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단어를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이런 질문은 심리학 관련 교육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저는 거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 추가해보겠습니다. "본인이 느끼는 정서를 감정 단어 없어 얼마나 설명할 수 있으신가요." 임상심리학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성장 동력이었던 인지주의 이론에 따르면, 마음을 스쳐지나가는 자동적 사고와 감정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정서 조절을 위한 1차적 작업이라고 합니다.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언어를 통해 체계화하는 이런 작업은 심리적 고통을 하나의 대상물로 만듬으로써 통제하기 쉬운 것으로 만듭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은 정서를 단어화하는 행위는 개인의 복잡한 정서적 세계를 지나치게 단편화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감정을 단어화 한다고 해도 막상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감정 단어들과 표현들은 몇 가지 되지 않거든요. 내담자의 복잡한 현상학적 세계가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핵심감정 10개 내외로 뭉개지는 겁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그린버그 박사의 정서중심이론에서도 반복적으로 제시되는데요. 가령, 어떤 감정을 그냥 '슬퍼요'라고 표현하는 것과, '벼락이 가슴을 관통했는데 가슴이 다 타버려서 피도 흘릴 수가 없어요'라고 표현하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가 개인이 어떤 애매한 감정 상태에 머물게 만든다면, 후자는 개인의 감정 을 끝까지 파고 들어 핵심 정서라는 진실에 가 닿게 만듭니다. 인간의 핵심 정서에 도달하는 방편으로 감정 '단어'가 주효할 수는 있겠으나 단어는 어디까지나 과정에 불과합니다. 결국, 감정적 진실에 가 닿게 만드는 것이자 우리 삶의 정서적 질을 위해서 탐구해야 하는 건 '표현의 형식'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