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잘 쉬는 방법은 뭘까? 정신과 의사의 휴식법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김세희, 전상원 교수를 만나다

by 최희선

나는 잘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따지자면 못 달려서 안 달리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도 어느 날 ‘런데이’ 앱을 깔고 아이팟을 꽂은 채 집을 나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몇 분을 견디며 생각했다. 아, 정말 달리기의 시대가 왔구나. 주말 공원에는 러닝 크루가 모이고, 퇴근 후 한강에는 형광빛 운동화들이 줄지어 달린다. 우리는 왜 이렇게 달리기 시작했을까.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잠시라도 생각을 멈추고 싶어서일까.


모처럼의 긴 연휴를 앞두고 ‘잘 쉬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여행을 다녀와도 피로가 남는 시대.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멀리 떠나는 휴식이 아니라, 나를 다시 나에게 돌려놓는 시간이지 않을까.


삼성전자 서초사업장에서 임직원들의 마음 건강을 돌보고 있는 김세희 교수를 만났다(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장 전상원 교수님도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20년 차 러너, 그리고 『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의 저자인 김세희 교수는 세계 6대 마라톤을 완주하고, 풀코스를 50번을 넘게 달렸다. 인터뷰의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직장에서 치이고, 또 가정에서 치이는 우리 직장인들! 함께 달립시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렸다. 어쩌면 이번 연휴, 우리가 찾아야 할 휴식은 소파 위가 아니라 트랙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소파를 떠나기는 쉽지 않다.



Q. 42.195km 풀코스 최고 기록이 3시간 7분 30초라고 들었어요. 풀코스만 50번 넘게 완주하셨고요. 20년 동안 달리기를 하다 보니, 달리기에 쉼의 기술이 녹아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어떤 말일까요?

김세희(이하 김): 42.195km를 부상 없이 완주하고 회복하려면 훈련 강도 조절과 휴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과 휴식도 같은 맥락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 질주하면 완주할 수 없듯이, 회복이 가능할 만큼 일을 해야 잘 쉴 수 있습니다. 또한 훈련 계획을 세울 때는 쉬는 시간을 반드시 포함합니다. 일에 있어서도 언제 쉴지 계획해야 잘 달릴 수 있다는 게 마라톤과 매우 닮아있죠.


최근 진료실에서 "선생님, 저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몸은 쉬어도 머리가 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퇴근 후에 몸은 쉴 수 있어도, 직장 스트레스를 그대로 가져간 날이면 머리는 못 쉬고 있는 거죠. 내일이 두렵고, 화와 짜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제대로 쉬지 못하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같은 신체 건강 문제도 생기고요. 마음도 회복이 안 돼서 화가 폭발하거나 감정 조절이 어려워집니다.


Q. 잘 못 쉬는 게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도 다는 거네요. 그럼 잘 쉬고 나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요?

김: 상황은 바뀐 게 없는데, 좋아졌다는 분들이 많아요. 예전에 억울했던 일이 이제는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마음으로 바뀌기도 하고요. 상사의 긴장된 분위기에도 타격이 없고 드라마 보듯이 관조적으로 지내게 된다고 하세요. 피로 회복이 되니까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관계도 좋아지는 거죠.


중요한 건, 쉬어야 할 때 효과적으로 잘 쉬어야 합니다. 지쳐서 넉다운되고 나서야 쉬려고 하면 늦어요. 선제적으로 계획해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내가 이만큼 일을 하면, 이쯤에는 쉬어주어야겠다'하는 생각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마라톤도 중간중간 쉬면서 가야 완주할 수 있거든요. 42.195km를 한 번에 완주할 순 없어요. 2.5km마다 혹은 5km마다 물, 이온음료, 초코파이, 바나나, 스펀지로 열을 식히면서 쉬어 가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완주할 수 있어요. 아무리 엘리트 선수라도 뭘 먹으면서 가고, 열을 식히면서 갑니다. 만약에 쉬어야 할 때 안 쉬고 계속 달리다 보면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럼 회송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그렇게 속상한 때가 없어요. 회송버스를 타고 차창 밖에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자존감이 마구 떨어지기도 하고요.


