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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승호 Jun 27. 2024

<사랑은 비를 딛고>

사랑에세이

지금이니!


그놈의 지금이 뭘까요.


가을과 겨울의 찰나, 그 잠깐을 기어코 비집어 들어가 얇은 코트 한 번 걸쳐보겠다는 일념으로 집중하는 바로 그 순간일까요?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아포리즘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1년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제철 음식을 제때 챙겨 먹는 것이다”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저렇게 이야기했을까요? 물론, 그가 살던 시절에는 제철이 지나면 음식의 맛이 변화하는 정도도 심하고 농사를 짓는 기술이 덜 발달되었으니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문장을 살짝 흐린 눈으로 본다면 요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이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해라”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 음식이든, 놀이이든 결국에 어떤 행위는 항상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은 틀린 법이 없어요. 이렇게 어르신들이 또 1승을 적립하고 갑니다.


저는 밤산책을 좋아합니다. 특히, 봄에 하는 밤산책을 좋아하는데 그것도 옛말이에요. 요즘은 날씨가 워낙 오락가락해서 봄에 하는 밤산책이 봄 같지가 않더라구요. 제가 딱 좋아하는 밤산책의 온도는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27일 저녁 밤, 지금입니다. 걸을 때 아슬아슬하게 덥지 않은 정도, 거기에 바람이 살살 불어 잠을 깨울 정도의 찬기에 몸을 담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대기의 감각, 적당하게 사람이 없어 길에서 팔자로 걸으며 흥얼거려도 아무 지장이 없는 은근한 자유. 밤산책이 주는 이런 즐거움을 시원함에 빗대보면 어떨까요? 미국의 음식평론가 피트 웰스는 ‘시원한 맛’이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가볍고, 아주 조심스럽게 균형이 잡혀있는 식사를 한 뒤에 느끼는 웰빙의 즐거움”


이걸 살짝 변용한다면, 가볍고, 아주 조심스럽게 균형이 잡혀있는 활동을 한 뒤에 느끼는 웰빙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밤산책에 있어서 적절한 설명 같지 않나요? 때로는 우리의 말을 재해석한 외인들의 설명이 더 적확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현듯 하게 다가오는 이 느낌, 낯설지만 싫지는 않네요.


여러분들에게 소중한 찰나의 순간들은 어떤 게 있으신가요? 제게는 이렇게 소중한 찰나의 타이밍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에서 진 켈 리가 연기한 주인공 록우드는 사랑을 성공적으로 고백한 뒤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를 맞으며 뮤지컬 영화사에 기록된 명곡 ‘Singing in the rain’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밖에 나가서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고 싶은 감흥에 휩싸이기도 하는데요. 저는 훨씬 어린 시절에 취미로(?) 비를 맞곤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도서관이나 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갈 때면 보통 10~11시쯤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공부하다 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요. 내가 가장 못하는 과목을 할 때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그 순간! 하루는 함수를 처음 공부할 때, 야자 시간 중에 2시간을 3쪽을 이해하는 데 쓰느라 정신력은 정신력대로 사용하고 짜증은 짜증대로 났던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11시에 집에 가는 길에는 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친구들한테 짜증을 낼 수도 없고, 집에 가면 부모님은 자고 있고.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들어가서 슥슥 씻고 사부작거리면서 자는 게 전부라는 거죠.


하루는 야자를 하고 있는데 비가 엄청 오는 거예요. 팡팡, 시원하게 시멘트 바닥에 꽂히는 빗줄기는 제가 학교를 나설 때까지도 전혀 줄어들지가 않았어요. 그리고 그날따라 이상하게 우산을 쓰고 싶지가 않더라구요. 뭔가 저건 맞아야겠다는 직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우산을 오른손에 들고 빗줄기 속으로 쓱 들어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지끈지끈했던 머리가 빗속에서 차갑게 식혀지고, 온몸 곳곳을 찔러대는 빗줄기에 몇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 그리고 몸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함축하는 은유, 모든 게 씻겨나가는 느낌, 내가 깨끗해지는 느낌. 그런 감각이 좋았던 거 같아요. 그때 이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가끔 비를 맞기도 했어요. 또 비가 올 때 우산을 써야 한다는 건 뭔가 어른들이 부여한 도덕 법칙 같잖아요? 그런 걸 야밤에 보는 어른들이 없는 상황에서 대뜸 어겨버리는 일종의 일탈. 이것도 상당히 즐거운 감각이었죠.


