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에 올라 구름 위를 걷다

by 화목란 바라기

2 년 전에 썼던 황산 여행기를 재탕했습니다.




중국의 화동华东지방, 즉 강소江苏, 절강浙江성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들 가운데 으뜸이 어디냐를 논할 때 황산黃山은 항상 거론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를 두고 보더라도 그 유명세는 항상 선두를 다툰다. 왜냐하면 산동山东성의 태산泰山, 섬서陝西성의 화산华山, 하남河南성의 숭산嵩山, 산서山西성의 형산衡山과 함께 오악五岳이라고 불리는 중국 오대 명산의 수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상해와 남경에서 몇 년 동안 살았지만, 바로 옆 안휘安徽성에 있는 황산에 아직 가본 적이 없었다. 시간과 돈이 없어서 라는 핑계도 있지만, 역시 게으름이 아직 황산에 발걸음을 디디지 못하기 만든 가장 큰 원인이리라. 하지만 남경대 역사학과 고문독서회에서 중국 역사 지리 관련 발표를 몇 번 하고 나니 가슴 속 어딘가 곤히 잠들고 있었던 역마살의 여신이 오랫만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중국사를 공부하는데 중국 지리는 필수라고 되뇌이며 부랴부랴 트래킹화와 배낭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으로 황산의 날씨를 검색해봤다. 누군가 황산은 4월 말에도 영상 5도 정도 이기 때문에 두터운 외투를 필수라고 포스팅을 해두기도 하였고, 마침 일기예보에서도 비가 올 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라고 해서, 엊그제 드라이했던 국방색 외투를 배낭 깊이 쑤셔넣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는 빗속의 산행은 위험하니까 그냥 가지 말자고 게으름이라는 괴물이 유혹했지만, 역마살의 여신의 가호 덕분에 기차표와 유스호스텔을 예약할 수 있었다.


남경에서 황산을 갈 때 가장 편한 방법은 남경역에서 밤 12시 반에 출발해서 황산역에 아침 7시 11분에 도착하는 침대 기차를 타는 것이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바로 황산에 도착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도 거의 없고, 아침 산행에 적절한 시간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원래 잉쭤硬座라고 불리는 딱딱한 의자 표 밖에 없었으나 기차 예약 앱을 시간을 날 때 마다 보고 또 보고해서 결국 침대표를 끊었다. 중국 기차표 예약 사이트도 알리페이와 연동되어있어 손가락질 몇 번에 간단하게 표를 구입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기차표 뿐만 아니라, 음식 배달와 옷 구매는 물론이고, 자취방 검색 및 계약, 마트에서 일상용품을 구매하는 일, 심지어 소액 펀드까지 스마트폰으로 알리페이를 사용해서 결제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는 분명히 중국이 맛폰으로 결제할려고 하면 무슨 공인인증서를 설치하라는 둥 귀찮게 하는 한국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있다. 싼 곳에서 머물겠다고 3만원 정도 하는 한국의 모텔과 비슷한 쾌속호텔快速酒店(express hotel)같은 곳에 예약했다가 운이 나쁘면 노숙자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최저 5만원 이상하는 4성급 이상 호텔에서 하루 이틀은 모르겠지만, 한 달 이상 장기간 배낭여행을 하는 경우 숙박비만 150만원이 넘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본인은 배낭여행할 때 항상 만 원 미만의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를 예약한다. www.yhachina.com에서 중국의 거의 모든 유스호스텔을 검색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유스호스텔이 각 지역의 관광지나 도시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한 숨 돌릴 카페나 바를 찾기도 용이하다. 나는 황산 정상의 백운빈관白云宾馆이라는 호텔과 황산 시내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에 각각 1박씩 예약했다.


