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를 머금은 싸늘한 바람을 헤치며 태원행 기차를 타기 위해 베이징 서 역으로 들어갔다. 역 안은 인산인해였다. 어제 부터 태풍 때문에 많은 기차들이 연착되거나 취소되었기 때문에 원래라면 진작에 북경을 떠날 사람들이 오늘에야 기차를 타러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태원행 기차 검표가 시작되고, 얼렁뚱땅 새치기하는 사람, 앞 뒤로 밀치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나아갔다. 가까스로 기차에 타니 피곤이 몰려왔다. 눈을 감으려던 찰나...
"으앙~~~!!!!!"
"잠 좀 자라니까."
"엄마 나한테 자라고 하면 또 울거야~~~!!!!!!"
세 자리 앞에 앉은 대여섯살 먹은 남자 꼬맹이와 그 엄마가 두 시간 째 실갱이를 하고 있다. 돌도 안 지난 갓난아이도 아니고 자기 성질을 안 받아 주면 큰 소리로 떼를 쓰며 가짜로 운다. 목소리는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기차 안을 떠나갈 정도로 크다. 그런데 이 광경을 잘 보면, 엄마가 꼬마 남자애의 성질을 은근슬쩍 간간히 건드리는 걸 볼 수 있다.
"아니 애 색희가 안 잔다고 하는데 왜 자꾸 자라고 지랄이야..."
바로 앞에 앉은 아가씨가 투덜거렸다. 게다가 그 엄마가 조용히 하고 자라는 목소리와 손짓이 아이의 투정보다 더 클 때도 있었다. 기실 중국 대중교통을 타다보면, 가끔씩 아이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 앉은 엄마나 할머니가 물 마셔라, 똑바로 앉아라, 오늘 학교에서는 뭘 배웠냐 등등을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남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모에게서 훨씬 많이 볼 수 있다. 아마도 귀한 아들이나 손자를 봤다고 자랑하는 듯 하다. 주위 승객들의 찌뿌린 얼굴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다. 중국인들의 이기주의를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세 시간의 소음을 견디며 태원의 숙소에 도착했다. 삼십 분 정도 뒹굴둥굴 거린 뒤 씨트립 싸이트를 검색해보니 숙소 뒤에 유항柳巷이라는 옛 거리가 있다고 해서도 마실을 나갔다.
유항으로 가는 길에 산서반점이라는 으리으리한 호텔이 있었다. 이미 백 년이 넘은 문화재인데 아직도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신기했다. 호텔 오른편에 수위가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중국도 어느 정도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 교회는 남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여기 태원에서도 있다니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기독교의 중국화를 굳세게 밀고 나가자는 현수막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교회의 목사에게 중공의 지시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한지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까 참 궁금해졌다.
드디어 유항 거리에 도착했다. 구식 중국 브랜드 광고들이 걸려있는 건물들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지나다니는 것을 보니 보세 상품을 파는 동대문 시장이 연상되었다. 서울로 치면 재개발 되지 않은 옛 종로와 같은 구도심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요새 많은 중국 도시 구도심에서 재개발이 일어나는데, 아직 태원은 그 열풍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경만 하더라도 비록 구도심에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문을 닫은 점포가 한 두 군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을 진행하는 반면, 태원의 유항 거리는 사람이 터져나가도 아직 재개발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유항 거리에는 80년대 한국을 방불케하는 촌스러움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곳곳에 간간히 멋부린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파마도 한 중국 남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태원에는 상해처럼 골목마다 있는 스타벅스도 없지만, 젊은이들의 감각은 전혀 뒤쳐지지 않은 듯 했다. 그리고 이렇게 복작복작 대는 도로에 사람과 차가 엉키게 되면 중국에서는 으레 경적이 사방에서 울리지만, 태원에서는 다른 지방보다 그 소리를 비교적 적게 들을 수 있었다. 많은 보행자들이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 신호등을 무시하고 도로를 무단횡단해서 차가 움쩍달싹하지 못해도 경적을 누르는 운전자들은 소수였다. 북경같았으면 한 오 분은 계속 빵빵빵하는 소리가 들렸을텐데 말이다.
태원에서는 많은 사람이 길거리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항 거리 가기 직전에 어디선가 궂은 냄새가 나서 눈을 돌리니 취두부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취두부에 야채를 담아주는 건 처음 봤다. 마치 태국의 길거리에서 파는 소시지 구이에 야채를 담아주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된장 비슷한 소스에 아주 매운 고추를 넣어주는 것 까지 비슷했다.
길을 걷다 사람들이 뭔가를 사려고 줄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간판에는 夹心麻花라는 것을 판다고 했다. 麻花마화는 일종의 딱딱한 꽈배기의 일종인데, 여기에 소를 채웠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호기심이 동했다. 한국 돈으로 1500원어치 사서 맛을 보기로 했다. 아 이건 꽈배기가 아니라 최고급 도너츠였다. 반죽을 구운 뒤 한 번 튀겼는데, 한 번 씹으니 입안에서 아무 느끼함도 없이 사르르 녹았다. 작년에 무슨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애플 파이가 맛있다고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 부드러운 꽈배기의 발 끝도 미치지 못할 듯 했다. 판매대 뒷 편에 보이는 허름한 발효기와 튀김기는 역시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태원 사람들은 일과 후 산책을 즐긴다. 시내 안의 호젓한 호수는 태원 사람들에게 안온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상해, 항주 등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도시에서는 이젠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다. 비록 태원이 있는 산서성의 GDP가 중국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행복 지수는 상당히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