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승호 May 07. 2024

별의 관측

“I see you” 영화 <아바타>의 유명한 대사이다. 나는 너를 본다. 나는 너를 본다. 본다는 게 무엇일까. 본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너를 보는데, 너는 나를 보고있지 않은. 너는 나를 보고 있는데, 나는 너를 보고 있지 않은. 본다라는 행위는 때로 엇갈리는 속성이 있는데 그때 묘한 즐거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그런 유희의 기억이 잠시 파편처럼 머물다 갔다.


너와 만날 때면,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틈이 있었다. 빛이 들어오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가기도 하는 그런 틈. 너는 약속 시간에 맞춰 틈 사이에서 나를 훔쳐보는 일이 다반사였고,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빼꼼히 고개를 빼놓는 너의 얼굴을 발견하고도 모른척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런 흥미 진진한 시선의 놀음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아주 작은 순간의 일부이지만, 이 순간을 끝없이 늘여서 네가 발각되는 그 사건을 지연시키고만 싶었다. 보여지지 않는 너는 너의 시야에 나를 담고, 보지 않는 척하는 나는 나의 시야에 너를 담으며 온 정신을 집중해서 서로를 담고 있는 그 순간이 무척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리라.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저렇게 먼 거리에서 점처럼 보여도 귀신 같이 알아챌 수 있다니. 점처럼 보이는 것이어도 우리 마음은 클로즈업이라도 해낼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다 기어코 위치가 들통나면 너는 매번 분해했는데, 진작에 너를 찾아냈다는 말은 하지않았다. 네가 나를 담고 있던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고 싶었다.


사랑에 몇가지 속성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가 끊임없이 서로를 담으려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운 건 시야라는 프레임 안에서 아무리 저 멀리 대상이 작아보인다고 해도 기어코 대상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깜깜한 우주에서 선명히 빛나는 별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