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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Nov 19. 2019

중국인의 중화사상에 균열을 일으키기

어느날 마누라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과 한국은 한 가족이었어."

"한국인 앞에서 그런 말 하지마."

“왜?" 

"욕 먹기 싫으면 하지마………”

“왜 욕 먹는데?????”

“…………….."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어디 외국에 여행 간 적이 있었는데, 현지인이 나 보고 중국인 아니냐고 해서 난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페북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 한국어를 가르쳤었던 중국 학생이 발끈해서 나한테 답글을 남겼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게 부끄럽나요?”

“…….”


위 사례들은 중국인들이 스스로가 중국인임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주변 국가 사람들도 중국인으로 되고 싶어할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인들의 중공에 대한 충성은 중공이 세상을 선도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중공이 세계의 정의와 평화에 이바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중공, 친홍콩 시위가 단지 서양의 선동에 넘어간 일부가 저지른 오류라고 믿고 있다. 혹은 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홍콩 지지 글타래들을 가리켜 우리를 질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새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 대학에서 홍콩 지지 대자보를 훼손하는 일이 문제가 되었는데, 그들은 잘못을 제거한 일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인들이 언론의 자유 같은 민주적 절차에 둔감한 까닭이 중공의 권위주의에 충성하도록 세뇌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에서 보이는 많은 중국인들은 서양에서 이야기하는 인권과 민주주의란 위선에 불과하다고 손가락질 한다. 따라서 중국인들에게 아무리 민주적 절차를 설파해도 들어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중화사상은 그들의 세계관을 허무는 방아쇠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올해 초 마누라 친구들과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역시나 외국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 나한테 중국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봤다. 


“나는 중국이 좋은데, 그런데, 근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중국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


“??????”


“내가 대학 막 입학했을 때는 중문과가 경쟁률 선두를 다투었는데, 지금은 거의 꼴찌야.”


“!!!!!!!!!!!!”


그 자리에 있는 마누라 친구들의 눈이 놀란 토끼의 것처럼 변했다. 한국인들이 중국 문화를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옛날 홍콩 영화, 패왕별희 등이 한국을 풍미한 적이 있었고, 나도 김용의 무협지를 밤새 읽고 중국사 공부를 선택했지. 하지만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김용의 무협지를 읽느니 차라리 어벤져스를 볼 걸.”


좌중이 숙연해졌다. 이 참에 한 번 더 쐐기를 박아버렸다. 


“나도 후진타오까지는 중국 드라마 아주 재미있게 봤어. 남인방같은 거 말이지. 그런데 지금은 너희들도 알다시피 무슨 중일전쟁 관련 드라마만 주구창창 나오잖아?”


침묵이 흘렀다. 시진핑이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중국을 제대로 지도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 했다. 아무리 중국 자본이 할리우드에 유입되어 중국 입맛에 맞는 작품이 나오더라도, 중국 시장이 워낙 커서 중국인의 비위를 맞추는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고 하더라도,중국 스스로가 문화를 생산할 능력이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이제는 중국에서 정말 괜찮은 영화가 등장해도, “중국산”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화제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컨대 지난 여름에 중국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나타>는 디즈니 애니의 평균적인 수준을 월등히 상회하는데도, 한국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중국산 맛폰 AOS 게임인 왕자영요는 수려한 캐릭터들과 탁월한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에서는 조롱받기 일쑤이다. 반면에 서양의 문화상품은 중국인들이 여전히 애호한다. 뿐만 아니라 비록 한한령으로 제한이 걸렸어도, 한국의 문화 상품들은 중국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권위주의 정부를 신봉하는 이상, 비록 중국에 넘쳐나는 문화 잠재력이 있지만, 세계인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한다면, 중국인들의 중화주의적 세계관에 조금이나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 사람들이 중공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까닭 가운데 하나가, 작금 중국의 문화 창작자들이 권위주의 정부의 족쇄에 묶여 전 지구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아무도 중국의 문화에 감명받아서 중국인으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당나라는 개방적인 제국이었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이 우러러보는 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어. 그런데 지금 중공은 어떻지? 시진핑의 영도 아래서 중화의 꽃은 다시는 피지 않을지도 몰라. 한국도 차라리 중국과 한 가족이 되느니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길을 선택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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