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 박물관, 진사, 그리고 소고기 칼국수
핑야오 고성을 뒤로 하고 다음에 들린 곳은 산서성山西省의 성도인 태원太原이다. 바로 운강석굴이 있는 대동大同으로 날아갈 수 있었지만, 산서성에 들렸으니 태원 근처의 명산 오대산五台山은 들려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원이라는 도시가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한 것은 전한시기부터이다. 전한 조정은 전국을 13 주로 나누었는데, 그 중의 하나인 병주并州의 치소가 바로 태원에 있었다. 위진남북조시기 북방민족이 중국을 침공하기 시작하였는데, 태원은 그들의 근거지로 활용되었다. 태원은 수나라때 이르러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큰 도시로 성장하였으며, 당나라를 세운 이연과 이세민도 이곳에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었다.
태원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산서성 박물관을 구경하러 왔다.
4층의 높이로 꽤 큰 규모를 자랑했다. 이거 다 돌아다니려면 다리가 후들거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산서성의 살아숨쉬는 역사를 둘러보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 혼잣말을 하며 발걸음을 뗐다.
그런데 1층 한 구석에 티벳 불교 미술 특별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려한 색채의 부처님(?) 자수품처럼 보이는 천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천 개의 팔을 휘두르는 대위덕 금강의 자수품이 걸려져 있었으며, 묘사된 신체 부위와 장신구에 대한 설명도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세계의 명화에는 공통적으로 절묘한 비유법이 적용된다는 것 정도는 대충 안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저 대위덕 금강이 비유하는 바가 그것들과 견주어 절대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것도 느꼈다. 불교 미술도 공부하면 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티벳 불교 미술에는 다양한 비유를 활용했을 뿐 아니라 수학을 이용해서 인물들의 역동적인 자세를 스케치하는 특징이 있었다. 정확함을 추구하는 수학의 원리를 활용한 원과 사각형, 그리고 삼각형들이 향연이 오히려 인물들의 머리 크기나 팔 길이 등을 과장시켰다는 역설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장된 표현도 수학적 원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어색하지가 않고 오히려 아름답게 보였다. 어쩌면 티벳 불교 미술가들에게 있어서 실제 인체 비례는 불완전한 것일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서성 박물관에는 소장된 여러 유물들 가운데 가장 동물을 본따 만든 제기들이 인상깊었다. 실감나는 표정뿐만 아니라 정교한 외부 장식은 당시의 높은 기술을 보여준다.
이건 사자死者의 얼굴을 장식했던 일종의 면구面具라고 할 수 있다. 사망한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관에 안치될 때 얼굴에 가면을 씌운 것처럼 먼 옛날 산서성을 지배했던 이들도 안장될 때 옥으로 장식되었다. 저 면구가 마치 주인의 관상을 따라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진다는 점은 참 재미있다. 윗 면구의 주인 눈썹은 위로 치켜올라갔으며, 눈은 부리부리한 반면, 아래 면구의 주인은 송충이 눈썹에 작은 눈, 큰 코와 두꺼운 입술, 그리고 구렛나루와 수염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물론 저 옥 면구들이 발굴 당시에는 무덤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을 것이고, 복원 과정에서 고고학자들의 상상력이 추가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말이다.
태원 박물관을 대충 훑어보고 교외에 있는 진사晉祠로 향했다. 진사는 후한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태원 사람들이 믿은 갖가지 신들이 합사되어 있는 곳이다.
아마 태원도 건조한 기후때문에 역사적으로 식수가 부족했던 것 같다. 진사 곳곳에 우물을 파고 무슨무슨 효험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흔적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물의 여신을 믿는 장소도 있다. 여신상을 덮은 붉은 천과 좌대를 덮은 노란 천이 깔끔한 것으로 봐서는 지금까지도 여기에서 현지인들이 복을 비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성모전과 묘예당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모두 여신을 모시고 있다. 부처님들이나 도교의 신들을 모신 다른 동네의 사당과는 확실히 차별된다. 예로부터 산서 사람들은 황사를 맞으며 거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와 정반대되는 온유한 여신의 이미지를 그리워 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진사에서 태원 시내로 돌아오는 이미 저녁이 되었다. 주위에 밥먹을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노점에서 파는 이 동네 특산인 소고기 칼국수를 먹었다.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훌륭했다. 물론 배고파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돈을 지불하고 칼국수 그릇을 넘겨 받는데 주인이 어디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하기사 태원이 비록 산서성의 성도이지만, 상해나 북경처럼 거리에 외국인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태원보다 서쪽에 있는 서안이 삼성 공장때문에 오히려 태원보다 한국인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어를 처음 배우는 이들은 태원으로 어학연수를 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태원 사투리도 중국 표준어와 별로 차이나지 않으며 태원 사람들도 비교적 점잖은 편에 속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