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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Jun 11. 2018

맹자와 순자가 말하는 정치 혁명

   예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재탕했습니다. 





    맹자가 다시 태어나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목격했다면 끌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으리라. 왜냐하면 세월호 참사를 수수방관하며 “인간다움과 의로움을 저버린 이는 군주가 아니라 조폭과 도적”으로 취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상에서 유학, 특히 맹자의 혁명 사상은 불완전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혁명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었어도 여전히 주권이 인민이 아닌 왕이나 혹은 귀족 계급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력이나 가문이 왕이나 귀족계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능력과 도덕성이 척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재력과 가문과는 상관없이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이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바로 유가 정치 사상의 핵심이다. 예전에 석사 논문 쓰면서 전국, 양한 시기 유학의 혁명 사상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함 짧은 글을 써 본다.


    <논어>를 보면 “군자”는 보통 도덕성이 높은 이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자가 자기 가족을 진실하게 대해야 백성들도 인간다움을 깨닫기 시작한다”(<논어-태백>)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백성을 통치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공자도 "소싯적 비천한 직업에 종사했었으며”(<논어-자한>), "구이라고 불리는 야만인과 같이 살기를 원했다”(<논어-자한>). 그래서 "군자는 그릇으로 잴 수 없는 존재”(<논어-위정>)라고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구절은 군자는 어떠한 물질적 제약에 속박받지 않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군자가 천자가 될 수 있는가의 질문에 대해서는 맹자는 아직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왜냐하면 분명 천자가 충분히 될 수 있는 도덕성과 능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 인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지만, 천자가 되지 못했던 이윤, 주공, 그리고 공자와 같은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다움과 의로움을 저버린 군주는 끌어내려야 마땅하지만, 누가 새로 천자가 되느냐는 결국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맹자-만장상>) 이러한 맹자의 정치 사상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능력과 도덕을 겸비한 군자라도 무능한 군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한국에 환생한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밑에서는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책에는 무능한 군주에게 희생당한 유능한 충신들의 사례로 가득 차 있다.


    이에 순자는 난세에는 군주와 신하가 자리를 바꾼다고 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유학자가 세상에 등장한 의의라고 주장한다.(<순자-유효>) 맹자와는 달리 순자는 하늘은 그저 해, 달, 별로 이루어진 사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어지러움에 어떻게 관여할 수 있겠냐고 한다.(<순자-천론>) 그렇다면 천자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세勢, 어떤 보이지 않는 커다란 흐름이라고 하며, 이는 민심에서 나온다고 하였다.(<순자-왕패>;<순자-강국>) 순자는 민심은 유능하고 덕망높은 이를 따르기 때문에 이러한 이가 천자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또한 유능하고 덕망 높은 어떤 인물이 천자의 자리에 올라 세상의 모든 현인들에게 재물이나 권력이 아닌 오직 덕만을 근거로 정치적 지위를 부여하는 체계를 건설한다면, 설령 그가 죽어도 덕망높은 현인이 천자의 자리를 이어받을테니, 평화로운 세상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순자-정론>) 요컨대 순자는 덕망 높은 군자들 가운데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며, 이는 민주주의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시황때 승상을 역임한 이사가 순자의 제자인 까닭에 순자와 황제의 절대 권력을 지지한 법가를 많이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전한시기 유학자들이 <시경>, <춘추>, <예기>, <역>의 경전을 순자와 그의 후예들에게서 전승받았다는 기록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자보다 후자에 관한 기록이 훨씬 많은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순자가 예를 강조했고, 예가 법의 전신이기 때문에, 법가의 비조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순자의 예 사상은 어느 한 명이 황제가 되어 권력을 농단하는 것을 변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인민 가운데 오직 덕망과 능력만을 기준으로 나라를 다스려는 인재를 선발하고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가 천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이러한 사상을 이어받은 한나라 유학자들이 한무제 이후부터 이민족 정벌로 인한 재정 고갈과 더불어 심화된 빈부 격차 때문에 황제에게 대놓고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한 말 왕망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황제의 자리를 찬탈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서 사회를 개혁하자는 여론의 지지를 받아 선양을 받았다.


  유학 정치 사상은 근대 서구 민주주의처럼 모든 인민들의 참정권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특히 자신의 이익을 도덕보다 앞세우는 이들에게 정치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적절한 교육을 받고 도덕적 소양을 쌓는다면 누구든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재산과 가문에 상관없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 천자가 되어야 하며, 만약에 최고 통치자 다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탄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론적으로는 서구 민주주의와 거의 별 차이가 없지만, 유학의 정치 사상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송나라 이후나 조선시대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군자, 즉 정치 엘리트들의 집단 지도 체제로 나라가 운영되었지만, 점차 황제와 그의 주변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송나라 왕안석의 개혁에 대한 사마광의 반발이나, 조선 중기 예송논쟁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유학자들의 반발에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청시대 황제 권력의 강화와 조선 후기의 세도 정치는 많은 유학자들로 하여금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의 뇌리 속에 박혀 있는 유학에 대한 이미지는 이 때 탄생하였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하겠지만 나는 유학과 맑스주의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두 학문 모두 빈부 격차가 심화되어 인간이 더이상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은 시기에 인간이 어떻게 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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