전상원(이하 전): 영어로 '휴식'은 '테이크 레스트(Take Rest)'입니다. 내가 계획적으로 이 휴식을 '가져가는' 개념이죠. 잘 쉬는 사람들은 1년, 2년, 3년의 휴식 계획을 세웁니다. 3월쯤 지칠 것 같으면 그때 휴가를 내는 식으로요. 이런 사람들은 번아웃이 절대 안 오겠죠? 이번 연휴도 시작하기 전에 미리 휴식 계획을 세워두는 게 좋아요. 언제는 책을 읽어볼까? 언제는 달려볼까? 하면서요. 그러면 보다 효과적으로 잘 쉬실 수 있을 겁니다.


Q. 피로에는 종류가 많다고 하셨는데요. 피로에 따라 쉬는 방법도 달라질까요?

김: 직장인 분들 "아유 피곤해! 피곤해!" 달고 사시잖아요. 피로는 크게 심리적 피로, 신체적 피로, 그리고 관계에서 오는 피로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피로를 느끼는 뇌의 영역이 각각 다른데요. 피로를 푸는 방법은 활성회된 뇌 영역을 전환시켜 준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 심리적인 피로는 의외로 신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풀립니다. 속상할 때 집안 청소를 하거나 퇴근 후 기분이 안 좋을 때 운동을 하면 마음이 개운해질 때가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뇌의 영역을 전환해서 피로회복을 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 피로는 당연히 몸을 푹 쉬어주면 되고요.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 결국 뇌를 꺼주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Q. 잘 쉬는 방법으로 달리기를 추천해 주셨어요. 달리기를 하면 정신 건강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김: 심리적 피로와 관계적 피로 모두 몸을 움직여 주는 게 휴식에 가장 도움이 많이 되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달리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크게 다섯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 달릴 때는 뇌혈류가 원활해지고,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활성화됩니다. 걱정과 근심이 끊임없이 떠오를 때, 달리기를 하면 그 잡념이 순간적으로 잊히는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이건 실제로 뇌의 영역이 전환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두 번째, 달리기는 집중력을 높여줍니다. 달릴 때 분비되는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가 뇌신경세포의 연결을 튼튼하게 만들고, 기억력과 인지 기능까지 좋아지게 하거든요. 실제 연구 결과들을 보면, 중강도 달리기(최대 심박수 60~70%, 뛰면서 대화가 가능한 데 숨은 차는 정도)를 하면 기분이 개선되고요. 고강도 달리기(숨이 차서 대화가 불가능한 정도)를 하면 주의집중력이 좋아지고,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이 좋아집니다.


세 번째, 제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달리기는 '양측성 운동'이라는 점이에요. 달릴 때는 양발을 교차하고 양팔을 번갈아 동작하게 되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 쓰이는 EMDR(양측성 안구 운동)과 같은 원리입니다. EMDR 치료란 치료자와 함께 좌우 양측성 안구 운동을 하면서 외상으로 인한 감정 처리 인지 회복을 촉진하는 치료예요. 그런데 달리기가 그러한 EMDR 치료와 닮아 있습니다. 빠른 템포로 양발 양팔이 좌우로 교차되며 나아가는 동안 뇌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수 없어요. 그 과정을 통해 편도체는 진정되고, 전두엽은 다시 활성화됩니다. 달리기 하는 동안은 걱정과 근심이 사라진다는 거죠.


전: 우리 인생사에 안 좋은 감정들이 너무 심하면, 그 부정적 감정들이 일상생활을 지배하거든요. 그러면 잠도 못 자고 그러죠. 그럴 때 양측성 안구 운동치료를 하면서 힘들었던 마음들을 털어내면 좋은 감정으로 변하게 됩니다. 달리기가 그런 EMDR 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달리기가 어떻게 보면 양쪽에 자극을 완벽하게 주잖아요. 균형이 안 맞으면 넘어지니까요.


