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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Jun 14. 2018

유학과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기원

누군가의 포스팅에서 존속범죄의 가중 처벌이 유가적이라는 구절을 보았다. 물론 <논어-자로>에서 아비가 양을 훔치는 것을 자식이 고발할 것이 아니라 이를 숨겨주어야 올바르다고 한 구절이 있으며, 또한 법가 사상의 대표하는 문헌 가운데 하나인 <한비자-오두>에서 이런 유학의 가르침이 나라를 좀먹는다고 비판한 것을 보면, 도덕이 부모보다는 자식에게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 유가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법가 이론이 치국 이념으로 활용되던 진나라의 <법률문답>에서도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사건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으며, 진나라의 제도를 이어받은 한나라의 <이년율령>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자식이 저러면 "죽여서 매달아 버린다"고 까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고대 중국에서 현재 한국 형법에 이르기까지 자식보다 부모를 중시하는 경향은 반드시 유학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공자가 당시 유행하던 형법 학설들 가운데 하나를 지지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본다. 그러므로 같은 맥락에서 동아시아 가부장제의 기원이 유학이 아니라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수 많은 귀족 가문들이 명멸하고, 기존의 씨족제도가 붕괴되면서, 진시황의 중국통일이 5인으로 구성된 소가족제 확립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한다. 가설이지만, 소가족제와 가부장제의 형성, 그리고 부모가 자식보다 우위에 서는 법률 제도의 탄생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국말-진한시기의 법률과 행정 제도의 형성은 군사제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예컨대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이 병영을 연상케한다. 또한 전쟁에서 공을 세워야 비로소 작위를 얻을 수 있다. 두정승도<편호제민>이라는 책에서 진한시대의 행정체제는 군사제도에 기원했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는 고대 중국의 행정제도의 이러한 군사적 속성은 송나라가 문치주의를 펼치면서 처음으로 부식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란이 터지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죽어버리는 지옥도를 연출하는 고대 중국에서 많은 제도들과 사상들이 전쟁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동아시아의 특유의 집단주의 역시 이런 역사적 배경이 낳은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유학의 충효사상도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은 닥치고 윗 사람을 따르라고 하지는 않았다. 설사 우두머리가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인하더라도, 그에 걸맞는 도덕적 사명을 요구했으니까 말이다.


"애비가 애비 노릇을 못하면 애비가 아닌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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