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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May 24. 2018

유교적 전통이 한국의 병리적 권위주의의 화근일까?

예전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재탕 중입니다. 





“전체를 위해서라면 희생하셔야죠. 그래도 본사 원장님께서 오시는데.” 


   내가 보습학원을 때려칠까 말까 고민할 때 쐐기를 박은 말이다. 미리 일정 조정을 하면 모르겠는데, 학원 원장이 나와는 상의도 없이 멋대로 본사와 연락해서 학원 설명회 날짜를 변경하면서 저렇게 말했다. 정말 나 하나의 희생이 정말 전체를 위한 것이면 불쾌한 마음을 어떻게든 다스리겠는데, 사실 원장의 이익 위주로 결정한 것을 저렇게 포장하니 분통이 터졌다. 사실 한국에서 모두를 위해서라는 말은 집단의 우두머리만을 위해서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네에서 위계질서가 엄격한 것은 아마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집단주의는 한국의 병폐들을 지적할 때 필수요소로 등장하게 되었고, 그 범인으로 주로 유교적 전통이 자주 언급된다.  


   유교적 전통이 권위주의및 집단주의를 연상시키는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예컨대 리콴유의 유교자본주의는 유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등의 윤리가 개인을 사회와 국가에 종속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것이 경제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세기의 상당수의 학자들, 특히 요새 중국 대륙의 학자들은 한무제의 독존유술(獨尊儒術)을 언급하며 유교는 정권 강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고 설명한다. 물론 유교의 가르침에서 이렇게 독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서복관徐復觀, 여영시余英時 등 대만과 홍콩 출신의 쟁쟁한 학자들은 유학의 본디 가르침, 특히 경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양한시기의 유학은 오히려 개인의 가치를 긍정하고, 전제 왕권을 부정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삼국지 초반에 나오는 당고黨錮의 옥 사건은 유학자들이, 설사 극단적인 측면이 분명 있지만,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한편으로는 선비는 죽일 수 있어도 욕보일 수 없다는 말이 보여주듯이 당시 사회가 영웅적 행위를 강요하는 분위기로 물들어 있었으며, 이를 기준으로 삼아 삼군三君, 팔준八俊 등으로 서열을 나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비록 위진남북조 시대, 죽림칠현등이 세간의 권위와 도덕을 우습게 여겼지만, 이 역시 몇 백 년간 이어진 위대한 개인을 숭상하던 장기 지속의 역사적 결과물인 것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세속을 초월한 개인의 일대기를 묘사하는데 주력하는 무협 장르에서도 집단주의와 권위주의를 엿 볼 수 있다. 예컨대 영화 《일대종사一代宗师》의 여주인공 궁이宮二의 삶은 무림 문파의 장문인의 명령이 얼마나 지엄한지,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은 문파의 체면 앞에서는 한낱 들풀과 같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또한 김용의 무협소설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에서 아미파의 멸절사태는 명교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제자 주지약에게 사랑하는 이와 맺어진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맹세를 하게 시키며, 이는 결국 사악한 무공을 익히고 죄없는 이들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에 소설 《신조협려神雕侠侣》에서는 문파와 무림에 등을 돌린 개인이 스스로의 존엄을 천하에 드러내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 양과와 소용녀는 엄격한 상하 관계로 이어진 스승과 제자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세간의 갖은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다. 어쩌면 이 작품이 보여주듯이 권위주의의 타파와 개인의 현현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들 가운데 하나인 도덕의 전복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에서 장삼봉이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명교의 신도들을 구하기 위해 교주가 된 장무기를 파문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구하는 일이었다면서 칭찬한 이야기는 어떤 집단의 권위와 규범이 개인의 합리적 선택 및 결단과 배치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장삼봉이 이끄는 무당파는 문파의 구성원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양한시대 중국 사회가 바른말을 선비들을 용납하고, 이를 권장한 것도 공자의 인본주의 정신이 제대로 발휘된 증거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개인의 존엄을 희생하면서까지 집단 전체의 이익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두머리의 이익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이런 분위기에 물들어 있다는 것은 지금은 비록 미약한 존재지만, 나중에 높은 자리에 올라 자신만의 이익을 탐하는 일을 정당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하급자에게 온갖 부조리가 벌어지는 까닭도 저 논리가 암묵적, 혹은 명시적으로 동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병든 권위주의와 집단주의가 판치는 까닭을 유학에서만 찾는다면 지적인 태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학자들은 그들의 법가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적 이익에서 비롯한 병든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를 가장 싫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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