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 옛 영화가 사라진 도시
예전에 썼던 2006년 여름에 다녀온 여행기를 다시 올립니다.
황하는 중국 문명의 발상지이지만, 아직 여행지로는 관심을 덜 받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황하 유역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시간도 꽤 걸릴 뿐 아니라, 어느 정도 교통의 불편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문화, 중국사를 배우는 이들에게 황하 유역 여행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Day1 : 6월 30일
이빨 사이에 고기가 낀 것을 억지도 빼다가 송곳니에서 예전에 때운 것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서 아침에 치과에 다녀왔다. 여행 직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여행할 곳은 면과 고기의 고향인 산서山西가 아니던가. 액땜을 한 김에 점심 먹기 전 함 여행일정을 다시 점검하기 위해서 맛폰으로 남경南京-개봉開封 기차표를 검색했더니 세상에나 내일부터 며칠 동안 고속열차[高鐵]는 물론이거니와 침대차[硬臥]도 매진이고 낮시간은 좌석[硬座]도 매진인 사태가 터져버렸다. 중국 철도 노선도를 펼쳐놓고 보니 중국 한 가운데에 있는 남경-정주鄭州 노선은 사람이 바글바글할 만 하다고 생각하고 일단 무한으로 우회하기로 결정했다.
점심 먹고 무한에 도착하면 어디어디 돌아볼까를 검색하다가 다시 개봉가는 표를 검색해보니 저녁 8시 40분에 출발하는 표가 한 장 나와서 얼른 구매했다. 원래는 7월 1일 아침에 출발하려고 했지만 일정이 앞당겨져서 부랴부랴 짐을 쌌다. 여름 여행이기 때문에 반 팔 티 몇 장이랑 바람 막이 하나, 속옷만 챙기면 충분하기 때문에 짐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여덟 시 못 되어서 남경역에 도착해서 맛폰 앱에서 구매한 표를 창구에서 받은 뒤 시간이 되자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에 타자 초딩들이 학교 여행을 왔는지 각 기차 칸에 바글바글한 것을 보았다. 요놈들이 표 매진의 주범이었다. 침대차는 밤 열 시 부터 취침시간이라 소등하는데 역시 초글링답게 침대에 올라 자지 않고 시끌시끌 떠들기만 했다.
7월 1일
아침 6시 반 쯤에 도착할 예정인데 간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7시가 다 되어서 개봉역에 도착했다. 개봉역에 도착하자 소나기가 미친 듯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때 무한에도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나서 그쪽으로 우회했다가 며칠동안 꼼짝달싹 못 할 수도 있었다. 개봉역 개찰구를 나서자 수십대의 택시가 역전으로 나가는 길을 막으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개봉은 작은 도시라 버스대신 택시로 이동하려는 생각이 있었으므로 꼼수를 안 부리게 생긴 아주머니의 택시를 15위안에 타고 미리 예약했던 천복天福 유스호스텔로 이동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아직 정부의 인가가 나지 않아서 외국인을 받지 않는단다. 아쉬운 김에 리셉션에 비치된 개봉 여행 팜플렛을 하나 집어든 뒤 택시를 다시 잡아타고 두 번 째 후보지였던 고성古城 유스호스텔로 이동했다. 이 때 개봉 택시의 기본 요금은 5위안이고 대충 계산해보니 기차역에서 개봉시 중심까지 10원이면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바가지로 5위안 더 냈지만 택시 기본요금이 14원인 상해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생각했다.
빗줄기는 가늘어 지고 있었지만 고성 유스호스텔로 가는 길은 이미 침수되었다. 침수된 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택시 속에서, 혹시 택시 하부 엔진 속으로 물이 들어가서 도중에 멈추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살을 가르며 택시는 고성 유스호스텔 근처에 도착했지만, 유스호스텔 입구로 가는 길도 침수가 되어 버려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근처에서 아침을 때우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요거 두 개에 1.5위안 한다. 요탸오를 건져내는 이 가게 아들네미도 눈이 부리부리한 것도 잘 생겼고 등치도 장군감이다. 웬만하면 남자보고 탄성을 내지르지 않는데, 이번만큼은 구멍가게 아들로 태어난 그의 운명에 탄식을 뱉지 않을 수 없었다. 팔뚝만큼 큼지막한 막 튀겨내서 뜨거운 요탸오를 호호 불면서 콩국豆漿과 먹으니 어느새 침수되었던 유스호스텔로 가는 길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빠졌다. 생각보다 배수가 빨리되어 놀랐지만, 십 몇 분 소나기에 골목이 침수되는 것은 확실히 문제라고 생각했다.
배낭을 유스호스텔에 던져놓고 청명상하원清明上河園으로 발 길을 옮겼다. 유스호스텔이 개봉시의 서쪽 외곽에 있어서 그런지 버려진 건물들이 상당히 많았다. 뭔가 개발을 하려고 하는데 개발을 하다가 만 곳도 상당히 많았다.