네 번째, 달리기를 할 때 양쪽 발이 땅을 딛는 순간마다 오는 안정감은,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그라운딩 기법과도 닮아 있습니다. 균형 있게 양발이 땅에 닿을 때 우리 뇌는 '안전하다'는 신호를 받고 편안해져요. 공황 장애 치료에 사용하는 그라운딩 기법이 달리기를 하면서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달리기는 뇌를 끄는 효과도 있습니다. 무아지경이라고 하죠. 힘들게 달리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싹 사라지면서 머리가 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스님들이 명상을 통해 머리를 비우는 것처럼요. 이게 명상의 효과인데, 저도 그렇고 현대인에게는 정적 명상이 참 어렵거든요. 눈을 감으면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계속 생각이 올라와요. 눈만 감으면 뇌가 탁! 꺼지는 수준에 오르지 못한 현대인에게는 그래서 달리기가 의외로 잘 맞는 동적 명상이 될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제 환자 분 중에는 자전거를 통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세상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는 분이 계세요. 그것도 동적 명상입니다.


재밌는 이야기로 첨언하자면요. 오랫동안 뛸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은 호모사피엔스입니다. 치타가 100km 달려도 고작 20초를 달리고, 웬만한 동물들도 인간처럼 3~4시간씩 달릴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인간은 타고난 신체 능력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약해서 한방이 약해요. 근성으로 계속 쫓아가면서 잽을 날리다가, 결국은 동물이 지쳐서 사람이 사냥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 말은 우리 인간이 가장 오래 한 운동이 뭘까 생각해 보면 달리기라는 거죠. 진화론적으로도 달리기는 우리 몸에 가장 최적화된 운동이니까 달리기, 이만하면 최고의 운동 아닐까요?


Q. 달리기는 정말 최고의 운동이군요! 실제로 환자분들에게 달리기 처방을 내려주시기도 하나요?

김: 공황장애를 앓고 계신 분들께 약물을 끊을 때 대체 요법으로 달리기를 처방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인터벌 훈련 프로그램을 짜드립니다. 빠르게 뛰고 휴식하는 인터벌 훈련을 하면 호흡이 가빠지는데, 공황을 겪을 때 느끼는 느낌과 같아요. 하지만 내가 몸을 써서 만든 불편함인 걸 스스로 인지하기에 공황으로 이어지지 않고 극복이 됩니다. 노출 요법과 같은 맥락이죠. 실제로 좋아지셔서 약을 끊으시는 그 과정을 같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꼭 치료가 아니더라도 제가 달리는 걸 아셔서, 달리기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햄스트링에 쥐가 나는데 어떻게 풀어요?" 하시고요. 하하.


달리는 데에도 힘이 든다. 첫 발을 떼는 힘, 거친 숨을 고르는 힘,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않는 힘. 그러니 힘이 없으면 달릴 수도 없다. 이불속에서 몇 번이나 뭉그적 거리고 있다가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내 머리 위 어딘가에 작은 수호천사가 하나 떠 있다고. 내가 달리는 동안, 아니 내가 버티는 동안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나.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힘, 메타인지라는 이름의 천사를. 그리고 매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 달리는 김세희 교수님도 떠올리며 힘을 내봐야지.


물론 신체적 피로가 누적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몇 날을 12시간 넘게 일을 하고, 어깨와 눈이 동시에 무겁다면 그때는 달릴 때가 아니다. 그런 연휴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밀린 잠을 충분히 자고 맛있는 음식으로 기력 보충일 거다.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봄이 올 것이다. 연한 잎을 밀어 올리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테니, 그러니 이번 연휴의 목표는 하나면 충분하다. 힘을 내서 잘 쉬는 것. 그리고 다시, 나를 믿고 한 발 내딛는 것.


너를 완주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니?
나를 완주하게 하는 것은 달리는 내내
생각과 정신, 마음과 의식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달리는 동작 중에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내면을 더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완주에 이르게 된다.
또 달리기를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 흙과 자연으로 돌아갈 내 몸이
지금은 이렇게 뛰고 있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땅에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아주 작은 존재가
크나큰 지구의 표면을 밟는 느낌이었다.

- 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中