출발 당일 22일 밤 12시 반 침대 기차를 타기 위해 기숙사를 출발하였다. 한 밤 중이라 도로에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15분 만에 남경역에 도착하였다. 예약한 표를 찾기 위해 줄을 섰다. 중국인은 기계에서 예약한 표를 뽑을 수 있는데, 외국인은 반드시 창구에 가서 표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기차 출발 시간보다 최소 30분 전에 역에 도착해야 한다. 줄을 서면서 전광판을 보다 보니 남경에서 가욕관嘉峪关이나 은천银川처럼 섬서성이나 감숙甘肃성까지 가는 기차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무리 남경이 상해와 무한 사이에 끼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강소성의 성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의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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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표를 찾기 위해 줄을 섰다. 중국인은 기계에서 예약한 표를 뽑을 수 있는데, 외국인은 반드시 창구에 가서 표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기차 출발 시간보다 최소 30분 전에 역에 도착해야 한다. 줄을 서면서 전광판을 보다 보니 남경에서 가욕관嘉峪关이나 은천银川처럼 섬서성이나 감숙甘肃성까지 가는 기차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무리 남경이 상해와 무한 사이에 끼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강소성의 성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의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침대차는 몇 년만에 타는지라 내가 어디에 누워야 하는지 처음에는 찾지 못했다. 2007년 서안西安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에는 침대차만 탔지만, 남경, 상해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고속철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천키로 넘는 장거리를 갈 때에는 침대차를 타야하지만, 북경, 하북, 산동, 강소, 절강, 복건, 광동등 중국 연해 지역에서 500km 정도의 중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고속철이 주된 이동 수단이 된다. 침대차의 외관은 고속철에 비하면 정말 우중충하지만 내부는 깔끔하다. 이불과 베개도 잘 구비되어 있다. 기차에 타자마자 피곤해서 눈이 스르르 감기던 차에 위에 누어 있는 아저씨가 코를 천둥처럼 골기 시작했다. 저러다 숨막혀 죽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코를 골았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들어도 코고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었다. 침대차를 탔는데 잠이 들 수 없다니. 내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등반을 할 생각에 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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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윗층의 코고는 아저씨는 이미 이전 역에서 내린 듯하다. 황산 역에 도착해서 등반하려면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 역전의 한 식당에서 쇼우간미엔手擀面을 먹었다. 칼국수비빔면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그런데 식탁에 등장한 것은 탕면이었다. 본인은 웬만해서는 중국에서 탕면을 안 먹는다. 특히 남쪽지방에서는 말이다. 왜냐하면 남쪽 지방의 탕은 육수를 거의 안 써서 맹맹한데, 여기에 면을 첨가하니 이맛도 저맛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이렇게 평가하면 중국인들은 한국 음식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받아친다. 만약에 그래도 국밥이나 탕면을 먹고 싶다면, 중국 북쪽 음식에 속하는 양러우 파오모羊肉泡馍나 난주 라면兰州拉面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중국 북쪽의 탕은 뼈와 고기를 우려 만든 육수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음식이라도 지방에 따라 맛이 다른데, 대표적인 예가 훈둔이다. 훈둔은 중국식 만두국의 일종인데, 서안 훈둔의 탕국은 감칠맛이 농후하지만 황산 훈둔의 탕맛은 거의 맹물 맛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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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든든히 채우고 황산 등반을 위해 탕커우汤口에 도착했다. 황산은 산이름이기도 하면서 지역명이기도 하다. 황산 기차역은 황산시 툰시屯溪에 있지만, 황산이라는 산은 탕커우에 있으며 툰시에서 탕커우까지 20원하는 버스타고 1시간 가야 한다. 기차역 앞에 버스가 줄줄이 서있으니 택시 기사들의 호객 행위에 넘어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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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커우에 도착했다. 다시 탕커우에서 황산 중턱의 운곡사云谷寺와 자광각紫光阁까지 15분 정도 또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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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은 초입에서 각 봉우리까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어 굳이 도보등반이라는 고생을 안 해도 된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타면 곳곳에 숨겨져 있는 황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줄어든다. 황산은 위도로 따지면 한국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 그래서 산 중턱인데도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큰 죽순들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사진 상으로는 크기가 잘 분간이 안 되지만, 최소 성인 남자 허벅지만한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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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은 1년의 대부분이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황산에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정말 운이라고들 한다. 