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목란 바라기 Apr 09. 2020

한문 번역 사례 : <사기-조선열전>의 엉터리 한문

아침에 여사면의 <진한사> 번역을 위해 <사기-조선열전>을 읽다가 불현듯 십 몇 년 전에 한문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할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사기-조선열전>을 읽으면서 아 한문이 정말 어렵구나.. 라고 느꼈었는데, 지금 보니, 문장이 구려서 그랬던 것을 깨달았다. 즉, 고조선쪽에서 사용한 Broken Ancient Chinese를 사마천이 고대로 베껴썼다는 냄새가 지독히 난다. 예컨대


“(衛滿)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障.”


이 문장은 아주 단순하게 이렇게 풀 수 있다.  


“위만이 패수를 건넜다. 머물렀다. 진나라의 옛 빈 땅, 위 아래, 작은 성곽.”


즉 위만이 패수를 건넌 것을 알겠고, 진나라의 옛 빈 땅 어딘가에서 머무른 것 까지도 추측하겠는데, 그 뒤의 위, 아래, 작은 성곽은 당최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아리송했다. 이에 머리가 아파 롤토체스 모바일을 두둥등장 한 판 때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_tKd9Vcky14 1등 하다가 막판에 5등으로 추락한 아쉬움에 한 판 더 할까 맛폰을 보다가, 3성 다리우스의 딜탱 능력에 의문을 가지다가, 다시 슬쩍 눈알을 굴려 원문을 보니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위만이 패수를 건너, 진나라가 차지했었던 지금은 빈 땅의 위 아래 경계에 설치된 작은 성곽에서 머물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번역이 되었을까? 그리고 왜 처음에는 해석이 잘 안 되었을까? 이에 함 영어와 한국어로 원문을 직역해봤다.


“(Wei Man) Stayed at a barricade up down old empty space Qin”


“(Wei Man) Stayed at a barricade of up and down of old empty space of Qin”


“위만은 진나라의 옛 빈 땅의 위 아래의 작은 성곽에서 머물렀다.”


첫 번 째 문장은 원문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것이고, 두 번 째 문장은 “of”를 써서 각 단어의 관계를 명확하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두 번 째 문장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어로 고쳤다. 즉, “of” 혹은 “의”를 써서 단어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한 뒤에야 비로소 번역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상기 <사기-조선열전>의 원문은 이렇게 되어야 보다 고대 중국어 문법에 맞을 것이다.


“(衛滿)渡浿水,居秦故空地之上下之障.”


그러나 고대 중국어에서 “~의”라는 뜻의 “之”라는 단어를 저렇게 중복되어 쓰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오늘날도 “의”나 “of”를 남발한 문장을 대략 좋지 못하다고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사기-조선열전> 의 원문은 어떻게 수정해야 예쁠까?


“(衛滿)渡浿水, 居秦故空地南北界之障”


자뻑이지만, 고조선 사람들의 고대 중국어 작문보다 더 깔끔한 것 같다. 따라서 만약에 박사를 따고 한국 대학에서 사료 강독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에게 돌을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마 한국 관련 사료는 일단 제껴둘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인들이 서역에 언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