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기사를 번역합니다. 미국 내에 환자 본인들의 이야기를 실음으로써, 질병에 대한 낙인을 해소하는 사이트 The Mighty (themighty.com)의 기사입니다. 원문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꺼내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인생에는 딱 두 번, 제 삶이 자살로 끝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첫 번째는 10대 초반이었고, 두 번째는 20대였어요.
물론 두 번 모두 삶이 조금은 힘들어졌을 때긴 했지만, 정확히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잘 몰랐어요.
왜?
라고 스스로 물었을 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답은 한 가지뿐이었어요. 그저, 그 일이 (자살이) 잘 못된 일이라기보다는 정답에 가까워 보였고, 내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았어요.
그 당시 저는 딱히 슬프지도 않았어요. 주변에 누군가를 잃은 것도 아니었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폭력을 당한 것도 아니었죠. 주변에 누군가가 불치병에 걸린 것도 아니었어요. 경제적 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구요. 저는 멀쩡한 직업이 있었고, 실연을 당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당시 극도의 외로움, 심연의 고독을 느끼곤 했어요. 제가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것은, 삶이 저에 대해 아무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믿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평생 찾지 못할 것 같았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고, 혹여 찾더라도, 제가 그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삶은 고독한 고통으로 가득 찼어요. 저는 스스로를 고립시켰어요. 마치 어릴 때, 집에서 안 좋은 일들이 있었을 때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처럼요. 칠흑과 같은 어둠이 저의 낮과 밤을 지배했고, 마치 추운 겨울처럼 수개월씩 지속되곤 했지요.
한 추운 2월의 어느 아침, 저는 유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저는 거기에 정확히 어떤 내용을 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첫 번째로, 저는 저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삶에 대해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에 대해 썼어요. 나의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내가 해냈던 많은 일들과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요. 저는 저에게 기쁨을 주었던 추억들에 대해서 적었어요. 제가 예의 바르고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남자로 자랄 수 있도록 저에게 주어졌던, 믿을 수 없는 삶의 경험들에 대해서요.
하지만 그 유서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되었어요:
저는 당신이 제가 매우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너무나, 지독하게 외롭다는 것도요.
저는 제가 자라면서 겪은 역경과 그로 인한 고통을 떠올렸어요. 저는 14살 때부터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았어요. 하지만 대학에 가면서부터 약을 끊었죠. 저희 가족에는 정신 건강 문제가 있음을 알았지만, 저는 혹시 제 문제들이 진짜 질병이 아닌, 그저 "생각들"일뿐이 아닐까 의심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억제되었던 불안들은 저의 자존감을 약하게 만들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었어요.
저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고, 살아남았어요.
저는 그 후 수년간 스스로를 무척이나 채찍질했어요. 다시 약물을 먹기 시작했고, 심리 치료를 통해 제 머릿속의 악마들을 마주했지요. 우정, 약물, 그리고 기도와 함께하는 동안, 저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를 위해 기다려주었던, 완전히 새로운 삶의 챕터를 발견했지요.
저는 그동안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행히도, 수년 동안 그와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때, 그 자리에, 무언가가 고장 난 것처럼, 그리고 속이 텅 빈 것처럼 앉아있던 기분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아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재단하고, 저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를요. 그리고 저는 그때 어떤 말들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고,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 배웠어요:
저에게 제가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것은 오직 제가 정상과 더 멀리 떨어져 있게끔 느끼게 만들었죠.
저에게 지시를 하거나 조언을 하는 것 또한 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제가 스스로를 위해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추측하는 것은, 제가 오히려, 그렇다면 내 손으로 더 끔찍한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곤 했지요.
저를 위해 울어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저에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것도요. 두 행동 모두 저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고, 더욱 강렬한 고통을 줄 뿐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죄책감을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는다고도 해요. 하지만 저는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가 더더욱 다른 사람의 짐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 당시의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딱 하나였어요. 저는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 당시 아버지와 10년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던 때였죠. 하지만 제가 힘들어한단 사실이 아버지의 귀에도 전해지게 되었고,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는 스스로의 삶에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알코올로 떠나보내야 했을 때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죠. 사업이 기울고, 그가 경험해야 했던 고립과 수치심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줬고요.
아버지의 이야기들에 저는 공감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저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어요. 그는 울지도, 저를 재단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저의 문제들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아버지가 저에게 해준 말을 잊지 못해요. 그 말들은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어요:
내 아들아, 너는 언제든 혼자가 아니야. 내가 항상 여기 네 옆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만큼, 언제 까지든 그렇게 함께 있을 거야. 우리한테 지금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뿐이야.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아버지의 말은, 나를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랑에 가득 찬 말이었어요. 저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구요. 아버지는 실제로 내 옆에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전화 통화로 한 말일뿐이었는데도, 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그렇게 제가 한 20분 동안 우는 것을 조용히 듣기만 했어요. 그리곤 말했어요:
그게 언제든지, 네가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우리 함께 일어서서 다시 삶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함께 찾아보자. 알았지?
수년 이 지나, 저는 더 강해졌고, 지혜를 얻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낄 때, 저는 그들의 눈빛에서 고독을 감지할 수 있어요. 누구든지 사실 다 느낄 수 있지요. 그건 그 사람이 혼자인 것처럼 느끼고 싶지 않다는 신호예요.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은, 그 사람을 나의 기준으로 재단하거나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연민하는 것도 아니구요. 타인에게 부담이 된다거나 죄책감을 느낄 거라고 추측하지도 않아요. 동행이란, 우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에요. 동행은 그저, 함께 있는 것이에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던 사람들도 서로에게 속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그날로부터, 저는 스스로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어요.
자살이 항상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에요. 우울한 사람들이 꼭 자살로 죽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감정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어요.
만약 당신, 또는 당신이 아는 사람이 스스로를 해치려고 하거나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한다면 – 부디 함께 있어주세요.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우리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해요. 우리는 당신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필요해요. 우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법도 배워야하구요.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는 느끼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여기에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