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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Aug 01. 2018

한문 번역 사례 1 : 既의 활용

진시황 붕어 후 환관 조고가 이사에게 유언서를 위조하자고 권유하는 대목

진시황이 죽고 조고가 이사에게 유언장을 위조하자고 꼬셨다. 다음 황제로 장자 부소가 즉위하면 몽염이 승상이 되고 넌 망했어요를 외칠 수 밖에 없다는 말에 설득당한 이사는 탄식했다. 


"獨遇亂世,既以不能死,安託命哉."


그런데 이 구절을 한어대사전 출판사본 24전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었다. 


"홀로 난세와 마주하여 왔는데, 나라를 위해 죽을 수 없으니[既然不能为国效死], 운명을 어디에 맡겨야 하는가."


하지만 이 말이 나온 배경을 고려하면서 자세히 원문을 읽어보면 이 풀이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원문에는 "나라를 위한다"는 구절이 없고, 단지 죽을 수 없다라는 말 밖에 없다. 


둘째, 조고는 이사에게 진나라의 법을 어기자고 권유하고, 이사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진나라를 배신하는 길을 선택했다. 따라서 "나라를 위해 죽을 수 없다"라는 풀이를 나라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이해한다면 문제가 없는데, 자칫 나라를 위해 순국하고 싶은데 형편상 그럴 수 없다고 새겨질 수 있다. 원문을 풀이한 중국 학자의 애국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셋째, 원문에서 이사 난세를 홀로 헤쳐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다음 죽을 수 없다는 구절은 나라와 무관한 것으로 봐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원문을 어떻게 번역하는 편이 더 좋을까? 우선 以는 獨遇亂世를 받아주는 개사로 종종 "때문에"로 번역된다. 따라서 以의 뜻을 최대한 살려서 새긴다면 홀로 난세와 마주해서 생존해왔기 때문에 죽을 수 없다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미" 벌어진 일을 강조하는 부사인 “既”를 어떻게 처리할지 급 골치가 땡겼고, 이에 하스스톤이나 한 판 때리면서 쉬자고 결심했다. 맛폰을 쥐고 뒹굴뒹굴 하던 중 패가 말려서 패색이 짙어진 순간... 이렇게 된 바에야 방어는 생각도 말자.... 응 이렇게 된 바에야? "既然如此“라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즉시 GG를 선언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원문의 "既以"를 강조해서 이렇게 번역해봤다. 


"홀로 난세와 마주하여 왔는데 이제 와서 죽을 수는 없으니 어디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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