구글링하면 나오는 멋진 황산의 사진들은 정말 운이 좋을 때 찍힌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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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운곡사를 출발해서 12시 반 경에 백아령白鹅岭이라고 하는 고개에 도착했다. 황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광명정光明顶으로 갈 때 빼고는 더 이상 오르막길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 중국은 다른 산들도 그렇지만 정상에도 포장이 잘 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돈과 많은 땀이 투입되었을까. 백아령에서 다른 봉우리들까지의 거리는 비슷비슷한데 이동 경로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면 우선 시신봉始信峰으로 가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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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십 분거리에 불과하지만, 시신봉에 도착하니 백아령의 하늘과는 달리 자욱한 구름이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멋진 경치는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려던 차에, 거센 바람이 뿌연 구름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어느 호텔의 모습도 보인다. 황산의 봉우리들 사이사이의 고개들에는 호텔들이 있다. 그래서 굳이 텐트같은 것 가져가지 않아도 황산 꼭대기에서 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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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뿐만 아니라 상점들이나 식당들도 있으며, 심지어 파출소와 은행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음식 재료나 갖가지 생활 용품 등은 어떻게 공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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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꾼들이 산 정상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보급품을 짊어지고 올라간다. 몇 키로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지만 당연히 군장보다는 훨씬 무거우리라. 사진의 등산로는 그리 가파르지 않아서 쉽게 올라가는 것 같은데, 정상 근처에 가면 두 손을 짚어야할 정도로 가파른 길이 곳곳에서 나온다. 게다가 정상 근처까지 왔으니 쌓인 피로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발을 겨우 끌면서 서너 계단 올라가다 지팡이에 짐을 얹고 쉬는 짐꾼들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다리가 쑤시고 숨을 헐떡거리는 등산객들도 어느샌가 이들을 지나쳐 위로 사라져 버린다. 이들 가운데 캔 음료수를 나르는 이들은 그나마 등산객들에게 자신들이 운반하던 물건을 팔면서 무게도 줄이고 돈도 벌고 한다. 가장 불쌍한 부류는 바로 쌀 포대를 나르는 짐꾼들로 이들에게 저런 자비는 저얼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파른 오르막 직전에는 사람을 나르는 가마꾼들도 눈에 띈다. 사람이 정주하면 쓰레기는 생길 수 밖에 없는법.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오는 짐꾼도 있다. 황산 등산로 곳곳에는 쓰레기통이 있으며 쓰레기만 전문적으로 치우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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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봉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사자봉狮子峰이다. 여기는 사자봉 가는 길에 찍은 몽필생화梦笔生花(꿈 속의 붓으로 꽃을 그려내다) 라는 절경이다. 봉우리 뒤로 자욱하게 일어나는 구름은 여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만들고 우측의 봉우리와 그 위에 솟은 소나무는 한 떨기 꽃과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자봉 옆의 청량대清凉台에 도착하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이 이미 전경을 가리고 있었다. 비록 맑은 날이라면 저 멀리 보였을 장관을 감상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자욱하게 일어나는 구름이 잠시나마 나에게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맑은 날과 우화등선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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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대를 뒤로 하고 예약해 둔 백운빈관이 있는 광명정으로 향했다. 겉보기에는 평탄해보이지만 상당한 오르막 길이다. 광명정은 황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 때문에 다른 봉우리에서 갈 때도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지도에서는 단순한 샛길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속았다고 생각하면서 터덜터덜 발을 딛었다. 사실 이 때부터 슬슬 다리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 정도 천근만근인 다리를 끌고 가니 저 멀리 광명정이 보였다.


DSC00155.jpg 광명정에서 본 다른 황산 봉우리들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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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호텔 상점에서 파는 컵라면과 맥주로 때웠다. 누군가 산 봉우리에서 사면 빵 하나에 60RMB, 즉 만 원 정도라고 그랬는데, 저거 다 합쳐서 30RMB 밖에 안 했다. 물론 산 아래에서 사면 10RMB 이긴 한데, 낮에 짐꾼들을 떠올리면 30RMB 밖에 안 한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짐꾼들을 도대체 한 번 산행에 얼마를 받을까 궁금해졌다. 사진은 중국 컵라면 가운데 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것이다. 첫째는 토마토 소고기 컵라면. 중국 본토 음식들 가운데 토마토가 들어 있는 것은 웬만하면 한국인 입맛에 다 맞는 편이다. 다섯 시 반에 일출이기 때문에 아홉 시 쯤에 잠이 들었다. 