원래는 청명상하원으로 갈려고 했지만 길을 잘못 들어 더 멀리에 있는 용정龍亭공원까지 와버렸다. 용정공원은 옛 북송의 황궁이 있던 자리이다. 근처 거리는 송나라 식으로 깃발을 걸어 광고를 때리는 점포로 가득했다.
70위안을 내고 들어가자 호수를 가르는 길이 있었고 길의 양 편은 화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문에 들어가니 용정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고색 창연한 건물 중간에 대송화조절大宋花朝節이라는 빛바랜 플라스틱 광고판이 뉘여져 있었다. 배경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촌스런 글자 폰트는 대개의 중국인들이 그렇듯 미적감각이 아직 높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좀 깔끔하게 유지보수를 하면 덧나냐는 생각이 뭉게뭉게 들었다.
북송 황제들의 옥좌가 있었다는 용정이 들어서자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절을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옛 황제의 옥좌가 복을 선사해준다고 굳게 믿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용정은 개봉사람들에게 신성하게만 여겨지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한가로이 산책할 수 있는 동네 공원과도 같은 곳에 더 가깝다. 돗자리를 깔고 수다를 떠는 중년 커플의 모습을 보라. 천 년 전에는 황제만 머무를 수 있던 신성한 장소가 지금은 보통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천 년 전 세계 제일 도시의 중심이 이렇게 쇠락한 모습을 보니 비록 문화재가 본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눈높이에 맞춰 전통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야시장에 설치된 활쏘기 장보다 약간 규모가 크지만 관리가 안 되어서 빛 바랜 입구의 붉은 나무 기둥이 여기가 과연 고대 아테네, 로마와 비견될 만큼 융성했던 도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용정공원에서 나와 저 유명한 포청천의 개봉부開封府와 대상국사大相國寺로 가기 위해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제의 궁전이 있었던 용정 공원과는 달리 개봉부는 단장이 잘 된 상태이다. 용정 공원에서 뜨문뜨문 보였던 단체 여행객들도 여기에서는 많이 눈에 띄었다. 개봉부는 지금으로 치면 시청으로 규모로만 따지면 용정 공원의 절반 밖에 되지 않지만, 명대에 세워진 자금성이 그 주변의 관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송 시대 황제와 신하들의 관계가 꽤나 수평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왕안석의 변법을 사마광 등이 반대한 까닭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 바로 황제 권력의 강화로 이어지는 첩경이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 날 넓은 개봉부를 한 시간 이상 돌아다니니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데다가 점심을 워낙 많이 먹어 걷다가 조는 사태가 벌어졌다. 건물의 처마 아래에서 기둥에 기대어 자다가 주변에서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뭐여 길바닥에서 자는 사람 처음 보나?"
라는 생각을 할 차에 조금 있다가 바로 앞에서 포청천 연극을 한다는 대화가 흘러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짧막한 연극이 상연되었다. 이 미친 더위에 저걸 입고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상국사는 중국에서 아주 오래된 절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절 한가운데 있는 고동색으로 바랜 향 피우는 탑과, 기원을 위해 걸어놓은 붉은색이 아직 선연한 띠들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뒷 편에 몇 층으로 증축된 누각은, 비록 새로 붉게 단장되었지만, 이 건물이 온갖 우여곡적을 겪어왔음을 짐작케했다. 낡은 누각들 안에는 있는 불상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천수관음이었다. 왜냐하면 여러 군데 답사를 다니면서 여러 천수관음들을 봐왔지만 이번 것 처럼 가능한 많은 팔을 불상에 붙인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정도로 공들인 천수관음이 빨간 칠이 다 벗겨진 불전에 모셔있다는 것도 참 특이했다. 저 건물이 정말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대상국사를 나오면서 주변에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잡화 도매시장도 있어서 여기가 과연 관광지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여기가 오랜 시 중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근처에서 야시장이 있다고 들어서 밤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걸음을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피곤해서 오후 네 시 쯤에 숙소로 돌아왔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속이 미식거리고 두통이 시작되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더위와 싸우고 피곤에 쩔은 데다가 과식까지 해서 탈 난 듯 했다. 한 다섯 시간동안 침대에서 자다 깨서 뒹굴다를 반복했다. 밤 10 시 경에 유스호스텔 도미토리로 누군가 들어왔다. 북경에서 출장왔다가 개봉으로 놀러온 IT 엔지니어였다. 근래 중국의 IT 업계, 특히 핸폰 앱이 많이 발전해서 근황을 물어보니, 이제는 많이들 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루저들 가운데는 대우가 나은 편이라고 했다. 한 두 마디 나누고 내일 아침 일찍 삼문협三門峽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침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