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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Dec 22. 2018

금의환향과 항우에게 씌여진 오해

여사면의 <진한사> 번역 프로젝트 

항우는 군사를 이끌로 서쪽으로 가서 함양을 도살하고, 항복한 진왕 자영을 죽였다. 진나라 궁실을 불태웠는데, 불이 3개월 동안 꺼지지 않았다. 또한 그곳에 있던 보화와 부녀를 거두어 동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어떤 이가 항우에게 말했다


“관중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사방이 요새인 지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땅도 비옥하기 때문에 도읍으로 정하신다면 천하를 제패하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항우는 진나라 궁궐이 모두 불타 재로 남은 것을 보고, 또한 마음 속으로도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다. 


“부귀해졌는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이를 알아주겠는가?”


항우를 설득했던 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에 관을 씌운 격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구나.”


항우가 이 말을 듣고, 그를 삶아버렸다. 그런데 이 일도 역시 나중에 갖다 붙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유방은 자신의 병력이 약해서 중원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관중에서 왕이 될 생각을 했다. 반면에 항우는 대대로 초나라 장수였고, 강동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어찌 초나라 사람의 도리를 따르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유방이 나중에 파촉巴蜀,한중漢中 지방의 봉지로 갔을 때, 휘하 군관들은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생각을 품었고, 이에 그들을 선봉으로 활용해서 천하를 다투었다. 그렇다면 만약에 항우가 이 때 다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중에 도읍을 정했다면, 초나라 군관들 가운데 돌아가고자 하고 싶은 이들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었을까. 설마 초나라 군관들을 버리고, 진나라 사람들과 함께 고립된 채로 머문다는 말인가? 진나라의 궁궐을 다 태우고, 그곳의 보화와 부녀를 거둔 일은, 당시의 군관 사졸이라면 당연하게 여겼던 것으로 이를 제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유방이 관중에서 왕이 되고자 하여 그 무리들을 통제해서 감히 잔폭한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 분봉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군관들도 다소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방이 한중으로 들어가자, 휘하 군관들은 동쪽으로 돌아갈 생각에 노래만 불렀다. 따라서 만약에 그들을 선봉으로 삼아서 동쪽을 향해 천하를 다투지 않았어도, 그들이 유방을 원망해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또한 원성이 가득한 반란군 무리들이 지나간 곳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파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유방이 팽성에 진입한 뒤 왜 보화와 미인들을 거두어 들이고, 매일 성대한 연회를 열었겠는가? 항우의 무리들이 아직 제나라 지방에 있으며,머지않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구원하러 돌아올 것임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따라서 역사를 이해한다는 자들이 한나라는 인자했고, 항우는 잔혹했다고들 하는데, 실상을 은폐하고 무함하는 말들이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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