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의 무대가 비내리는 도쿄인 까닭에 관하여

by 화목란 바라기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6EIL4qJHYk


비가 계속 내린다. 길은 빗물로 가득찬 지 오래다. 신발을 새로 사도 고운 빛은 한 시간이면 얼룩이 진다. 언제부터인가 파란색이 아니라 회색이 하늘색이 되었다. 우울해진다. 우울이 깊어지면 맑고 푸른 하늘이 정말 보기 싫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다른 사람을 볼 때 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당장이라도 차도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분노가 치민다. 아무도 나의 심적인 고통에는 눈꼽만치의 동정도 표하지 않으면서,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노래를 부른다. 물론 나도 주위 사람들에게 우울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 하소연은 고슴도치 가시처럼 따갑기 때문에, 호소하면 할 수록, 타인들에게서 배척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날이 맑을수록 더 현저하게 드러난다. 아무래도 어두운 기운을 휘감은 허리가 굽은 채 돌아다니는 냄새나는 남자보다는, 푸른 하늘 아래 싱그럽게 빛나는 신록을 감상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독한 우울함에 시달리는 이들은 비가 오는 날을 더 좋아한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도 내가 느끼는 X같다는 것이 무언지 조금이라도 인식할 수 있으니까.


비가 그치지 않는 도쿄를 무대로 삼은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날씨의 아이>는 지독한 우울함을 겪어 본 사람이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남자 주인공 호타카는 시골 섬에서 동경으로 가출한 청소년이다. 작품의 서두에서 배를 타고 동경으로 오는 호타카는 몰려오는 적란운을 보고 흥분에서 갑판으로 뛰어 나온다. 그리고 바로 엄청난 양의 소나기를 맞고 미끌어져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한다. <날씨의 아이>의 세계에서는 날씨는 곧 사람들의 마음에 감응한 결과이기 때문에, 도쿄에 계속 내리는 비는 도쿄 시민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호타카가 도쿄 시민들의 우울함을 상징하는 소낙비를 맞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까닭은 그야말로 다른 누구들 보다 더욱 우울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된 비 때문에, 누구는 천식으로, 누구는 추모도, 누구는 운동회도, 누구는 불꽃 놀이도 즐기지 못해서 탄식을 내뱉지만, 호타카는 너무나도 행복한 얼굴을 한다. 설령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유흥업소 문가에서 졸다가 발로 차이며, 가출 청소년이기 때문에 알바를 구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계속 내리는 비는 백만장자도 내가 겪는 우울함의 일부를 맛보게 할 수 있다. 부자들에게 있어서, 영화 <조커>에서 쓰레기로 가득찬 고담 시티에서 사는 편이 비가 계속 오는 도쿄에서 머무는 편보다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돈만 있으면 쓰레기가 아무리 많아도 어딘가로 치울 수 있지만, 비는 멈추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인을 우울하게 해주는 빗줄기가 호타카로 하여금 도쿄에서 버틸 수 있는 기력을 주었지만, 수중에 돈이 부족해서 저녁은 패스트푸드 점에서 가장 싼 스프로 때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패스트푸드 알바인 여자 주인공 히나에게서 햄버거를 건네받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여자 주인공 히나는 기도를 통해 잠시 하늘을 맑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능력을 통해 맑은 하늘을 오랜만에 접하는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하지만 히나는 그 능력을 사용하면 할 수록 몸이 사라져가고, 결국 맑은 하늘과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불러오기 위한 제물이 된다. 그러나 호타카는 제물이 되어 하늘로 승천한 히나를 구하러 떠난다. 자신을 둘러싼 지독한 우울함의 장막을 처음으로 제거해 준 히나를 찾을 뿐 아니라, 그녀가 돌아와야 주위 사람들도 궂은 비로 인해 다시 나처럼 우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독한 우울함은 자살을 야기한다. 하지만 히나같은 맑은 하늘이 나에게도 비춰진다면 음울한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에도 히나와 같은 존재는 있을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게 히나는 그가 창작했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일지도 모른다. 신카이 마코토가 게임회사 팔콤에서 처음 애니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일을 마치고, 자정 부터 새벽 3시까지 작품을 만들고 3시간 잤다가 6시에 출근하는 미친 스케쥴을 5년 동안 소화했다고 한다. 이건 단지 근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폭풍우 속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정신적 생명이 살리기 위해서 신체를 혹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애니 제작이야말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게 히나처럼 맑은 하늘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어쩌면 빛을 극한으로 활용하는데 몰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 속의 우울함은 그의 초기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주인공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선사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이니까.


하지만 전작 <너의 이름은>은 처음으로 대중성을 추구해서 남녀 주인공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선물해준다. 이는 개인의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맑은 하늘을 불러왔던 히나가 훗날 도쿄 시민들의 불꽃 놀이 감상을 위해 기도한 것과 대비된다고 생각한다. 즉, <너의 이름은> 이전까지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작품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소수의 매니아 층만 애호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에서는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 빛과 색채의 향연을 파란 하늘을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와 버무려서 내놓았다. 대중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히나는 현세에서 승천해버렸다. 이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날씨의 아이>에서 자신의 현신인 호타카에게 승천한 히나를 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우울함을 다시 내리게 할 지라도 다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말이다.


<날씨의 아이>를 관람한 대중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연스럽게도 무의식적으로 찝찝함을 느꼈다. 이 작품을 관람한 네티즌들 가운데 상당수가 <날씨의 아이>가 <너의 이름은>보다 못하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이야기에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울함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감상한다면, 기승전결이 잘 갖춰진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호타카가 가출한 이유나, 히나의 가정 형편에 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빠지도록 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즉, <날씨의 아이>가 <너의 이름은>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대중들이 기대한 이야기를 뒤틀어 버려 엿을 먹였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조커>처럼 이건 우울한 현실을 그리는 영화라고 처음부터 광고를 했다면 실망이 더 적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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