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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Apr 09. 2020

한문 번역 사례 : <사기-조선열전>의 엉터리 한문

아침에 여사면의 <진한사> 번역을 위해 <사기-조선열전>을 읽다가 불현듯 십 몇 년 전에 한문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할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사기-조선열전>을 읽으면서 아 한문이 정말 어렵구나.. 라고 느꼈었는데, 지금 보니, 문장이 구려서 그랬던 것을 깨달았다. 즉, 고조선쪽에서 사용한 Broken Ancient Chinese를 사마천이 고대로 베껴썼다는 냄새가 지독히 난다. 예컨대


“(衛滿)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障.”


이 문장은 아주 단순하게 이렇게 풀 수 있다.  


“위만이 패수를 건넜다. 머물렀다. 진나라의 옛 빈 땅, 위 아래, 작은 성곽.”


즉 위만이 패수를 건넌 것을 알겠고, 진나라의 옛 빈 땅 어딘가에서 머무른 것 까지도 추측하겠는데, 그 뒤의 위, 아래, 작은 성곽은 당최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아리송했다. 이에 머리가 아파 롤토체스 모바일을 두둥등장 한 판 때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_tKd9Vcky14 1등 하다가 막판에 5등으로 추락한 아쉬움에 한 판 더 할까 맛폰을 보다가, 3성 다리우스의 딜탱 능력에 의문을 가지다가, 다시 슬쩍 눈알을 굴려 원문을 보니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위만이 패수를 건너, 진나라가 차지했었던 지금은 빈 땅의 위 아래 경계에 설치된 작은 성곽에서 머물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번역이 되었을까? 그리고 왜 처음에는 해석이 잘 안 되었을까? 이에 함 영어와 한국어로 원문을 직역해봤다.


“(Wei Man) Stayed at a barricade up down old empty space Qin”


“(Wei Man) Stayed at a barricade of up and down of old empty space of Qin”


“위만은 진나라의 옛 빈 땅의 위 아래의 작은 성곽에서 머물렀다.”


첫 번 째 문장은 원문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것이고, 두 번 째 문장은 “of”를 써서 각 단어의 관계를 명확하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두 번 째 문장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어로 고쳤다. 즉, “of” 혹은 “의”를 써서 단어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한 뒤에야 비로소 번역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상기 <사기-조선열전>의 원문은 이렇게 되어야 보다 고대 중국어 문법에 맞을 것이다.


“(衛滿)渡浿水,居秦故空地之上下之障.”


그러나 고대 중국어에서 “~의”라는 뜻의 “之”라는 단어를 저렇게 중복되어 쓰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오늘날도 “의”나 “of”를 남발한 문장을 대략 좋지 못하다고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사기-조선열전> 의 원문은 어떻게 수정해야 예쁠까?


“(衛滿)渡浿水, 居秦故空地南北界之障”


자뻑이지만, 고조선 사람들의 고대 중국어 작문보다 더 깔끔한 것 같다. 따라서 만약에 박사를 따고 한국 대학에서 사료 강독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에게 돌을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마 한국 관련 사료는 일단 제껴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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