비록 지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내일도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듣기는 했지만, 일기 예보는 자주 틀리니까 라는 기대를 품고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새벽 네 시 반에 눈을 떴다. 빗줄기 소리를 들었다. 일출 감상은 글렀다고 생각하고 또 잤다. 여섯 시 쯤 기상해서 물품을 주섬주섬 챙기고 서해대협곡을 한 바퀴 돌아 자광각으로 내려올 예정으로 출발하였다. 시간이 지날 수록 비바람이 거세져서 처음에는 카메라를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언제 여기를 다시 올까 생각으로 멋진 풍광을 지나칠 때마다 겁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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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석飞来石이라는 이름이 붙은 바위인데 접근해서 보면 엄청나게 크다. 분명 비바람에 깎인 바위일텐데 마치 하늘에서 떨어져 박힌 모양새이다. 사진으로는 구름만 자욱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비바람과 싸우며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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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협곡 입구로 가는 도중에 있던 정자에서 찍은 사진이다. 중력의 법칙에 따라 모든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있지만 돌풍이 비와 구름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중이다. 이 쯤 오니 방수가 된다는 신발 속은 양말을 통해 스며들어간 빗방울 때문에 물로 가득차게 되었다. 양말을 벗고 나니 그래도 신발 소재가 고어텍스인지라 배수 능력이 괜춘해서 돌아다니는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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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대협곡 초입에는 사진과 같은 동굴이 많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니 동굴 입구 벽을 타고 물이 내려오는데 마치 한 폭의 커튼 같았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처음 살던 곳이 수렴동水帘洞이라고 하는데 아마 이 광경에서 모티브를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들에서도 잘 나타나있지는 않은데 실은 비를 무진장 맞으면서 카메라에 물방울 튈까봐 품에 안고 찍었다. 덕분에 비록 우의를 입고, 그 안에 어느 정도 방수가 되는 잠바를 입었지만, 살갖과 맞닿은 긴팔까지 물기가 스며드는 것을 감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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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구름이 걷힌 모양이다. 지나가다 단체 등반객들을 만났는데, 이 무리를 이끌던 가이드가 이 지역은 맑은 날에도 구름이 많아서 이런 경치를 쉽게 감상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중에 황산 시내의 유스호스텔에서 머물 때에도 벽에 한가득 서해 대협곡은 볼 것도 없고 개피곤하다 가지말라는 말이 가득했다. 그러나 악천후는 오히려 나에게 서해 대협곡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었으며, 황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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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과 구름을 뚫고 계곡 가장 밑까지 내려왔다. 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웃도리도 모두 젖어버렸다. 다리도 슬슬 알이 배겨 후들거리기 시작했했지만, 힘들어도 계속 움직여야 했다. 좀 쉰답시고 가만히 있으면 거센 바람과 다 젖은 옷이 몸을 덜덜 떨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자광각까지 가서 버스타고 황산 시내로 가서 쉬자는 생각에 흠뻑 젖어 누더가가 된 지도를 펼쳐보니 아뿔싸. 자광각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젯밤 묵었던 백운빈관까지 다시 올라가야 했다. 황산을 도보로만 이동하자는 나의 원대한 망상을 접고 100RMB 가격의 모노레일을 백운빈관까지 다시 올라갔다. 만약에 무대포로 산을 올라갔으면 악천후의 등산로 어디에서 체온 저하로 인해 불귀의 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백운빈관에 다시 올라가니 비바람이 미칠듯이 몰아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 찍는 것은 깨끗이 포기했다. 아마도 협곡 아래에서 정상으로 모든 비구름이 바람을 타고 올라온 듯 했다. 비록 사진은 찍지 못하지만, 덕분에 서해대협곡에 황산의 유명세에 걸맞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으니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사진은 둘째치고 일단 칼로리 높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일념 만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미 준비해둔 빵과 쵸코바는 서해대협곡에서 먹어치운 지 오래였다. 종이컵에 담긴 볶음면과 구운 소세지 세 개를 백운빈관 근처 상점에서 25RMB에 사서 우물거렸다. 다음 배낭여행때는 빵보다는 육포나 소세지 덩어리를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빵은 급히 열량이 필요할 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게 눈 감추듯 드신 뒤에 근처 화장실에 들려 그곳에 구비된 온풍기로 젖은 옷가지를 잠시나마 말렸다. 배낭에는 방수포를 덮어서 괜찮겠지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끌러보니 깊숙히 짱박아 두었던 외투까지 다 젖어있었다. 만약 여분의 옷가지를 봉지에 넣어두지 않았더라면 하산 후에도 계속 척척한 옷을 입어야 했을 것이다. 온풍기의 바람과 볶음면과 소세지 덕분에 체온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자 서둘러 자광각을 향해 출발했다. 이 때가 토요일 오후 1시 쯤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주말의 황산에는 사람들이 가득찼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좁은 등산로에서 어울리지 않는 병목현상이라니. 아마 노동절 황금연휴에 황산에 왔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여기저기에서 볼멘소리가 들렸다. 춥고 배고프고 비바람에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출근 시간 시내 지하철 역에서처럼 서로 먼저 가려고 밀치고 아우성을 질러야 한다니 말이다. 반면에 황산의 절경을 충분히 즐겼던 나는 여행객들이 등산로를 가득 채워준 덕분에 체온을 유지하면서 하산을 할 수 있어 참으로 감사했다.


