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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Mar 29. 2023

사회에 이로운 수치심과 파괴적 수치심

마약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적절한 수준의 죄책감이나 수치심은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마약문제도 마찬가지인데요. 마약을 한 당사자를 아무런 사회적 비판 없이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개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사회의 마약 사용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수치심을 줄 필요 또한 없습니다.


<도파민 네이션>의 저자이자 스탠포드의 중독 정신과 전문의인 아나 렘키 교수는 수치심을 "사회에 이로운 수치심(prosocial shame)"과 "파괴적인 수치심(destructive shame)"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사회에 이로운 수치심이란, 대상자가 되는 개인을 비판하되 공감적인 태도로 수용(acceptance)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다음 단계를 제시해 주는 겁니다. 마약 문제가 생긴 경우에는 사회적 비판과 법적 처벌 이후, 중독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죠. 결과적으로 그 개인은 치료와 재활을 통해 마약 사용을 줄이고 공동체에 계속 속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파괴적 수치심이란, 비난만 하고 당사자를 사회에서 밀어내는 것입니다. 이 경우, 개인은 치료를 받지도, 다시 사회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결과적으로 마약 사용은 늘어만 갑니다.


유명인들의 마약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또한 파괴적인 수치심보다는 사회친화적인 수치심의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마약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치료와 재활의 선택지를 주지 않으면,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음지에 숨어, 결국 우리 사회의 마약 문제는 악화될 것입니다.

입장을 발표하는 유아인 (출처:연합뉴스)

비단 마약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유명인으로 사는 게 정말 고단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잘 나갈 때에 특정인에 관심을 보이고 우상시하는 정도도 지나치지만, 그 사람이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논란이 생겼을 때, 사회에 이로운 수치심보다는 파괴적인 수치심을 주는 방향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유아인 씨가 포토라인에 서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분명 묵비권을 행사하고 지나가는 게 본인에게 훨씬 쉬운 선택지였을 겁니다. 저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사과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양지차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정신과를 찾아온 환자들도, 자기 성찰(self-reflection)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예후가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중독 정신과 전문의로서, 유아인씨 뿐 아니라 마약에 중독된 환자들이 제대로 된 중독 치료와 재활을 통해 다시 사회로 돌아오길 바라는 입장입니다. 미국의 많은 연예인들이 본인 혹은 가족의 중독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는데요.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본보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마약 중독이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마약에 중독되었던 사람이 제대로 치료를 받은 후에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되어주길, 중독 정신과 전문의로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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