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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Mar 14. 2020

중국인들이 서역에 언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까?

여사면의 <진한사> 번역 프로젝트 

    사람들의 이민은 국가가 땅을 개척하기 이전에 이미 일어나는 법이다. 한나라 때 서역과 서남이西南夷에 대해 알려지기 전에도, 이미 베틀후추와 대나무 지팡이가 먼 그 땅까지 전파되었으니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 때 천산남로天山南路(오늘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타클라마칸 사막)에 많은 중국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어디서 가져다 붙힌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훗날, 호족胡族 계통의 사람들이 날로 강성해지고, 한족漢族이 점차 쇠약해져서,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이민자의 많고 적음에 차이가 생겼다. 마치 조선의 땅에 한나라 때 이후부터 맥족貉族이 많아졌던 것과 같다. 그러나 전한 말 사람 양웅楊雄이 지은『방언方言』에서 기록된 것처럼 북연北燕과 조선朝鮮 사이의 지역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모두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후한서』「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 언급한 진한辰韓의 언어가 진秦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는 거짓말일 것이다. 


    『위서魏書』「서역우전전西域于闐傳」에서는 "고창高昌에서 서쪽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눈이 깊고 코가 높다. 그런데 이 나라만 외모가 전혀 호족 계통이 아니라 오히려 한족과 유사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도 우전의 말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고 되어 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이 우전, 즉 오늘날 호탄의 케리아인克里雅人을 가리켜 체격이 황인종과 비슷하다고 한다. 또한 그 땅에서 발굴해서 획득한 코끼리 형태의 도기나 조각, 벽화등에서도 얼굴과 모습이 황인종과 비슷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옛 책에서도 그 사람들이 인도, 이란, 투르크어를 사용하지 않고, 티벳어와 비슷한 말을 썼다고 하니, 그들이 티벳에서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 때 이미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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