그러고 보면, 이런 ‘지금이니!’의 순간들은 대부분 우연히 찾아오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글이나 말로 설명하는 감각들은 대부분 논리에 기반하는 것이지만 결국에 그 설명이 존재하려면 어떤 순간의 감동과 감각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 밤산책과 비를 맞는 순간은 제 사랑의 기억과도 연결된답니다.


때는 바야흐로 사랑이 시작되기 전날 저녁. 그녀와 고깃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칵테일 바를 들어갔어요. 제가 단골로 가던 클래식 바인데, 전체적으로 조금씩 울퉁불퉁하고 갈라진 목재들 위에 니스칠을 해서 매끈하면서 투박한 바 테이블, 노랑과 주황의 사이쯤을 지나는 조명이 주는 잔잔함이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바였어요. 특히, 이 바는 시끄럽지가 않아서 좋았는데, 가끔 재미있는 손님이 오면 단체로 데낄라를 한 잔씩 쏘는 일도 있어서 그런 상황을 또 암묵적으로 기다리게 하는 맛도 있었죠.


어쨌든, 그날 저희는 ㄱ자로 된 바 테이블의 꼭짓점 부분에 ㄱ자로 앉았어요. ㄱ자로 앉는 건 장점이 많은데요. 1대1로 맞대고 앉으면 뭔가 너무 본격적인 느낌을 주잖아요. 반대로, 바로 옆에 나란히 앉으면 상대의 얼굴을 보기가 힘드니까 아쉽단 말이죠. 이럴 때, ㄱ자로 앉으면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민망할 때는 앞을 볼 수도 있으니까 이만한 게 없는 거죠. 그렇게 앉아서 칵테일을 주문하는데 저는 그날도 제가 좋아하던 ‘카타르시스’를 시켰어요. 카타르시스는 럼과 아마레또, 라임 주스를 섞어서 만드는 칵테일인데요. 럼의 단맛과 견과류의 고소함, 그리고 신맛이 적당히 어우러지는 술이에요. 단점이 있다면 보통 바카디 151을 사용해서 독주라는 게 문제죠. 그런데 그날은 그녀가 카타르시스를 주문하는 거예요. 제가 독주라는 사실을 알려줬는데도 꿋꿋하게 주문하더라구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아마 그녀는 ‘카타르시스’라는 이름을 마셨던 것 같아요. 가끔 그런 칵테일들이 있어요.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처럼 맛보다는 이름 때문에 시키는, 맛보다는 이름을 마시는 그런 것들이요.


그렇게 서로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사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1도 안 납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과 한두 가지 에피소드 정도..? 기억나지도 않을 이야기를 어떻게 그리도 오래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 하나가 있는데, 노란 조명이 카타르시스 잔에 반사된 건지 그녀의 눈이 일순간 선명히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눈 안에 제가 보이는 묘한 경험을 했어요. 그렇게 해명할 수 없는 아스라한 느낌을 가슴 속에 담고 있다가 밤을 새고 5시쯤 바에서 나왔는데 여우비가 오더라구요. 새벽 산책, 여우비, 그리고 그녀의 눈망울. 이상한 조건들 속에서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데 지금은 말의 소리는 기억나지 않고 장면과 냄새만 기억이 납니다. 그녀가 입에 머금었던 카타르시스 향이 비릿한 빗물을 딛고 내게로 왔던 그 이미지요. 그리고 이유는 모르지만, 그때 그녀를 사랑하기로 결정했어요.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결심이자 용기며 동시에 신앙이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그 정도의 믿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경험에 미루어 봤을 때 결심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감정적 조건들이 충족된 순간. 그때는 결심을 내리는 것. 말하자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사랑은 우연이며 동시에 결심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일단 아직까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뭐, 다른 우연이 발생하면 바뀔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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