백운빈관에서 자광각 사이에 옥병루玉屏楼라는 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원래는 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생각이 아니었는데, 인파에 떠밀려 지도를 확인할 새 없이 여기에 도착하였다. 여기에 도착해서 겨우 지도를 확인하니 등산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까 내려온 가파른 비탈길을 다시 기어올라가야 했다. 악과 깡으로 다시 올라갈까 고민했는데, 그 길로 우회한다면 탕커우에서 황산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지 못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늦어도 5시까지 탕커우로 내려가야 하는데 시간은 벌써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7km를 악천후에 뚫고 피곤에 쩔어 제멋대로 노는 다리를 움켜잡고 주파한다는 것은 무리인 듯 싶었다. 그리고 다섯 시가 넘으면 200RMB 정도 하는 택시를 타야 하는데 당장 수중에 백 얼마 밖에 없는 것도 문제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서 다음에 다시 황산을 등반한다면 1박 2일이 아니라 2박 3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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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에 나온 황산 지도들 가운데 가장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편한 것이 바로 위의 지도이다. 황산에서 파는 지도들은 너무 화려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감을 못 잡게 만든다. 그러나 이 지도의 문제는 이해하기 편한 대신 거리를 오해하기 쉽다는 점에 있다. 물론 노선 위에 거리 표시가 되어 있지만 정신줄을 살짝 놓으면 예상 시간을 잘못 계산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며, 나도 1박 2일로 황산을 전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해버렸다. 돌이켜보면 아래처럼 2박 3일로 일정을 잡는다면 전체 황산을 도보로 둘러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흐리고 비오는 날이 대부분인 황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지 여부는 오로지 날씨에 달렸기 때문에 2박 3일로 일정을 잡아야 한 번이라도 일출이나 일몰을 감상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첫째 날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침 일찍 우하변의 운곡사云谷寺에서 출발해서 점심 쯤에 지도 중간의 백아령白鹅岭에 도착한 뒤, 백아령에서 우측의 시신봉始信峰을 일단 보고 돌아와서 북해빈관北海宾馆을 거쳐 북쪽의 사자봉狮子峰을 오른다. 사자봉에서 구름을 덮고 잠시 쉰 다음에 지도 중앙의 샛길을 따라 광명정光明顶을 거쳐 걷다보면 저녁 먹을 무렵 백운빈관白云宾馆에 도착하게 된다.


둘째 날은 서해대협곡을 둘러보면 될 것이다. 비록 배운루빈관排云楼宾馆도 서해대협곡 입구에 있지만, 광명정 아래의 백운빈관이 배운루빈관보다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기에는 더 적당하다. 게다가 배운루 빈관에 머문다고 해도 셋째 날 자광각紫光阁으로 하산시 백운빈관을 무조건 거쳐야 하는데, 백운빈관이 광명정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오르막을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날은 후들거리고 알이 배기기 시작한 다리를 끌고 천천히 내려오면 된다. 참고로 백운빈관에 들리면 안마 팜플렛을 나누어 준다. 가격이 백 얼마 RMB로 보통 안마 가격보다 두 배나 하지만 그래도 꼭 받자. 나도 평소에 헬스장 다녀면서 다리 운동도 하고 지하철 탈 때에도 일부러 에스컬레이터를 안 타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기 때문에 다리가 충분히 단련되었다고 믿어서 안마를 받지 않았었다. 그런데 황산 등반 둘째 날 오후부터 허벅지와 종아리 전체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으며, 남경에 돌아온 뒤 이틀 동안은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학교 근처 안마집에 가서 뭉친 근육을 푼 뒤에야 비로소 고통이 줄어들었다. 만약에 원래 2박 3일로 일정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다리가 풀려서 결국 케이블카를 탈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황산의 기암괴석들을 보면서 소주의 졸정원과 상해의 예원과 같은 정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아마도 이들 정원이 황산의 경치를 모방했을 가능성이 크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후로 중국사에서 장강 유역의 문화는 유목 민족의 터전이 되었던 황하 유역 보다 세련되기 시작하였고, 근대 이전 중국 고급 문화를 대표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경제가 가장 발달한 이 지역이 중국의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황산이 오악의 수좌를 차지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압도적인 경외감만 가지고 따지자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천산 만년설이나 둔황의 명사산과 월아천, 티벳과 연결된 청장고원, 맑은 봄날의 태산에서 볼 수 있는 황해의 수평선까지, 황산보다 나은 곳이 꽤 많다. 그러나 지리적인 한계때문에 근대 이전 문화와 유행을 선도하던 중국 지식인들이 가장 빈번하게 맛보고 즐길 수 있는 명승지들 가운데 최고는 아무래도 황산이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황산은 중국에서 제일가는 명승지로 남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강소, 절강 등 중국의 부유한 연해지역에 사는 중국인들도 위험하다는 이유때문에 신장이나 티벳으로 여행하기를 꺼리며, 그 쪽으로 여행을 가느니 차라리 해외로 떠날 뿐만 아니라, 주말에 콧바람을 쐰다면서 나들이를 가장한 행군을 다녀오기에는 황산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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