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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Jun 21. 2018

전목錢穆의 진한 황제 전제專制 체제 이론 비판

전목錢穆은 1955년에 지은 《중국역대정치득실中國歷代政治得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황제는 국가의 유일한 우두머리였지만, 실제 정권은 황실이 아니라 정부에 있었다. 정부를 대표하는 것은 재상이었다. 황제는 국가의 원수로 국가의 통일을 상징할 뿐이었다. 재상은 정부의 영수로 정치상 실질적인 모든 책임을 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 몇 십 년 동안 대개 중국은 진한시대 이래 봉건정치 혹은 황제 전제 체제였다고 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중국사를 공부하는 이들은 진한제국의 성립이라는 구절이 너무 익숙하다. 그런데 진한시대를 제국이라고 정의 내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책 한 권이 필요하니, 일단 지엽적이지만, 진한제국이라는 용어의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져보겠다. 과연 진한시대 황제가 전 중국의 모든 인민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을까? 맑스주의 역사학의 시대구분론, 즉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의 세례를 받은 학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에게 진한왕조는 황제가 전 인민을 개별적으로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권력을 향유할 수 있었던 제도가 처음 완성된 시기이다. 많은 대륙과 일본 학자들 그리고 일부의 서양 학자들은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치, 사회, 경제, 사상사 등 전방위에 걸쳐 이 이론을 뒷받침할 사료들을 탐색하고, 논리적 결함을 보강할 새로운 설명들을 덧붙이는데 힘썼다. 근래 대다수의 대륙학자들은 십 여 년 전에 출토된 <이년율령>을 근거로 진한 초기 황제가 일괄적으로 직접 관리했다는 학설까지 주창하였다.  


    하지만 <이년율령二年律令>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후呂后시기는 그렇다쳐도, 한문제가 정말로 전 중국의 토지를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까? 여후 세력 축출을 주도했었던 제나라에 터를 잡았던 유씨 제후들과 유방 공신들 간의 알력 다툼 덕분에 어부지리로 황제가 되었던 한문제가? 한문제 시기 것으로 추정되는 은작산銀雀山 한간漢簡에서 전국시대 제나라 계통 법령이 출토되었다는 것은 당시 한문제가 전 중국을 직접 통제할 수 없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전한시기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던 한무제도 전쟁 비용 충당을 위해 염철 전매 제도 시행할 때 자신이 직접 실무진들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관련 업종에서 활약하고 있던 기존의 대상인들을 관리로 써먹었다. 또한 한무제 이후 즉위한 황제들은 종종 자연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퇴위하라는 권고를 들었다. 왕망王莽이 황제가 된 것 역시 이런 분위기에 편승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전목의 말대로 진한 황제 전제 통치를 반박하는 사료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사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전목의 책은 한 번 씩 들추기 마련이다. 특히 《중국역대정치득실》과 같은 개설서는 더욱 그렇다. 이번에도 진한 시대 관료제 성립에 관해서 논문들을 읽다가 우연히 별 기대없이 이 책을 다시 뒤적였다. 웬걸 중공에 반대하여 대륙을 벗어난 대학자가 맑스주의 역사학 이론을 토대로 진한사 이론을 구축하는 시도에 대항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저번에 서복관徐复观이 쓴 동중서董仲舒에 관한 글에서 전한 유학과 민주주의가 접점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이는 확실히 많은 일본과 대륙의 학자들이 전한시대 유학을 주로 권력 강화의 도구로 해석하는 것과는 달랐다.


    진한시대를 가리켜 황제 중심의 전제 통치 체제가 성립된 시기라고들 한다. 그리고 이 이론이 워낙 튼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제 진한사는 출토문헌을 제외하고는 딱히 공부할 것이 없다고 여기게 될 정도이다. 그런데 중국사 연구의 태두들인 전목과 서복관 선생은 진한시대 역사에 대해서 기존의 이론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가 현재 주류가 된 진한시대 사회 경제사를 설명하는 학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설명한 글은 접한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공부가 부족해서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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