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哪吒 - 마동강세魔童降世》감상기
https://www.youtube.com/watch?v=weANxzZDmTQ
스포가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중국사와 중국 문화는 바다와 같아 공부하면 할 수록 끝과 바닥이 어디인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영미, 유럽 문화의 산물들, 에컨대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 그리고 마블 유니버스 등의 수준을 보면 중국 문화 역시 보편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중공의 독재 때문에 문화적 역량이 제대로 발전하고 발휘되기 힘들 뿐이다. 왜냐하면 평범한 일상을 다룬 작품이라도 다 정치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중공이 탐탁치 않게 생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근래 중공 지도부의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 것까지 제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대군사사마의》같은 장르의 드라마도 역사적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으면 제작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번에 처갓집에 머물면서 처형과 조카들과 함께 이번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나타哪吒 - 마동강세魔童降世》를 보러 갔다. 일주일 사이에 20억 위안, 한국 돈으로 3500억원 정도를 돌파했다고 했다. 뭐 근래 개봉한 중국 영화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 라는 생각에 자의반 타의반 영화관으로 갔다. 그리고 중국 영화에 대한 편견이 산산조각 났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웅 영화 장르로서 《나타 - 마동강세》는 마블 유니버스급의 잠재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계의 대빵 원시천존은 혼원주混元珠라는 괴물을 제압하고 이를 영주靈珠와 마완魔丸으로 분리한 뒤, 임신한 여인에게 영주를 이식시켜 영웅으로 키워내고, 현재 진행되는 봉신전쟁의 강력한 원군으로 삼으려고 했으며, 이 임무는 태을진인에게 맡겨졌다. 그런데 태을진인은 같은 선인인 신공표의 계략에 넘어가 영주를 빼앗기고, 게다가 마완을 여인에게 이식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나타는 바로 이 마완의 화신이다. 타고난 신력을 지닌 나타는 마을을 항상 엉망으로 만든다. 노는 것이 인생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일곱 살이 악의 화신으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헐크의 힘을 가지게 되니, 온 마을 사람들은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나타의 얼굴을 보면 정말 약자를 능멸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는 외동으로 자라 소황제가 된 중국 아이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주인공 나타는 결국 정의를 수호하는 이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사람을 고쳐쓸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개심이란 정말 어렵고 복잡한 내적 갈등을 극복해야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이렇게 난해한 주제를 심도있게 고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각본가는 나타의 성격이 아~~~주 드러운 까닭은 괴물로 태어나 주변의 멸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원래는 선한 측면도 있었다는 식으로 밑밥을 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시천존은 마완에 3년 후 하늘에서 천뢰가 내려와 소멸시키는 저주를 걸었다. 뿐만 아니라 나타의 목에서 건곤권이 제거되면 제 정신을 잃고 폭주한다. 이는 마완이 순수한 악의 결정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비록 중국에서 나타 이야기는 주로 아이들이 즐기는 것이지만, 나타의 탄생에 담긴 비유는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 소재가 얼렁뚱땅 소비된 것이 너무 아쉬웠다. 각본가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뒀는데, 나타의 개심은 아버지가 천뢰의 저주를 대신 맞는 희생이라는 댓가를 치루고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한편 신공표가 훔친 영주는 용왕이 낳은 알에 이식되었고, 오병이라는 이름의 용으로 태어난다. 용족은 예전에 천계를 도와 지상의 요괴들을 격퇴하고 지하 무저갱에 가두는데 일조했었다. 그러나 용족 역시 요괴라는 이유로 포상은 커녕 지하 무저갱의 입구에서 사슬로 온 몸이 묶인 채 문지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 일에 대한 용족과 선계 그리고 인간들의 해석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용족들은 매우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무저갱을 탈출하기 위해 영주의 화신 오병을 양육하고, 그가 다 자라면 천계로 잠입시킬 계획을 세웠다. 오병은 영주의 화신답게 천성이 매우 선했으며, 동시에 용족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오병은 어느날 나타와 함께 물요괴를 격퇴한 뒤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나타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폭주하여 부모와 태을진인을 죽이려고 하자, 오병은 나타를 제어할 수 있는 보패 건곤권을 스승 신공표에게서 빼앗아 달려간다. 이에 신공표는 오병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타와 그의 부모, 그리고 스승, 네 명의 목숨이 중하냐, 아니면 마을 사람 전체의 목숨이 중하냐.”
