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을 논한 김용 선생의 무협 세계

by 화목란 바라기

내가 중국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외할아버지 서가에 꽂혔던 영웅문 삼부작이었다. 다른 사촌들은 밖에서 뛰노는데, 난 새벽부터 밤까지 곰팡내 나는 페이지를 계속 들추다 얼굴이 퉁퉁 붓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영웅문 삼부작의 저자인 김용 선생이 타계하셨다고 한다. 이에 그 분의 무협 작품에 대해 간략한 감상을 풀어보고자 한다.


김용선생은 의리와 탐욕만 이야기하던 기존 무협 장르에 사랑이라는화두를던졌으며, 이와 동시에 능동적인 여성상을 그려냈다. 기실 무협 장르에서 이런 작품은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여성은 신체적 조건 때문에 피와 살육으로 점철된 강호에서 살아남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의 중세물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예컨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칼과 창을 들고 전장에서 싸우다 죽은 이는 예외없이 남성이다. 마찬가지로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덩치가 태산만큼 크거나, 흑마술을 쓰거나, 아니면 용을 부릴 줄 알아야 한다는 아주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일전에 한국에서 유행했었던 느와르 물에는 여성이 배제되기 때문에 배척되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폭력이 일상인 집단에서 억지로 여성 캐릭터를 집어 넣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김용 선생의 작품, 특히 한국에 번역되어 널리 알려진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여성 고유의 특성을 잘 발휘하는 무공을 닦아 살아남는다.


예컨대 <사조영웅전>의 여주인공 황용은 개방 비전인 타구봉법을 배워 개방 방주가 된다. 남성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항룡십팔장과는 달리 타구봉법은 오성과 기술, 속도만 갖추면 대성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도 배울 수 있다. 개방의 녹죽장 역시 가벼운 무기라 다루는데 제한이 없다. 또한 황용이 사회에서 가장 천시받는 이들인 거지들의 모임인 개방에서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의천도룡기>에서 아미파를 이끄는 멸절사태도 웅혼한 내력을 기반으로 한 검법으로 천하를 호령한다. 비록 그녀는 악역에 가까운 조연에 불과하지만 무협에서 여성도 내공을 닦으면 남성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소오강호>에서 남성성을 버리고 요새 말하는 트랜스젠더가 되어 무림의 최강자로 현현한 동방불패에서 정점을 달린다. <신조협려>에서도 절정곡주 공손지의 부인 구천척은 사지를 못쓰는 불구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후한 내력을 바탕으로 대추씨 뱉기라는 절기를 구사할 수 있다.


이렇게 김용의 작품에서는 여성들의 무공이 남성에 비해 약간의 손색만 있을 뿐이다. 무공 실력은 무림에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에, 여성도 고수이기만 하면 남성과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등한 관계는 사랑이라는 화두를 통해 더 깊게 탐구될 수 있다. 비록 무림이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운영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생태계 유지를 위해 예의범절이나 위계질서를 깐깐하게 따진다. 사제관계가 바로 대표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소용녀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관계도 박살내 버리고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양과는 정화情花, 즉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에 찔려 중독되어 감정을 끊어야 살아남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소용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애정을 버리지 않으며, 결국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버티고, 16년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해피엔딩을 맛보게 된다. 이런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이 가능하게 된 까닭에 대해 김용 선생은 어렸을 적 고아로 떠돌아다니다 외로움에 지친 양과가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온기를 느끼게 된 곳이 소용녀가 살고 있었던 한기로 가득찬 활사인묘活死人墓, 즉 사람이 죽은 채 살아가는 묘지였기 때문이라고 작품 속에서 언급한다. 요컨대 김용 선생의 눈에도 이들의 사랑은 욕망이 들끊는 평범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었으며, 작중에서 저런 평범한 애정 관계는 모두 파탄에 이르게 된다.


예컨대 적련선자 이막수李莫愁는 육전원과 사랑을 나누다 버림받아 맘에 안들면 당장 죽여버리는 마두로 변한다.


“세간에 묻노니 정이 무엇이길래 생사를 함께 하도록 하는가.”


이막수의 저 명대사는 그녀의 이름과 대비된다. 이막수李莫愁의 李는 이별하다의 离와 같은 발음이다. 따라서 이막수라는 이름은离莫愁로도 읽히며, 이는 정을 버리면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근심 걱정을 버리는 이”라고 불렀지만, 정작 이막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불타는 정화 밭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비록 그녀가 어렸을 적 모든 욕망을 버려야 대성할 수 있는 옥녀심경의 일부를 연마했어도, 욕망을 끊는데 실패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막수 뿐만이 아니라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욕망을 자제하지 못해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왕년에 이를 자제하도록 훈육되었다는 것이다. 소용녀에게 반해 그녀를 강간한 윤지평은 전진교 도사이고, 절정곡주 공손지는 마누라 구천척을 버리고 소용녀를 탐하려다 식욕을 상징하는 피가 담긴 차를 마시고 무공이 전폐된다. 근래 진보적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이성異性을 욕망의 대상으로만 보지말자고 하면서, 적절한 훈육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신조협려>에서 그리는 조연들의 치정으로 인한 비극들에 의해 반박된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양과가 진정한 사랑의 화신으로 승화된다.


근대의 세례를 받은 약간의 선진 사회가 전통 사회보다는 폭력이 아닌 법과 도덕으로 지탱된다는 점에서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는다. 거꾸로 말해서 세상의 대부분은 폭력으로 운영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폭력이 일상화 된 사회에서는 약자들의 외침은 등불로 날아드는 모기의 비명과도 마찬가지이다. 기존 무협 장르의 의의는 이들의 외침을 대변하는 것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용 선생은 이 한계를 넘어서 사회가 약육강식의 원리로 작동하는 근원인 욕망을, 그 작동 방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소재인 사랑을 통해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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