다.
언젠가 다시 중국 대중 문화가 전세계를 풍미한다면, <유랑지구2>는 그 효시가 된 작품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