오병은 결국 나타를 제어하는데 실패하고, 오히려 자신의 정체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통난다. 오병이 비록 개미 한 마리도 죽일 수 없는 착한 천성을 지녔지만, 용족의 대업을 위해서라면 아직 신분이 노출되지 않아야 했다. 이에 마을 사람 모두를 암매장 시키기로 결심한다. 즉, 오병이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오히려 비극을 초래하였다. 이는 윤리학에서 자주 다루는 화제이다. 어떤 행동의 도덕성을 결정하는 것은 의도인가? 아니면 결과인가? 오병처럼 지극히 선한 의도만을 가진 이가 자기 일족의 운명과 친구를 박해하는 마을 사람들의 목숨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어디 편을 들 것인가?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려는 오병에게 개심한 나타가 일기토를 신청한다.
그런데 나타는 목에 건곤권이 걸려서 신력이 반감된 상태이기 때문에 오병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이에 나타는 건곤권을 목에서 풀어 팔에 차고 신력을 회복하여 오병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천뢰가 하늘에서 내려와 나타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선의의 화신 오병은 친구 나타를 구하기 위해 용족의 보물인 만룡갑을 방패로 삼아 천뢰 속으로 뛰어들고, 태을진인까지 나서서 이를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이 와중에 나타는 지금 중국에서 널리 회자되는 명대사를 던진다.
“이 씨발 좃같은 운명. 내 운명은 나에게서 온 거지 하늘이 준 게 아니야. 악마가 되느냐 신선이 되느냐는 내가 말하는 대로 결정된다.”
나타는 하늘을 거부하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설사 악마라고 규정되더라도 말이다. 기실 이 인물 형상은 작금 중국에서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설사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스스로의 자유自由를 쟁취하기 위해서, 하늘과도 같은 중공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공은 나로 하여금 말 잘듣는 신선이 되라고 그것이 너의 운명이라고 교육하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며, 따라서 천뢰와 같은 엄격한 법의 집행에도 맞서 싸울 수도 있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중국의 무협 문학의 주제와 일치한다. 권력은 늘 부당하기 마련이며,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것은 개죽음이지만, 이를 알면서도 싸우는 자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예컨대 저 유명한 영화 <영웅본색>의 두 주인공 자호와 마크가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의리를 위해서 흑사회의 두목 아성에게 한 방 먹이려고 시도하고, 결국 비극을 맞이한다.
《나타 - 마동강세》의 쿠키 영상에서 후속작으로 《강자아姜子牙》가 내년에 상영된다고 하였다. 강자아는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주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희대의 모사이다. 은주 혁명은 맹자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제자백가들이 역성 혁명의 모델로 언급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즉, 《강자아》라는 작품은 정치 혁명이라는 주제를 다룰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중공은 이 작품이 어떻게 각색되기를 원할까. 아마 세계를 지배하는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정의로운 중국이 혁명을 일으킨다는 비유를 담아내는 식으로 대본을 쓰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정치 혁명이 정당성이 인민의 뇌리에 각인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예 제작을 취소시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홍콩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으로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 중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타 - 마동강세》는 중국 영화 매출의 신기원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중공도 제작 중단이라는 강수는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타 - 마동강세》의 감독은 원작에서 영주의 화신이었던 나타를 영화에서는 마완의 화신이라고 비틀었다. 어쩌면 이는 감독이 은연중에 스스로는 개김성이 충만함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년에 《강자아姜子牙》가 중공의 입맛대로 제작되어 상영된다고 하더라도, 아마 여기 저기 이를 비꼬는 암시들이 흩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족을 달면, 이 작품에 사용된 컴퓨터 그래픽와 특수 효과는 정말로 절륜하니, 아무 생각 없이 액션만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